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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r 10. 2023

우리는 장미멘숀에 산다

 어디가 아프다고?

 머리래요.

 머리.

 네.

 혹시 모르니까 조금만 밟자.


 출동 지령 중엔 애매한 것이 많다.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온몸이 아프다, 아픈데 어디가 아픈지 잘 모르겠다. 차라리 심정지나 눈에 보이는 외상이면 출동하는 동안에 현장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서 좋다. 문제가 되는 건 늘 애매한 지령이다. 배가 아프다는 사람을 구급차에 실은 뒤 갑자기 의식이 떨어지기도 하고, 어깨가 아프다는 지령만 가지고 출동을 했는데 현장에서 덜컥 심정지가 오는 경우도 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고 한 백 번쯤 나가면 한 차례씩 그런 게 걸린다. 하지만 그 한 번을 조심해야 하는 게 우리 일이다. 혹시 모르니까 밟자고 말한 것도 그래서다.


 지어진 지 못해도 30년은 된 듯한 낡은 건물이었다. 페인트칠이라도 새로 했으면 좀 나았겠지만 그래봐야 풀뿌리처럼 벽을 타고 올라간 곰팡이를 다 지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구급차 경광등이 깜빡이며 벽을 비추니 더 을씨년스러웠다. 신고자는 1층에 살았다. 문을 두드리니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 시간은 아직 추워서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오줌이 마려웠다. 어디 어디 교회며 배달음식점 스티커가 마구잡이로 붙은 철문이 컹 소릴 내며 열렸다. 개 오줌 냄새, 위장을 넘어간 맥주가 혈관을 타고 허파로 넘어와 날숨으로 다시 태어난 지린내, 낡은 옷 안팎으로 각질과 먼지가 함께 켜켜이 쌓인 냄새가 났다. 문을 연 신고자에게선 그것들을 다 합친 냄새가 났다. 50대 중반으로 뵈는 아주머니였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머리야 너무 아파.

 손으로 짚어 보세요.

 머리, 벽에 부딪혀서, 아이고.

 약주하셨어요?

 조금.

 얼마나.

 맥주 5 병.

 네, 머리 부딪히실 때 기억은 있으시고요.

 기억나요, 우리 애기, 우리 애기.

 애가 있으신가요?


 밝은 갈색과 회색털을 휘날리며 팔뚝만 한 강아지 한 마리가 방 안에서 튀어나왔다. 못 보던 사람이 나타나서 신이 났는지 바닥에 오줌을 갈겨대며 맴을 돌았다.


 우리 애기 어떡해.

 개는 병원에 못 데려가요.

 엄마, 엄마.

 어머니랑 같이 사시나요?

 엄마 금방 다녀올게, 아빠 금방 올 거야.


강아지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이마에 작은 혹이 생긴 것 외에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혈압도 맥박도 호흡도 정상 범위. 코로나 4차까지 접종 확인. 기침, 가래, 콧물, 열도 없으니 진료까지 프리패스라고 생각했다. 응급실 입구엔 친구 집에서 술을 먹다 불려 나온 그녀의 남편이 벌써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어유, 왜 그랬어, 어유 하고 웅엉거렸다. 대충 쓰는 바람에 위아래로 말려들어간 마스크 틈으로 젓갈 냄새와 썩은 막걸리 냄새, 담배꽁초 냄새가 났다. 간호사가 무덤덤한 얼굴로 나와서 아주머니의 팔에 혈압계를 감았다.


 머리야, 아이고.

 어머니 말씀하시지 말고 잠시만요.

 너무 아파요 아이고.

 대기 환자 있어서 30분은 기다리셔야 해요.

 우리 애기 어떡해, 우리 애기, 아이고 머리.

 기침, 콧물, 가래 없으시죠.

 담배 피는 저 인간 때문에 가래 있어요.

 가래 있으시다고요?

 네, 저 인간이 담배 피워서 있어요.


 오, 하느님, 제발. 간호사가 우리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분명 아까 물었을 때는 가래 같은 거 없다고 했는데, 자기 입으로 가래가 있다고 말한 이상 병원에서도 환자를 바로 받을 수가 없었다. 없던 가래가 남편 얼굴을 보자마자 목에서 끓기 시작하는가. 이 병원의 음압 격리 병상은 겨우 3개였다. 얼핏 보아도 호흡기 관련 대기 환자는 다섯이 넘었다. 최소 세 시간 대기, 아니 밤을 새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격리 구역 들어가셔야 해요.

 내가 격리를 왜 당해요.

 가래 있으시다 했잖아요.

 코로나 4차까지 맞았다니까요.

 그래도 안 돼요.

 내가 격리를 왜 당해요, 우리 애기, 우리 애기.

 진료 보시겠어요?

 우리 애기 어떡해, 기다릴 텐데.

 진료 안 보실 거면 말씀하세요.

 우리 애기, 아이고 머리야, 우리 애기.

 진료 안 보시면 댁에 모셔다 드릴게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우리 애기를 연발하던 그녀는 말을 멈추고 남편을 한 번 흘끗 보더니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멘션은 센터로 귀소 하는 길 근방이었다. 멀리 돌아가야 했다면 택시 잡으시라 말했을 텐데 더 입을 뗄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돌아가는 길은 고요했다. 아이고 머리야도 우리 애기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소방관 아저씨.

 들어가세요, 아프면 또 신고하세요.


 술에 취한 부부는 서로의 몸에 기대어 가로등 아래 일렁이는 그림자를 만들며 사라졌다. 예전 같았으면 속으로 세금 낭비니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니 구시렁댔겠지만 그런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구질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나 그걸 깔보는 나나 별 차이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런 사람들은 대개 보이는 저 모습이 전부다. 웃는 얼굴로 눈앞에 있는 사람 발아래 지뢰를 심지도 않고, 고도의 지능을 활용해서 상대방의 정신을 말려버리는 계획 따위를 세우지도 않는다. 그냥 옷이 더럽고, 자주 술에 취해 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장미멘숀에 산다. 가끔 꼭대기 층 살면서 아래층 사는 사람을 깔보는 이들이 있는데 좀 우습다. 아마 집에 있는 거울에 때가 많이 타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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