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이 엄마 뱃속을 뛰쳐나오는 순간, 나는 곧장 내 자식들임을 알았다. 짧은 몸통에 거미처럼 긴 팔다리, 만화캐릭터처럼 큰 손발이 내 것과 다름없었다. 다행히 엄마를 닮아 머리통은 작았다. 아니었어도 축복이었겠지만 머리가 작아 더 큰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유독 걸음이 느렸다. 첫째는 18개월 만에, 둘째도 돌을 넘어서야 겨우 한 발자국씩 떼기 시작했다. 골격은 긴데 근육이 없어서 그런 거야 생각하고, 그때부터 이유식에 고기를 왕창 갈아 넣기 시작했다. 고기, 야채, 쌀밥의 비율이 거의 1:1:1이었다. 레시피는 없었다.
어릴 적부터 이어진 고기 사랑은 두 딸이 8살, 6살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보는데 이건 그야말로 고기만 사는 ‘고기 장’이다. 야채 라든가 기타 생필품을 챙기는 장보기는 고기 장과 고기 장 사이 틈틈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고기 장만큼은 정기적이다. 그만큼 양이 늘었다. 앵겔 아저씨 식으로 표현을 하자면 아예 ‘고기 지수’를 따로 마련해야 할 판이다.
카트를 끌고 마트의 고기 코너를 슬슬 둘러보는데 뭔가 이질감이 들었다. 생각하던 가격대가 아니었다. 비싸도 너무 비싸서 섣불리 손을 뻗어 카트에 담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눈에 띈 어쩌고저쩌고를 먹여서 비까번쩍한 풀밭에서 키운 행복한 돼지고기는 100그람에 6000원이 넘었다. 깜짝 놀라서 그냥 닭고기라도 사서 삶아줘야겠단 생각에 계육 코너로 갔더니 두 날개를 맞잡은 커플 영계가 13000원이었다. 몇 달 전만 해도 8000원이던 물건이었다. 소고기 코너 쪽은 들르지도 않았다. “맞다, 둘째가 오리훈제 먹고 싶다고 했어.” 멋쩍게 웃으며 내 팔에 팔짱을 끼고 걷던 아내에게 말했다. 오리훈제는 세일해서 600그람에 12000원짜리가 있었다. 널찍한 카트에 진공포장된 오리훈제가 하나 덩그러니 담겼다.
라면이랑 과자는 쌌다. 고기 장을 볼 때는 눈도 주지 않던 물건들인데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고기로 채우지 못한 배를 어쩔 수 없이 그런 것들로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정육 코너 사장님한테 왜 이렇게 고기가 비싸냐고 한 번 따져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하면 혹시 20프로 할인 딱지라도 붙여주지 않을까 싶어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진상고객 변신 욕구를 억지로 누르고 있던 중, 정육코너 안쪽 깊은 곳, 구석 중에서도 구석 코너에 자리 잡은 그 녀석이 보였다.
캐나다산 돼지 삼겹살
녀석은 100그람에 1700원 정도로 물가가 뻥튀기 하기 전의 국내산 돼지고기와 비슷한 가격이었다. 작은 것들은 벌써 다 팔리고 한 근 반 정도 되는 덩어리가 하나 남아 있었다. 그래봐야 우리 네 식구 한 끼 적당히 먹을만한 양이었다. 가라앉았던 마음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정말이지 애국가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하는 걸
하느님이 보우하사 캐나다 삼겹살 만세로,
캐나다와 삼겹살을 각각 셋잇단음표로 끊어 부르고 싶었다.
묵직한 통삼겹 한 덩이를 카트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맥주 한 캔 붓고, 월계수잎과 통후추, 소금 넣어서 맥주가 다 날아갈 때까지 졸이면 국내산과 다름없는 캐나다산 돼지고기 수육 완성이다. 아이들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고기에는 국경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