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천국이다. 근심이 사라지는 곳이다. 이 집에서 홀로 내 몸을 누일 수 있는 유일한 곳, 나의 안식처, 핸드폰을 붙들고 십여 분쯤 알고리즘을 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공간. 부글대던 뱃속이 편해지는 건 덤이다. 변기에 앉아 마냥 노곤해진다.
쿵쿵쿵쿵쿵쿵쿵쿵
발에서 30센티 정도 떨어진 화장실문이 연신 울린다. 덜거덕 덜거덕 덜거덕 잠긴 문을 열어보려는 손짓에 손잡이가 춤을 춘다. 뺨 한 대 맞은 것처럼 괄약근이 놀라서 움츠러든다.
아빠아, 아빠아. 첫째 목소리다. 불러도 대답이 없자 이번에는 불이 꺼진다. 새카매지고 핸드폰 불빛만 환하다.
불은 왜 꺼.
아빠 뭐 해.
볼일 보지.
나 젤리 먹어도 돼?
안 돼.
하나만.
안 돼. 불 켜.
딱 하나만.
알았어. 이제 불 켜.
아싸라비아 불은 켜지도 않고 젤리 먹으러 우다다 달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아. 손으로 더듬어 휴지걸이에 매달린 두루마리 휴지를 몇 장 끊는다. 일을 마치고 내친김에 샤워를 하기로 한다. 몸을 씻는 중간에 다시 손잡이가 덜거덕 덜거덕 지랄병이다.
아빠, 멀었어? 이번엔 둘째다.
씻는 중이야.
나 심심해.
불 좀 켜줄래.
들어가도 돼?
씻는다니까, 불이나 좀 켜 줘.
심심한데.
제 할 말만 하고 사라져 버린다. 캄캄한 채로 샤워하면서 좀 더 뭉그적거리려다 대강 마무리하고 나가기로 한다.
잠시 화장실을 쓸 뿐인데 아이들에겐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지나 보다. 게다가 무슨 큰 일이라도 벌어진 양 다급하다. 내가 뭐라고 똥도 못 누도록 애타게 찾을까. 살면서 이런 관심과 사랑을 받아본 일이 있나. 영원을 약속한 아내도 나 화장실 가면 잡은 손을 놓아준다. 세상엔 암만 사랑해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들은 그런 게 없다. 아빠가 바지 내리고 변기에 앉아 있어도 마냥 좋은가 보다.
화장실에 간 아빠를 너희들이 언제까지 찾을까. 부디 오래도록 그랬으면 좋겠다. 아, 불은 좀 켜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