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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Apr 04. 2022

엄마의 귀이개

엄마의 무릎은 언제나 포근했다


내가 어릴 적 

나의 엄마는 딸들을 무릎에 눕히고 

귀이개로 귀지를 파주셨다. 

가만히 눈을 감고 엄마의 무릎에 누워

차가운 귀이개가 내 귓속으로 들어오면 

내 몸도 살짝 움츠려 들었다.

간지럽히듯 살살 훑고 지나가는 귀이개는 

엄마의 체온에 금세 따뜻해졌고

엄마의 무릎은 언제나 포근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포근한 엄마 무릎에 누워 

살포시 잠이 들었다. 



매해 구정 전날,

해가 지기 시작한 저녁 무렵이면 

나의 엄마는 

친척들을 맞이할 음식 준비를 마친 후

딸 다섯을 데리고 

집 근처 대중목욕탕으로 향했다.

제법 큰 대중목욕탕이었지만

구정 전날이라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로 

앉을자리를 찾기 힘들 만큼 복잡했다.

엄마는 몽글몽글 끊임없이 

올라오는 수증기 속에서

딸들의 등을 차례차례 밀어주고

우리는 지친 엄마의 등을 

돌아가며 밀었다.

목욕탕에서 마시던 바나나우유,

달콤한 요구르트는 언제나 맛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딸들은 엄마의 무릎에 눕지 않았고

엄마도 더 이상 귀지를 파주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각자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갔고

목욕이 끝난 후 언니들과 

바나나우유를 함께 먹던 

대중목욕탕의 기억은 

추억 속 저편에 남아있다. 


어느새 엄마가 된 나는 

나의 엄마가 나에게 해줬듯이

아이들을 무릎에 눕히고 

귀이개로 귀지를 파 준다.

언제까지 아이들의 귀지를 

파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엄마가 귀지를 파주던 이 짧은 순간들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포근하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사람에게 추억이란 

같은 상황, 같은 현상에서

각자가 느낀 그때의 감정으로 기억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따뜻하게 만들어져 가는 게 아닐까?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들이 쌓이고 쌓여 

그 기억들이 

삶의 모든 여정을 이겨낼 힘이 

되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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