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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Apr 06. 2022

엄마의 갓김치

입맛이 없거나 무기력할 때 슬며시 갓김치가 떠오른다


  결혼 16년 차, 나는 아직도 김치를 담그지 못한다. 내가 평상시에 만드는 김치류라고 해봤자 깍두기, 무생채. 오이무침 정도이고 시시때때로 시어머님이 만들어 주시는 김치를 받아서 먹고 있다. 

  재작년 겨울인가 따로 절임배추 10포기를 사서 김장을 하고 석박지를 만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결혼 후 지금까지 김장철이 되면 시어머님의 진두지휘로 며칠 전부터 김장 준비를 한다. 

  근데 사실 시댁 김치는 전라도 김치라 내 입맛에는 여전히 짠데 그때 우리가 만든 김치는 너무 짜지 않고 맛있어서 가을이 오기 전에 다 먹었던 기억이 있다. 아님 내가 만들어서 더 맛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100포기 이상의 김장을 하며 최소 삼일 이상의 시간이 걸려서 힘들기도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아무도 불만의 소리를 내지 않는 건 우리 식구는 다 김치에 진심이기 때문이다.  




  김치를 혼자 담그라고 하면 아직도 엄두가  안 나지만 어쨌든 김치를 좋아하는 내 입맛은 변함이 없다. 나는 김치를 정말 좋아한다. 

  좋아하는 김치를 마음껏 먹으려면 김치를 담그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텐데 아직은 좋아만 하고 싶다.  

  김치는 어떤 종류나 다 맛있지만 특히 아삭 아삭한 오이소박이, 알싸한 갓김치, 매콤한 총각무를 베어 물면 다른 반찬이 없어도 밥 한 그릇을 금세 비워낼 수 있다.

  결혼 초나 16년이 지난 지금이나 시댁에서 식사를 할 때면 어머님은 나에게 김치는 그만 좀 먹고 다른 반찬(고기나 생선)들을 먹으라고 성화시지만 나에게 김치만큼 맛있고 입맛을 돋게 하는 반찬은 없다.

  매콤하고 시원한 김치의 특유의 맛도 좋지만 아삭아삭 식감이 살아있는 김치를 씹을 때면 왠지 내 안에 스트레스도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어릴 때 엄마는 오이소박이와 총각김치, 깍두기를 자주 담그셨고 종종 묵은 김치만으로 되직한 김치찌개를 끓이시곤 했다. 

  언젠가 엄마는 내가 처음 보는 김치를 담그셨는데 아삭 아삭한 줄기 부분을 씹으니 알싸한 무언가가 코끝으로 찡하게 올라왔다.

  그날 먹었던 김치는 갓김치였는데 냉면 안에 풀리지 않은 겨자 덩어리를 잘못 씹은 것 같은 갓김치의 묘한 맛에 중독되어 버렸다.   

  그 뒤로 입맛이 없거나 무기력할 때 슬며시 갓김치가 떠오른다. 




  이제 연세가 많아지신 친정엄마는 예전에 비해 김치를 담그시는 횟수도 줄어들었지만 김치를 만드는 양도 줄어 들었다.  

  엄마의 매콤한 김치와 되직한 김치찌개를 맛 보기 위해서는 친정에 가야하지만 엄마는 가끔씩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갓김치를 말없이 택배로 보내주시곤 한다. 

  나른하고 무기력한 요즘, 갓 지은 쌀밥에 엄마가 보내주신 갓김치를 먹으며 힘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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