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하사색 Apr 23. 2022

울릉도산 명이나물이 도착했다

나의 관심을 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입이 짧고 남들에 비해 비교적 양이 적은 우리 가족은 저녁식사 대신 주문한 라지 사이즈의 피자를 한쪽 정도 남길 때도 있고 치킨 한 마리와 사이드 메뉴를 주문하면 매번 치킨 2쪽씩 남길 때도 많다.

  그나마 속이 편한 집 밥을 먹을 때는 적당한 양을 먹는 편이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없는 남편은 지금까지 내가 만든 집 밥을 아무런 투정 없이 잘 먹어주었다.

  그런 남편이 몇 주 전부터 고깃집에 가면 가끔 먹곤 하는 명이나물 장아찌가 먹고 싶다고 했다.

  시어머님도 가끔 간장으로 장아찌 종류를 만드시곤 하지만 짜게 담그시는 편이라 자주 내놓지 않는 반찬이 되었고 나는 이맘때쯤이면 삼삼하게 오이피클이나 마늘종 장아찌를 만들곤 한다.




  벼르고 있던 남편은 며칠 전 울릉도산 명이나물을 비싼 금액으로 주문했으니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검색해서 맛있게 만들어달라고 했다.

  비싼 재료라는 사실에 맛있게 만들 자신이 더 없어져서 시어머님께 반을 드리자고 했는데 남편이 그냥 우리가 다 만들어보자고 했다.

  아침 일찍 남편의 이름으로 박스가 하나 도착했는데 예상보다 큰 박스인 것만 확인하고 뜯을 생각도 못 하고 외출을 했다.

  얼마 뒤 남편의 전화가 와서 주문한 명이나물의 상태가 어떤지 사진으로 보고 싶다고 했다.

  먹을 것에 대한 남편의 이런 관심과 집착은 16년을 사는 동안 처음이었기에 정말 생소했다.




  외출하고 다녀와서 박스를 열었는데 어마어마한 양의 명이나물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2kg를 주문할까 4kg를 주문할까 하다가 결국 4kg를 주문했다고 하는데 양이 많아도 너무 많다.

  결국 퇴근한 남편과 다음날 개교기념일인 아이들까지 합세해서 명이나물을 씻고 물기를 제거했고 나는 인터넷 검색으로 레시피를 선택해서 간장을 끓이기 시작했다.

  정성스레 끓인 다시마 육수에 간장, 설탕, 식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양이 필요해서 계량을 하다가 마트에 가서 더 구입해 오기도 했지만 결국 가족 모두의 협동 작업으로 명이나물을 완성해 냈다.




  지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날마다 명이나물 장아찌를 담아놓은 김치통 뚜껑을 열어보며 맛있게 익어가길 기다리고 있다.

  4kg의 명이나물을 씻고 물기를 제거하고 간장 양념을 끓이는 일이 주부인 나에게는 참 귀찮은 일이었지만 남편이 모처럼 부탁한 일이라 거절할 수도 없었고 예상보다 많은 양에 놀라 싫은 소리를 몇 마디 하기도 했지만 만들어놓고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남편에게 제대로 신경을 못 써준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이들은 이것저것 신경 써주며 잔소리도 하지만 어느샌가부터 남편에게는 잔소리조차 하지 않는 무관심한 사이가 되어가고 있다.



 

  어쩌면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는 나의 관심을 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아이들의 아빠가 아닌 남편으로서 자기만을 위한 특별한 무언가를 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남편이 그토록 먹고 싶어 하던 명이나물 장아찌를 보면서 그동안 우리는 서로 무심하고 무덤덤한 시간을 보내고 있진 않았나 생각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꾸준함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