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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May 20. 2022

너의 앞길은 소나무보다 더 강인하길

소나무보다 더 강인하길, 어떤 편견에도 좌절하지 않길

  어느 해 9월, 작고 여린 딸아이가 태어났다. 뼈마디가 작고 여린 여아라 그런지 출산 예정일이 며칠 지났는데도 아들인 큰아이를 출산할 때보다 수월했고 몸의 회복도 빨랐다.

  모든 게 작고 작았던 딸아이, 양수 안에서 있었던 기억을 놓기 싫은 듯 야무지게 쥐고 있던 딸아이의 작은 손가락을 살포시 펼쳐보니 개구리 손가락인 나를 닮지 않고 남편을 닮아 길고 예뻤다.

  나를 보며 해맑게 웃어주는 딸아이의 미소에 두 살 터울인 남매를 키우며 힘들었던 순간들도 사르르 녹곤 했다.




  친척들이나 주위 사람들은 막내인 나마저 딸이 태어나 아들 하나 낳지 못한 우리 집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고 자라오면서 남자를 더 귀하게 생각하는 사회의 시선에 적대감을 쌓아갔던 것 같다.

  결혼 후에도 시댁에서 기다리시던 첫 손주가 아들로 태어나 며느리 된 입장에서는 한시름 놓았지만 내 아들이라는 생각보다 시부모님의 손자를 키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더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딸아이인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야 비로서 엄마가 된 것 같았다.

  둘째 아이는 큰 아이에 비해 시댁에서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간섭도 덜했다.




  그렇게 작고 여렸던 딸아이는 어느새 운동을 좋아하고 꿈이 운동선수인 아이로 자랐다.

  여전히 손가락은 길고 팔뚝은 얇고 체격은 말랐지만 날마다 2시간씩 제법 무거운 라켓을 들고 공을 받아넘긴다.  

  학원 시간에 맞춰 테니스 연습을 끝내고 학교에서 내려오는 딸아이를 신호등 앞에서 기다렸다가 학교 가방과 학원 가방을 바꿔 들고 간단한 간식을 먹이며 나란히 걷는다.

  하루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쏟아내는 딸아이의 이야기에 부지런히 대꾸하면서 엄마인 나는 학원차량 시간에 늦을까 봐 속으로 걱정도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한다.




  어제는 웬만해서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않는 둘째 아이가 학원 수업이 시작되면서 컨디션이 안 좋아졌던 건지, 그럼에도 수업까지 다 마치고 집에 돌아와 울먹이며 내 품에 안긴다. 품에 안긴 둘째 아이의 몸에서 한기가 올라온다.  

  몸이 안 좋았으면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일찍 오면 됐을 텐데 끝까지 말도 못 하고 수업을 다 들었나 보다.

  가끔씩 오빠가 깐죽대며  올려도 절대로 지지 않고 남자아이들이 괴롭혀도 울지 않는 씩씩한 딸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품에 안겨오니 얼마나 픈건지 엄마인 나는 짐작할 수 있다.




  다행히 하루 쉬게 하고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먹이니 어느 정도 컨디션이 되돌아 왔는지 테니스 채를 들고 집 앞에서 연습을 한다.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엄마를 만나면 조잘조잘 말이 많아지고 여느 남자아이들보다 더 씩씩하고 2살 많은 오빠보다 야무진 딸을 보며 너의 앞길은 꽃보다 더 아름답길, 소나무보다 더 강인하길, 어떤 편견에도 좌절하지 않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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