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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May 13. 2022

낯선 목포로 내려가는 길

이제는 친정어머니의 마음을 보호해주고 싶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서울이고 남편이 태어나고 어릴 때까지 자란 곳은 전라남도에 속한 작은 섬, 홍어로 유명한 흑산도이다.

  남편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가족 모두 서울로 상경하면서 시부모님은 서울에 계시지만 지금도 흑산도에는 남편의 고향 친구들과 친척들이 살고 계신다.

  시부모님도 서울에 계시고 흑산도가 물리적으로도 먼 거리라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몇 년 전에 시부모님과 함께 흑산도에 처음 방문하게 됐다.

  서울 촌년이라고 서울에서만 살다 보니 그렇게 먼 곳은 처음이었고 제대로 된 준비를 못하고 간 탓인지 좋았던 기억보다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이 남아있다.




  어제저녁, 자녀들의 돌잔치 이후로 만나지 못했던 남편의 고향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아직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고, 한참 일이 바쁜 우리 나이에는 특별한 연락 없이 서로의 자리에서 버터내고 있는 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갑작스러운 고향 친구 어머님의 부고 소식을 듣고 고객과 예약된 일정을 뺄 수 없는 남편을 대신해 내가 대신 목포에 내려가기로 했다.

  사실 결혼하기 전부터 서울에 올라와 있는 몇 명의 고향 친구들과 편하게 만났던 적도 있었고 몇 해 전 제대로 된 준비를 못하고 흑산도에 내려갔을 때 적지 않은 신세도 졌기에 내려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를 몇 번 타보지 않은 내가 못내 걱정이 되었는지, 대신 가겠다는 내게 미안한 마음이었는지 고마운 마음이었는지 남편은 서둘러 목포로 가는 기차표를 알아보고 A4용지 가득 유의사항을 꼼꼼히 적어 나에게 쥐어준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카톡으로도 메시지를 보내어 놓고 목포에 내려가는 길을 여러 차례 설명해 줬다.

 



  아침에도 귀찮을 정도로 여러 차례 전화를 하는 남편의 걱정을 뒤로하고 나는 무사히 목포역에 도착했다.

  흑산도에 혼자 계셨던 어머님이 올해 구정쯤 복부가 불편하시다며 배를 타고 목포로 들어와 건강검진을 받으셨는데 그때 이미 췌장암 말기가 되어 더 이상 손을 써보지 못하고 3개월도 채 안 돼서 보내드리게 되었다고 했다.

  막내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때부터 흑산도를 떠나 목포에서 공부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도 적었는데 결혼하고 사회생활을 서울에서 하다 보니 물리적으로 거리가 더 멀어져서 어머니를 뵙게 되는 것도 일 년에 한 두 차례 명절 때였다고 한다.

  자녀들이 커가는 것만 보였지 정작 건강해 보였던 당신이 이렇게 빨리 곁을 떠나게 될 줄은 몰랐다고, 결혼하고 시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없었다며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친구 와이프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나도 십여 년 전 친정아버지를 췌장암으로 보내드렸다. 딸 다섯의 막내로 태어나 언니들에 비해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내 나이로 생각할 때 너무 이른 나이에 아버지를 보내드려서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때가 결혼하고 1년 정도 지났을 때였기에 우리 아이들은 외할아버지를 빛바랜 사진으로만 만난다.

  지금 나도 어린 자녀들 핑계를 대며 올해 팔순인 친정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있다.

  내게는 흑산도라는 물리적 거리보다 큰 제약이 있는 걸까? 도대체 나를 막아서고 있는 게 뭘까?

  어쩌면  아직은 소란스러운 손자, 손녀를 데려가는 게 이제 많이 연로하신 어머니가 피곤하실 것 같다는 지레짐작을 하고 스스로 통제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작고 작아서 보호해줘야 했던 큰아이가 어느새 내 키를 넘어섰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올해 팔순인 친정어머니의 마음을 보호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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