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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Jan 06. 2022

친척들은 나를 꼭지라고 불렀다


딸만 다섯 중에 막내,

친척들은 나를 꼭지로 불렀고

언니들은 나를 꼬꼬라고 불렀다.


어릴 때 친척들이

나를 꼭지라고 부르는 분위기를 보아

별명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사전에 나와 있는 꼭지(명사)의 뜻은

딸을 많이 낳는 집에서 딸을 그만 낳고

아들을 낳기를 바라며 사용하던 이름이라고 한다.


다행히 그 집 안에서 아빠는 차남이었고

큰아버지 댁에 아들이 셋이라

대를 잇는 걱정쯤은 하지 않아도 됐겠지만

고모들도 낳은 아들을 하나쯤 낳아야 한다는

시어머님의 잔소리가 부담스러웠던지

엄마는 12년 동안 출산을 놓지 않았다.


나를 임신한 후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셨을 엄마는

친구가 운영하는 한의원에서

아들을 낳는 한약을 지어드셨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딸을 낳고 실망하셨을 엄마,

그 후로도 시어머님의 잔소리를

피할 수 없었겠지.


친척들이 모일 때마다

손녀라는 이유로, 딸이라는 이유로

티가 나지 않게, 티가 나게 차별을 받았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큰아버지 댁의 아들들이 상여를 매는데

아빠는 차남으로 상여 매는 걸 거들 수 없어서

못내 서운하셨던 것 같다.


아들이라고 잘난 것도 없는데,

우리 자매보다 더 못난 남자들도 많은데

자라면서 자연스레 남자에 대해

반발심이 커져갔다.

굳이 독신을 고집하지는 않았지만

결혼에 대한 환상도 없었고 계획도 없었다.


나이 서른에 사람 하나 보고 결혼을 하고 보니

이 집도 아들이 귀한 집이라

손자를 그렇게도 바라셨다.


어느 날인가

별안간 우리를 시댁으로 호출한 시아버님은

이대로 아이를 갖지 않을 거라면

앞으로 시댁에 발길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엄마가 살아왔던 시간을 기억하고 있으니,

딸만 낳은 집에 막내딸이 또 딸을 낳았다고

그렇잖아도 걱정이 많은

시어머님의 잔소리가 더해질까 봐

딸만 다섯인 친정 엄마의 마음의 짐이 될까 봐

엄마처럼 한약은 먹지 않았지만

병원에 가서 날짜를 받아왔다.


양가에서 기다리던 첫 아들을 낳고

나는 처음으로 내 존재가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내가 먹고 숨 쉬는 모든 순간이

오로지 당신들의 손자를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첫아이지만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시부모님이 그렇게 바라시던 손자를 낳아드리고

더 이상 둘째 손주에 대한 얘기는 없으셨지만

나는 남편을 닮아 손가락이 긴 이쁜 딸을 낳았다.

둘째아이가 손녀였기에

시부모님의 관심이 덜 했고

그때서야 오롯이 내 아이를 낳은 느낌이 들었다.   


변함없이 시부모님은 아들을 귀히 여기신다.

그와 더불어 손자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크다.

눈치 빠른 둘째 아이는

내가 자라면서 받아 온 차별을

어쩔 수 없이 받아내고 있다.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 하는 옛어른들의 관습,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며느리들의 책임감,

이런 생각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나도 나이가 더 들면

큰 아이에게 첫 손자를 바라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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