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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Dec 24. 2022

그 사람의 스토리를 만드는 것

나만의 특별한 스토리는 과연 무엇일까?

  평상시에 건강하고 씩씩했던 둘째 아이의 이마가 뜨겁다. 

  올겨울 들어 최고의 한파라는 뉴스를 내보내던 어제, 둘째 아이는 테니스 연습을 일찍 끝내고 돌아오라고 당부하는 내게 끝날 때까지 연습하고 오겠다고 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연습 시간을 다 채우고 돌아온 둘째 아이의 이마는 밤이 되자 뜨거워졌다.




초등학생인 둘째 아이는 학교 테니스부에서 테니스를 배우고 있다. 테니스를 배운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테니스연맹 선수로 등록해서 올해 전국 대회를 3번 나갔다. 

  날마다 학교 정규 수업을 마치고 테니스부에 가서 2시간, 영수학원에 가서 2시간, 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어느새 식탁의자에 앉아 잠이 든다.

  나는 힘들게 운동한 둘째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면서 간식을 먹인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게 너무 안쓰러워 테니스를 그만두고 공부하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지만 아이의 마음은 여전히 확고하다.

  아직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 아이를 보며 엄마인 나는 걱정이 앞선다. 




  운동하는 아이라 그런지 여느 여자아이와 성향도 다르다. 하교 후 테니스 수업을 받느라 딱히 친한 여자친구가 없는 둘째 아이가 전교 부회장 선거에 출마하겠다며 허락해 달라고 한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너는 안 하면 안 되겠니? 이런 걸 준비할 시간에 테니스 연습을 더 하는 건 어때?"라고 반대했더니 대뜸 "오빠는 도와줬으면서 왜 나는 안 도와줘"라며 서운해한다.

  아이에게 전교 부회장에 출마하려는 이유를 물었더니 오빠도 5학년 전교 부회장, 6학년 전교 부회장을 했으니 자기도 따라 하겠다고 한다. 

  운동하는 아이라 그런가 이유도 단순하다.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이 학교에는 아는 친구도 많이 없고 수업 후 바로 테니스 연습을 하느라 친구와 만날 시간은 물론 방과후 수업도 하지 못해 흔한 인맥도 없다.

  14명의 테니스 부원들이 모두 둘째 아이에게 투표를 해준다 해도 전교 부회장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친한 친구도, 특별한 특징도 없는 아이에게 엄마는 스토리를 만들어줬다. 


테니스 할 때처럼 열정적으로 일하겠습니다.

테니스를 즐겁게 배우고 있는 기호 4번


  포스터에도, 손팻말에도 테니스를 즐겁게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슬로건처럼 내세웠다. 심지어 손팻말도 테니스라켓 모양으로 만들었다. 


  지난주 목요일, 하굣길에 만난 둘째 아이는 너무 떨려서 소견문 발표에서 실수를 했는데 전교 부회장에 당선됐다며 멋쩍어했다. 

  당선 결과를 들은 혹자는 내가 만들어 준 포스터와 손팻말 디자인 때문에 당선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깔끔한 디자인의 포스터가 아이의 당선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지만 운동만 하던 아이를 기억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할 때는 아이만의 특별한 스토리를 입혔기 때문에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던 아이를 기억해 주고 투표해 주지 않았을까 싶다.





  개개인의 특별한 스토리를 찾아 슬로건으로 만드는 일, 어쩌면 그것으로부터 브랜드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스토리를 만들어 줄 누군가가 없다면 본인 스스로 자신에 대해 성찰해 보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재구성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만의 특별한 스토리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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