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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Dec 07. 2022

당신 모습에서 장인어른의 모습이 보여

이제야 아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른 새벽보다 늦은 밤이 더 익숙한 사람이다. 학창 시절 공부로는 밤을 새워본 적이 없었는데  대학 입학과 함께 야간작업이 익숙해지고 디자인 회사에 입사 후엔 야근에 능숙해졌다.

  하루 종일 일에 치이고 사람들에 치여서 지치고 힘들다가도 모두가 조용한 침묵의 어둠이 좋았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선명해지는 느낌, 디자인도 속도를 냈다. 남다른 아이디어는 아침이 아닌 늦은 밤에 생긴다고 믿게 됐다.



  일 밖에 모르던 철없는 내가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난 후 또다시 늦은 밤을 기다리게 됐다.

  모두가 잠든 밤엔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남들이 미라클 모닝을 할 때 꿋꿋하게 미라클 나이트를 고집하던 내가 12월부터 6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아이들의 취침시간은 늦어지고 밤에는 더 이상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5시 50분에 일어나 식탁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방에서 나온 남편이 대뜸 하는 소리가 


언제부터인가
당신 모습에서 
장인어른의 모습이 보여 

  아. 순간 좋은 뜻으로 들리지는 않는데?

  돈이 되지 않는 글을 쓰며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던 아빠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예배를 다니던 아빠가, 성과가 보이지 않아 지루해 보이던 일을 꾸준히 하던 아빠가 오버랩된다는 말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빠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걸까? 의도적으로 아빠가 걸어간 길을 찾아 나서고 있는 걸까? 

  오늘 아침 문득, 내가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어쩌면 너무 늦게 철이 들어버린 막내딸이 이제야 아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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