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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Jan 17. 2022

그 순간을 즐기고 이뤄내는 기쁨


  친정 아빠는 글솜씨와 말솜씨는 뛰어났지만 손재주는 없었다. 원하는 분야에 책을 몇 권 쓰셨고 대학에서 정규교수는 아니였지만 강의도 하시고 작은 교회 부흥회에 초빙되어 강연도 하셨다. 그렇게 얻는 소득은 많지 않았지만 아빠는 그렇게 당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손재주는 없던 아빠는 집 안에 백열등을 새로 교체하는 것도 어려워 하셨다. 집에 고쳐야 할 곳이 있으면 언제나 수리 전문가(철물점 아저씨)를 불렀다. 

   시간이 흘러 백열등 교체쯤은 거뜬하게 해 주는 든든한 사위들을 하나 둘 맞이하고 아빠는 사위들이 올 때마다 전혀 드시지 않던 맥주를 한 잔씩 드시곤 했다. 집 안에 무언가 고장나거나 수리하려면 당연히 전문가를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우리에게 크게 생각됐던 고장이 형부들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혼할 때 시댁은 연식이 오래된 2층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시댁의 창고에는 집수리에 필요한 도구들은 거의 다 있었다. 직접 고칠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집수리도 날을 잡아서 맏아들과 함께 척척 해 내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자란 아들도 전기 수리와 왠만한 집수리는 다 해냈고 일반인들은 갖고 있지 않을 법한 공구들도 많이 있다. 가끔 특 핸드폰을 집중해서 보고 있는 남편에게 조용히 다가가면 남편은 대부분 공구에 관한 영상을 보고 있거나 쇼핑을 하곤 한다.  




  지난 금요일 저녁 남편의 퇴근길, 살고 있는 집이 오래된 빌라라 지저분한 현관문 옆 벽에 붙이려고 고벽돌타일을 사왔다며 특유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이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주말에 아빠와 함께 재미있는 경험을 할 꺼라고 생각한 아이들은 즐거워했지만 왠지 나는 달갑지만은 않았다(모처럼 주말에 쉬는데 편히 쉬어야지. 월요일이 되면 피곤하다고 하려고...). 

  남편과 함께 벽돌을 붙이러 나갔던 아이들은 작업하려고 입었던 옷에 흙먼지만 잔뜩 묻히고 집으로 들어와 TV를 보고 남편 혼자 작업을 하고 있었기에 말동무라도 되어 줄겸 나갔다가 괜히 미안한 마음에 남편과 함께 벽돌을 붙이며 주말을 보냈다. 




  나는 예정에 없던 일이 생기면 당황하거나 귀찮아 하는데 남편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갑작스레 생각나는 것을 실행하는 걸 좋아한다. 번뜩이는 생각을 현실에서 이뤄내는 걸 즐긴다. 지금껏 나는 안정적이고 형식적인 패턴에 매어 있고 어차피 결과가 나와있는 거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데 그 순간을 즐기고 이뤄내는 기쁨, 그것을 느끼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 

  지난 주말 몸은 피곤했지만 삶 속에서 또 하나의 추억과 경험을 만들 수 있어서 행복했고 무모한 도전을 함께 해 주는 서로가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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