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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Jan 14. 2022

어설픈 몸치, 귀여운 음치


  나는 지독한 몸치다. 하교를 함께 했던 고등학교 친구는 하교할 때면 참새방앗간처럼 DDR 오락실에 자주 들리곤 했는데 나는 매번 DDR을 잘하는 친구를 바라만 봤다(DDR은 흥겨운 댄스음악을 틀어 놓고, 모니터의 표시대로 전후좌우 방향의 센서판을 밟는 춤추는 게임기다). 엄청 빠른 리듬에 맞춰 따라 할 자신도 없었고 굳이 연습해서 잘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스무  중반 교회 청년부에서 중국 단기선교를 준비하면서 그곳에서 공연할 찬양 워십을   동안 연습했다. 그때도 꾸준하고 성실하게 연습을 했지만 빠른 워십곡의 속도를 따라잡기도 힘들었고 내가 제일 실수를 많이 했다.   곡을 얼마나 많이 듣고 연습했는지  찬양의 전주만 나와도   같고  장면을 생각하면  찬양이 자연스레 귓가에 맴돈다

  불혹을 넘은 지금은 어떨까? 딱히 달라진 게 없다. 가끔 가족 넷이 자전거를 타고 라이딩을 하곤 하는데 맨 앞에는 길을 안내하는 남편이, 그다음엔 큰 아이, 그다음엔 둘째 아이, 겁이 많고 몸치인 내가 맨 뒤에 달린다. 한참을 달리다 거리가 많이 벌어지면 먼저 간 세 명은 멈춰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유연성은 나쁘지 않은지 요가랑 필라테스는 잘 따라한다. 사실 아이들이 크고 가족과 함께 자전거 릴레이를 하기 전까지는 딱히 불편함은 없었다.




  남편은 사랑스러운 음치다. 사실 목소리도 좋고 노래를 잘 부르는, 노래방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주는 로맨틱한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었지만 내 남자친구는 안타깝게도 음치였다. 나도 딱히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은 아니어서 우리가 만나는 1년 동안 데이트 장소에서 노래방은 제외됐다.

  그래도 살다 보면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할 때도 있고 친척 어르신들과 함께 간 노래방에서 기분을 맞춰드려야 할 때도 있고 교회에서 하는 행사에 중창단으로 서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남편은 내 눈에는 사랑스러운 음치다(오해는 마시라. 내 눈에만 그렇다.)




  그나마 다행인 걸까? 음치인 남편은 운동신경이 좋은지 처음 접하는 운동도 제법 잘하고 대학 때는 응원단에서 활동을 했을 정도로 활기차다. 코로나 이전에 교회 몇 명의 남자 집사님들이 모여 성탄절 축하공연 때 발표할 워십을 연습했는데 준비하는 시간도 즐거워했고 교인들의 박수를 받을 정도로 멋지게 무대를 장식했다.

  몸치가 확실한 나는 노래를 딱히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반주가 나오면 노래는 잘 따라가는 편이여서 어릴 때부터 성가대나 중창단도 했고 회식으로 간 노래방에서도 분위기는 잘 맞췄다.




  그런데 세상에나. 아이들이 자라면서 보니 신기하게 우리를 닮았다. 큰 아이는 학교 성악부와 교회에서 솔로를 할 정도로 노래는 제법 잘 부르지만 리듬감을 따라가지 못하는 어설픈 몸치이고 둘째 아이는 수영, 축구, 클라이밍, 테니스 선생님께서 인정해 주실 정도로 운동신경은 좋지만 노래할 때 음이 맞지 않는 귀여운 음치다.




  몸치인 나와 큰 아이, 음치인 남편과 둘째 아이의 이런 면들이 남들이 보기에 부족한 점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딱히 불편하거나 창피해 하지 않는다. 바꾸기 힘든 자신의 모습은 인정하고 본인이 잘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즐거워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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