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던 시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정도쯤은
누구나 당연히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갖고 있는 소중한 것들 중에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참 컸는데
내게는 익숙하고 평범한 가족 말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세울 만한
특별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로하신 할머니,
비전은 있었지만 경제에는 무뎠던 아빠
뒤늦게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언제나 바빴던 엄마
작은 의견 대립에 얼굴을 붉히기도 했던 언니들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최선을 다했으나
세상에서 하나라도 더 얻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모나지 않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기 방식대로 헤쳐나가는 강인함도 있었으며
계획한 일이 뜻대로 안 되더라도
좌절하지 않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할 때마다
형식적으로 첫 줄에 적는 새해 소망처럼
우린 그렇게 건강하게 일 년을 보냈고
매년 같은 모습으로
함께 새로운 한 해를 맞이했다.
설날 아침,
아빠의 인도를 따라 설날 예배를 시작하고
아빠의 기나긴 설교가 끝나고 나면
한복을 곱게 입고 순서대로 세배를 했다.
딸 다섯의 세배를 마치면
온 가족이 작은 거실에 모여 앉아
소란스럽게 대화를 하며
그사이 퍼져버린 떡국을 먹었다.
매년 익숙한 가족 예배로 새해를 시작했던
아빠는 이제 안 계신다.
이제는 아빠 대신 큰언니가 예배를 인도하고
엄마의 기도로 예배를 마친다.
언제까지나 평범한 새해를
함께 맞이할 거라고 믿었던 언니도
작년 한 해 갑자기 발견한 건강 이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 허락했던 최고의 것이지만
항상 내 곁에 있었기에
당연히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가족과 건강
내가 누려온 평범한 생활이
누군가는 진정으로 원하는 삶일 수도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누리는 건강한 삶이
누군가에게는 꿈으로 끝날 수도 있다.
철이 들고 나니
나에게 주어진 익숙한 모든 것들이
내게 허락된 감사의 제목들이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