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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Mar 03. 2022

어머님의 반찬

빈둥지증후군을 극복하려는 어머님의 자구책


  아이들이 학원을 간 어제 오후, 모처럼 일찍 퇴근한 남편과 함께 동네 마트에 가서 장을 봐 왔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들과 대형마트에 가서 일주일 치 식재료를 사 오곤 했는데 집에 돌아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저녁에 먹을만한 게 없어 배달음식을 시켜 먹게 되더라.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대형마트에 가는 날은 식재료보다는 간식거리를 많이 사게 되고 각자가 원하는 것을 이것저것 담다 보면 생각했던 금액보다 더 많이 지출하고 돌아온다.

  그래서 요즘은 혼자 근처에 있는 마트에서 그날 필요한 식재료를 소량씩 구입하거나 온라인 마켓의 이벤트 기간을 적절히 활용해서 구입하고 있다.  

  그래도 어제는 냉동실과 냉장실의 야채 칸이 많이 비어있어서 큰 맘먹고 남편을 데려갔다(?).




  오래간만에 사 온 여러 가지 식재료를 이용해 4가지 반찬을 후다닥 만들었는데 반찬을 담을 반찬통이 없다.

  그 많고 많던 반찬통은 어디로 간 건지...

  냉장고를 열어보니 반찬통들이 냉장고 안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입맛에 맞지 않아 먹지 않고 보관만 하게 되는 어머님의 반찬들, 아이들과 나는 먹지 않지만 혹시나 남편이 먹지 않을까 넣어놓고 식사 시간에 꺼내고 넣기를 여러 번...

  보관한지 오래되어 분명 상했을 텐데도 나는 그 반찬통을 애써 외면했다.

  남편은 먹지 않는 반찬들은 버리라고 하지만 쉽게 버릴 수가 없어서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어제 또 한 번 절감했다.




  시댁에서 시어머님이 해주시는 음식들을 먹는다면 내 기억 속에도 특별한 음식으로 기억될 텐데 굳이 우리 집 냉장고까지 시어머님의 냉장고처럼 만드시려는 걸까?

  저녁식사를 마치고 냉장고에 쌓여있는 열다섯 개의  반찬통을 꺼내 그 안의 들어있는 미련을 버리고 뜨거운 물로 깨끗하게 씻었다.  

  싱크대 가득 한 반찬통들을 씻으며 어쩌면 어머님은 아직 빈둥지 증후군을 극복하지 못하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빈둥지증후군 : 자녀들이 대학교에 진학하거나 취직, 결혼과 같은 이유로 독립하게 되었을 때 부모가 느끼는 상실감과 외로움)




  가족끼리는 돕고 사는 거라고, 서로 왕래하며 사는 거라고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 기준은 다르기에 어머님이 느끼시기에 어쩌면 나는 독립적인 성향의 차가운 며느리일지도 모르겠다.

  어머님께서 자꾸 반찬을 만들어서 갖다주시는 것은 어쩌면 빈둥지증후군을 극복하려는 어머님만의 자구책(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한 방책)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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