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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Jun 16. 2022

엄마의 잔소리

그 사람에 대한 애정, 그 사람에 대한 관찰의 결과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맞벌이를 시작하셨다.

  엄마는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어나 가족이 먹을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언니들의 도시락을 싸놓은 뒤 출근을 하셨고 저녁시간이 다 돼서야 퇴근하거나 때론 더 늦게 퇴근하시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집에 제일 먼저 들어가서 사람의 온기를 켜는 사람은 언제나 제일 어린 나였다.

  국민학교 저학년인 내가 늦게 하교해도 2시나 3시인 대낮이었을 텐데 내 기억 속에는 캄캄하게 기억되는 건 집 안에서 나를 반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그 이유는 내가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만큼 할 일을 척척 잘 해내는 똑똑한 아이여서가 아니라 나에게까지 잔소리를 할 만큼의 시간적 여유와 정신적 여유가 엄마에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되고 나니 잔소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고 그 사람에 대한 관찰에 의한 결과이며 꽤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되면서 잔소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됐다. 

  오히려 엄마도 안 하는 잔소리를 언니들에게 더 많이 들었고 엄마 대신 언니들이 챙김을 받게 되는 일도 많았다.

  바쁜 엄마의 딸들은 어떤 누구의 강제성이 개입되지 않은 채로 알아서 자신의 갈 길을 정했고 그 길을 향해 각자 부지런히 내달렸다.  



 

  대학시절, 교회음악을 전공하며 트럼펫을 불던 교회오빠와 교제했던 적이 있다.

  대학 졸업식 때 축하해 주려고 온 오빠와 자연스럽게 마주치면서 엄마와 셋이 점심 식사를 하게 됐는데 엄마는 내 교제에 대해 열렬하게 응원하지도, 그렇다고 격렬히 반대하지도 않았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막내딸이 가난한 음악도를 사귄다는 게 엄마의 입장에서 못마땅할 수도 있고 붙잡고 잔소리를 할 만도 했는데 엄마는 특별히 내게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게 주위의 반대 없이 교제하다가 서로의 입장 차이도 생기고 현실적인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오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된다.

  주위의 개입이 없으면 만남과 헤어짐이 오히려 쉽다. 헤어진 후 오로지 내 감정을 다스리는데 집중하면 되니까.  




  엄마는 지금도 내게 특별히 잔소리를 하시지 않는다. 사위에게 잔소리하고 집안의 사사로운 것까지 참견하는 장모님은 드라마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 나에게 잔소리할 누군가는 필요했던 걸까? 결혼 전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내 뜻대로 살아왔던 나는, 유독 걱정이 많은 시어머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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