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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Jul 03. 2022

구멍 난 아이의 신발

뜨거운 여름만큼이나 강렬한 아이의 소중한 노력들이 쌓이고 있다

  딸 다섯인 우리 집에는 특별히 정해진 용돈이 없었다. 학교 준비물이 필요하거나 친구들과 약속이 있을 때마다 엄마에게 돈을 받아서 사용하곤 했다. 

  조부모님을 모시던 우리 집에 친척들이 오셔서 주시던 세뱃돈이나 용돈들이 모이면 집에서 제일 가까운 외환은행에 가서 저축을 하곤 했다.

  집은 강동역 근처였고 외환은행은 둔촌역 근처였는데 어른이 된 지금, 내가 걸어가기에도 이십 분은 족히 걸리는 그 거리를 국민학교 저학년 때부터 틈만 나면 부지런히 다녔던 기억이 있다. 




  어릴 때부터 나이답지 않게 알뜰하고 야무지다는 칭찬을(?) 듣곤 했는데 내 성격상 특별히 과한 소비욕(재화를 소모하고자 하는 욕망)이나 과시욕(자랑하거나 뽐내어 보이고 싶은 욕심)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나에게 과분한 물건을 사지 않는다는 뜻일 뿐, 필요한 물건은 사야 하고 기분 전환을 위해 문화생활도 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적당히 돈을 쓴다.

  더더군다나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아이에게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선에서 좋은 물건을 사주려고 노력한다. 




  어제 오후, 학교에서 테니스를 배우고 있는 둘째 아이가 자기가 신던 테니스화를 가져왔다.

  테니스화의 바닥면을 보여주는데 밑창이 다 닳고 구멍이 뚫려서 깔창까지 보였다.

  지금까지 아끼며 살고 있다고 했지만 내가 신던 신발 밑창이 이 정도까지 닳을 정도로 신은 적도 없었고 아이들에게 사주는 신발들도 금세 작아져서 외관상 멀쩡해 보이는 신발들을 떠나보내는 일이 더 많아졌기 때문에 사실상 밑창이 구멍 난 신발을 본 건 난생처음이다.

  5개월 전 사줬던 테니스화 밑창이 구멍이 날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던 둘째 아이의 노력들이 짐작이 돼서 마음 한편이 짠하기도 하고 뭉클해진다.




  더운 여름 한낮, 햇볕 아래에서 테니스 연습을 하는 둘째 아이의 피부는 까맣게 탔고 등에는 새빨간 땀띠가 생겼다. 

  뜨거운 여름만큼이나 강렬한 아이의 소중한 노력들이 쌓이고 있다. 

  너의 뜨거운 여름을 알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너의 꾸준한 노력이 쌓이고 쌓여서 언젠가 환한 빛이 되기를 엄마가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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