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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Mar 25. 2022

좋은 어른들을 만난다는 것

나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특성화 고등학교 졸업 후 서초동에 위치한 작은 출판사에 입사하게 됐다.

  25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출판사 이름, 출판사 사장님의 성함까지 선명히 기억나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느낄 법한 속상한 기억 한 조각 남지 않은 걸 보면 나에게는 너무나 감사했던 첫 회사였다.

  물론 그때 당시는 첫 사회생활이라 모든 것이 서툴렀고 힘들고 속상했던 일들도 있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따뜻한 기억들만 남아있으니 나는 분명 좋은 회사, 좋은 사장님, 좋은 직원들을 만났던 게 확실하다.




  전공서적을 출판하던 출판사 편집부에는 디자인을 하는 대여섯 명의 편집부원과 일주일에 두세 번씩 와서 원고의 문맥과 맞춤법의 교정을 보는 재택근무 직원이 몇 명 있었다.

  서초동에 위치했던 출판사는 건물을 한 채 다 쓰고 있었는데 책이 가득 쌓여 있던 지하에는 두세 명의 영업부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했던 사장님은 캐비닛으로 공간 분리만 한 작은 공간에서 책상과 소파만 두고 상주해 계셨다.

  그때는 어릴 때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 사장님 정도의 나이가 되어가며 생각해 보니 전공서적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셨고 서초동에 건물 하나를 소유하신 사장님이 어느 정도 있는  거드름을 피우셔도 되셨을 텐데  검소하셨구나 싶다.  




  한 달에 한 번 회사 회식을 하는 날, 아침에 회사로 출근해서 다 함께 등산을 하고 하산 길에 미리 예약해 놓은 고깃집에서 고기를 먹었다.

  회사 회식이라 고기에 술이 곁들여지긴 했지만 아무도 술을 강요하지 않았고 특히 사장님께서 술을 드시지 않았기 때문에 경리에게 일임하고 일찍 자리를 떠나셨다.

  특히 나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새내기였기에 회식 자리에서도 술을 강요하거나 말도 안 되는 심부름을 시키지도 않았고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직원들은 나를 사회에 적응하며 실수하는 친동생 대하듯 살갑게 대해 주었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성년의 날, 영업부 과장님이 미리 준비해 주신 꽃다발을 받고서야 성년이 된 내 존재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고 회사에서 축하를 받았다는 것에 가슴이 뭉클했다.

  2년 남짓 출판사를 다니다가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고 난 후에도 재택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배려해 주셔서 용돈을 벌면서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당연히 출판사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돌아오라고 말씀도 해주셨지만 졸업 즈음 패키지 디자인 회사에 취업하게 되면서 출판사와의 인연도 천천히 멀어져 갔다.

  한없이 서툴렀지만 따뜻했던 그때가 생각이 날 때면 검색창에 출판사 이름을 검색해 본다.

  출판사 홈페이지에 낯익은 사장님의 성함이 보이고 출판사의 주소지가 파주로 바뀐 걸 보면서 그때 함께 했던 그분들은 아직도 그 출판사에 근무하고 계실지, 다들 어떻게 변하셨을지 궁금해진다.

  낯설고 막막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며 좋은 어른들을 만난다는 것, 좋은 인생 선배들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운인 걸까?

  사회생활의 첫 기억이 이렇게나 따뜻했기에 그 이후에도 매번 망설임 없이 새로운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내고 큰 두려움 없이 회사에 적응하며 성장해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사회에서 좋은 어른들을 만났던 것처럼, 나도 낯선 일들에 주춤거리며 한 발 물러서 있는 이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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