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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박착수형이다.

MBTI 이야기 1

외부세계에 대처하는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판단형(J)과 인식형(P) 사이에서 나는 P 성향이 매우 높은 J이다. 쉽게 말해 타고나기를 J의 성향을 보이지만 선호하는 행동양식은 P가 가진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P가 높은 J형인 나는 시작과 끝을 아름답게 짜 맞춘 계획을 잘 세우고 나름 잘 지키기도 하지만 계획된 일정에서 벗어나 발생하는 뜻밖의 일도 환영한다. 때로는 유연성 있는 생활양식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어떻게 보면 J와 P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거의 모든 일, 특히 나 홀로 해내야 하는 일은 최후의 임박한 순간까지 들고 있다가 마감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이런 순간이 올 때면 나는 느긋한데 주변에서 내 걱정을 해주느라 마음이 분주해지는 것을 본다. 


좀 더 미리 시작하고 바짝 몰두해서 기한 전에 마치면 여러 차례 검토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내 작업의 성과는 작을 것이다라는 점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머릿속에서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머릿속은 아마도 체계적인 구조 속에 비구조화된 얼개가 배경처럼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나는 마치 한계가 분명한 안전한 놀이터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엄격한 최종 일정이 있는 것에 안정감을 느끼고 나의 견해와 결정을 명확하게 표현하지만 필요하다면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일이 변경되어도 잘 적응한다는 뜻이다. 


임박착수형인 나는 기한을 거의 채울 때까지 끊임없이 정보를 모으고 그 사이 새로운 정보를 통해 아이디어가 생길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정하기를 반복한다. 데드라인이 가까이 올수록 통찰이 커져서 그에 따른 깨달음의 즐거움도 누린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순간에 몰아서 한꺼번에 많은 것을 처리해야 할 때에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림이 그려져 ‘아하, 이거구나.’ 싶을 때도 있다. 


아주 조금만 이 과정을 당길 수 있다면, 마지막 단계에서 아이디어가 넘쳐나 잠을 줄여 강의안을 만드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고, 생각지 못한 일정이 생겼을 때 빚어지는 절대적 시간의 부족을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업을 완수하고 쉼을 갖고 다음일에 착수하는 J의 여유도 누려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조기착수보다는 임박착수의 장점에 올라타고 있으니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때까지는 여기에서 시소를 타고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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