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시대를 밝히는 빛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는데 시대가 천재를 만든 것은 아닐까?
가우디가 살았던 시대는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혼란과 격변의 시대였다.
이슬람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시기 로마 가톨릭의 회복을 명분으로 한 국토회복운동(Reconquista) 또한 80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이에 따라 스페인의 왕권과 교회의 권력 또한 강화되어갔고 그 부작용과 불만이 터져 나오던 시기에 가우디는 태어났다.
가우디가 바르셀로나 건축학교에 입학하고 난 바로 다음 해인 1873년, 스페인은 제1공화국 출범 후1년 만에 반란으로 왕정이 복고되는 혼란을 겪는다. 한편 스페인 경제는 교회가 토지를 독식하는 경제구조로 인해 극심한 빈부격차에 시달리고 노동자들은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일자리를 잃어 더욱 고통받았다. 노동자들이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되자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 영향을 받은 노동조합이 곳곳에 생겨났고 젊은 가우디도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 발맞추어 졸업 후 마타로 노동 단지 내 노동자 주택이나 창고 설계 업무를 맡기도 했다.
1898년 미서전쟁 패배의 영향으로 서민들의 삶은 극심히 피폐해졌지만 그 와중에도 가우디는 카사 칼베트,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구엘공원 등을 건축하며 홀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부자들의 집을 건축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를 보며 일각에서는 흙수저 출신이 돈 맛을 보더니 초심을 잃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가우디의 나이 예순둘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로 인해 콜로니아 구엘 성지 지하 예배당 건설이 미완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그의 나이 일흔 하나에는 프리모데 리베라 장군의 쿠데타로 군부독재가 시작되며 스페인은 점점 더 암흑기를 겪는다.
1929년 세계 대공황과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기 전 일촉즉발의 시대를 살았던 가우디는 묵묵히 성가족 대성당을 짓다 1926년 죽음을 맞이한다.
죽기 전 몇 년간 매일 아침 미사로 하루를 시작해 성당 공사와 고해성사, 산책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수도자 같은 생활을 했던 가우디... 역사의 격변기 속에 가족과 친구의 죽음도 함께 겪었던 가우디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신앙밖에 없지 않았을까?
고 장영희 교수는 그녀의 책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칠흑 같은 밤하늘 속에도 무한한 기회가 숨어있다
칠흑 같은 시대는 가우디를 더욱 빛나는 천재로 만들었다.
칠흑같이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대를 살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