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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DA Jan 25. 2019

공쥬~님 모자의 유래 I

: HENNIN



서양의 어린 소녀들에게 '공주 모자'라 하면 자연스레 떠올릴 긴 베일이 달린 고깔모자는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요?


공주님 모자 : HENNIN - BOQTA - 고고관



HENNIN : SIGN OF ROYALTY OF 15C


때는 바야흐로..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인 15세기 초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3-14세기 유럽은 참으로 힘든 시기를 겪어내고 있었지요.

13세기부터 소빙하기가 닥쳐와 몇 년 동안 겨울이 지속돼 너무나도 추웠고, 비정상적으로 많이 내리는 비로 인해 땅들은 망가져버려 먹을 식량도 부족해지는 대기근을 맞이했으며, 이는 결국 영토확장을 위한 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불안정하고 춥고 배고픈 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축축하고 더러워진 환경은 온갖 병균들의 파라다이스였으며, 14세기 중반에는 당시 유럽인들에겐 하느님의 형벌로 간주된 흑사병이 창궐하여 유럽 인구의 1/3이 넘는 수가 희생되는 등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인 시기를 보내며 나약해진 인간들은 불안한 마음을 신께 의지하게 되죠. 하여 패션도 자연스레 신께 닿고자 노력하는 '고딕 스타일'이 유행하게 됩니다. 대략 1380~1430년을 고딕 스타일의 전성기라 하는데, 오늘의 주인공인 에냉(Hennin)은 14세기 후반에 등장하여 15세기 내내 지체 높으신 여인네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15C STYLE

 어떤 스타일이 가장 극단적일 것인가..

밀라노 두오모


본디 인간의 마음이란 복잡하고 다양하며 사회적 현상에 쉽게 영향을 받죠. 이러한 인간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는 어떠한 모습으로든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혼란한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인간들은 자연스레 종교에 매달리게 되었고, 신께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찔릴 듯 뾰족하고 높은 첨탑 형식의 건물을 세웠습니다. 자연스레 의복 또한 높고, 길고, 뾰족한 스타일이 유행하게 되지요.

 

하지만 동시에!!


주변의 널브러진 죽음을 쉽게 볼 수 있었던 시대를 거쳐 어렵게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엔 신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신에서 벗어나 인간 스스로에게 눈을 돌린 '인본주의'같은 인간 중심적 사상들이 펼쳐진 것이죠.



또한, 십자군들과 손에 손잡고 함께 들어온 동양의 새롭고 화려한 문물들은 마음속 저 깊숙이 애써 억눌러왔던 인간들의 세속적인 욕구를 마구 자극시켰습니다. 베네치아는 점차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가 되어 호시절을 보내게 되었고, 돈이 많아진 상인들은 귀족도 아닌 것이.. 또 그렇다고 평민은 싫은.. 그 어떠한 자기들만의 새로운 계급-브루주아-을 형성하면서, 돈으로 치장한 새로운 패션과 라이프 스타일을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귀족 중심 패션에서 벗어난 새로운 유행 패턴이 등장하게 된 거죠.


우릴 패션리더라 불러다오


이 시대의 의상들을 보면 동방 패션과 섞여 참으로 극단적이고 특이한 스타일이 많이 등장합니다.

뾰족한 요정 신발을 신고, 머리를 과하게 부풀리기도 했으며, 임신이라도 한 것처럼 복부를 크게 부풀게 하고, 땅 끝까지 끌리는 소매를 달기도 하는 등 정말 극단적으로 과장된 패션이 다양하게 돌아가며 유행하게 됩니다.


신께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라기엔.. 교회에서도 이러한 아이템에 '악마의~'란 수식어를 붙여 불렀을 만큼 사실상 인간의 과시욕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편이 맞겠습니다.




그중 에냉은 극단 패션의 선두주자라고도 볼 수 있는데, 에냉의 평균 높이는 14inch로 높으면 높을수록 높은 귀족의 표식이었기 때문에 그 높이와 크기는 끝간데를 모르고 커져만 갔죠. 당시의 여자 평균 키가 158cm였는데 에냉의 높이가 약 91cm에 달한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양한 모양의 에넹


형태는 원뿔 모양, 끝동을 잘라버린 모양, 나비모양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중 원뿔 모양은 최고 귀족이 착용했으며 나비모양은 가장 인기 있었던 모델이었지요. 위에는 보통 얇은 베일을 달았지만 엄청난 부피의 천을 치렁치렁 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높고 무거워진 에냉은 이마 중간에 달린 훅을 당겨 제자리에 위치하게 했습니다.




에냉은 또한 신부의 머리장식으로도 사랑받았습니다.

왕가의 결혼식답게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원뿔 모양의 에냉을 썼네요. 투명 베일을 길게 늘어트린 것이  현대의 웨딩베일과 비슷하지요. 왕비가  신부가 입고 있는 드레스는  시대 유행하던 전형적인 버건디언(En) 혹은 부르고뉴(Fr) 스타일의 드레스입니다.


14~15 세기엔 공국으로 존재했던 부르고뉴는 정치, 경제, 무역 등이 발달했던 중세시대의 핫 플레이스였지요. 하여 부르고뉴 궁정은 유행을 이끄는 트렌드세터들의 각축장이었습니다. 이런 부르고뉴 궁정에서 유행한 스타일을 부르고뉴 스타일 혹은 버건디언 스타일이라 하죠. 이 시대의 패피, 궁정의 그녀들은.. 등 뒤에는 '악마의 꼬리'라고도 불리던 약 5미터 정도의 트레인을 달고, 자신의 키 반만 한 높이의 에냉에, '악마의 발톱'이라 불린 뾰족한 요정 신발을 신었습니다. 이렇게 과장되고 기괴한 모습의 유행 아이템들은 그 불편함과 사회적 제한에도 불구하고 부유함과 우아한 취향의 특성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얼핏 중년의 부인으로도 비춰지는 이 여인은 몇 살일까요?


당시 유행이었던 부르고뉴 패션 그대로 치장한 그녀는 바로 자신의 결혼식 중으로, 지금의 중학생 나이인 14살의 어린 소녀입니다. 28살이나 연상인 아버지뻘이지만, 피렌체 출신의 메디치가 은행원인 부자 남자와 결혼하기에 그녀는 다양한 아이템으로 마음껏 자신의 부와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중 목걸이와 벨트는 마치 현시대의 명품백이나 구두 같은 존재로, 누구나 착용할 수는 있었지만 신분에 따라 재료의 차이는 분명했죠. 금이나 은, 보석으로 장식된 금속 벨트는 지체 높으신 분들의 것이었고, 아랫것들은 마끈 정도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이 시대의 미적 포인트는 바로 핏기 하나 없어 보이는 창백한 흰 피부!

이를 위해 헤어라인은 대머리가 연상될 만큼 뒤로 연장시켜 관자놀이 부근 잔머리까지 모두 뽑아 없앴으며, 남은 머리는 한대 모아 묶어 에냉 속으로 넣었고, 드러나는 피부에는 백납분을 발라 더 희고 곱게 연출했습니다. 흰 피부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자 부의 상징이었죠.




그게 어느 정도까지 머리카락을 없앴느냐면.. 거의 변발 수준이었습니다. 눈썹까지도 없애는 기괴한 모습을 고수한 이유는 이런 모습이 더 순진하고 깨끗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미에 대한 관점은 정말 시대별 민족별로 참 많이 다르며, 여성에게만 순결함을 강요하는 사회적 현상은 동서양 다를 바가 없었네요.


남자들은 사랑하는 그녀들이 예뻐 보이기 위해 매일 아침 이마를 면도하는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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