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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얼굴의 아름다운 죽음

; 죽음으로 완성된 신화

by MODA




그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죽음은 아름답게 보였다



14세기 이탈리아 시인의 표현처럼, 죽음의 모습마저 아름다웠던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i}는 사람들에게 쉽사리 잊히지 않았습니다. 역사 속 아름다운 여인들은 수도 없이 많았으나 계속 기억되기란 쉽지 않죠.

죽음은 그녀의 육체를 앗아갔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던 예술가들로 인해 시모네타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 불멸의 존재가 됩니다.



폴리지아노와 화가들



흰 장밋빛 얼굴에 하얀 드레스를 입고 금발의 머리를 휘날리며..



피렌체 시인 폴리지아노의 속에서 시모네타는 숲 속의 잔디밭을 관장하는 뮤즈 또는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풀, 꽃, 신선한 공기, 개울을 좋아하는 목가적인 님프의 모습이었습니다.


폴리지아노는 소녀도 아닌 결혼한 여인에게 순수·순결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시로 시모네타의 미덕을 치켜세우면서도 성적으로 성숙한 욕망의 대상으로 묘사해, 남성들만의 뒤틀린 판타지 속 이미지를 잘 그려냈습니다. 시인이 시모네타에게 부여한 이미지는 순수하면서 섹시한 도덕적인 여인이었죠. 그것은 순결과 에로티시즘의 결합이었습니다.



이상화 속 다양한 모습의 시모네타


피렌체의 '고전 예술과 학문의 부흥을 찬양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가진 시인에 의해 이상화된 시모네타의 모습은, 본인들의 상상력을 가미한 화가들에 의해 재탄생되었습니다.


시모네타는 오히려 죽음 이후에 신플라톤* 사상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모델이 되었죠. 황금빛 머리를 휘날리며 신비롭고 슬픈 표정을 띤 채로 시모네타는 화가들의 그림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실제 어떠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술가들의 상상 속에서 그녀는 더욱 완벽한 신화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시모네타 얼굴은 성모 마리아로, 비너스로, 아테나로, 춤추는 여신으로, 클레오파트라로 변신했습니다.



* 신플라톤 사상 - 고대 그리스 철학을 기독교 신학에 연결시킨 사상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사실 현대까지 이어지는 시모네타의 명성은 메디치{Medici}의 형제도, 시인 폴리지아노도 아닌 화가 보티첼리가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림으로 그녀의 얼굴을 르네상스의 미학적 규범에 완벽히 들어맞는 미인의 원형으로 만들어 주었죠.


보티첼리는 피렌체의 신플라톤주의를 가장 잘 해석해 보여준 화가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기독교적 요소가 담긴 예술 세계를 펼쳤습니다. 특히 폴리지아노가 형상화한 님프의 모습에 시모네타의 얼굴을 투영시켜 이상적인 초상화를 그려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린 모든 여성에게 시모네타의 특징을 넣었습니다.


보티첼리에게 시모네타를 소개시켜주고 있는 줄리아노 데 메디치, Eleanor Fortescue-Brickdale, 1922


보티첼리는 실제로 번은 시모네타 초상화를 그렸을 것으로 짐작되며, 나머지는 모두 기억에 의한 묘사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래서인지 시모네타를 모델로 했다는 그림들 속 얼굴들은 미묘한 차이가 있거나 아예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죠. 그녀가 죽은 후 강박적이다시피 시모네타의 얼굴을 그린 보티첼리로 인해, 그녀는 르네상스를 정의하는 대표적인 얼굴이 되었습니다.


- 과연 화가와 시모네타는 서로를 알았고, 그녀는 그의 그림을 위해 모델을 섰을까요?
시모네타를 불멸의 존재로 만든 건 그림이지만 사실, 그녀가 그림의 모델이 되어본 적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당시 시모네타처럼 귀족계급의 여인들이 화폭 앞에 모델로 선다는 건 매우 부적절하고 품위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녀가 묘사된 그림들은 상류층 귀부인이 취하기엔 무리가 있는 포즈와 외적 모습, 그리고 아예 가능하지 않았던 누드로 그린 그림들도 있었죠. 때는 이제 막 중세를 벗어나기 시작한 르네상스 초기 무렵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존하는 그림들은 거의 모두 그녀의 사후에 그려진 것들이죠.

- 그렇다면 시모네타와 보티첼리는 서로를 알았을까요?
시모네타와 보티첼리는 서로를 알고 있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근거는 보티첼리와 베스푸치가족은 이웃사촌이었습니다. 베스푸치 가족의 집 근처에 보티첼리의 아버지가 집을 샀고 보티첼리는 시모네타가 죽기 6년 전부터는 아버지의 집에서 살았죠. 그들이 왕래가 있던 이웃 관계였다는 사실은 베스푸치 가족과 보티첼리 사이에 주고받은 커미션이 있었다는 점에 근거합니다.

그리고 줄리아노가 조스트라{Giostra}에 출전 당시 들었던 깃발에 보티첼리가 그렸다는 시모네타의 얼굴과, 시모네타의 시아버지가 로렌초에게 보낸 편지에서 <슬퍼하는 줄리아노에게 시모네타의 초상화를 주었다>라는 구절, 마지막으로 조르조 바사리가 쓴 '보티첼리의 생애' 중 <코시모 1세{Cosimo I} 공작의 옷장에 두 개의 옆모습 여성 초상화가 있었고, 그중 하나와 줄리아노가 사랑에 빠졌다>라는 내용에 근거하여 보티첼리가 실제로 한 번은 시모네타의 초상화를 그렸을 것으로 짐작되며, 나머지는 모두 기억에 의한 묘사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머리스타일로 촉발되는 에로티시즘

매우 긴 금발머리를 바람결에 부분적으로 날리는 머리카락은 1470년대 피렌체 문학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님프의 모습으로, 보티첼리의 그림 속 여성들은 모두 금발머리에 빛나는 피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여신 비너스의 머리는 단순히 풀어헤친 머리보다 복잡한 스타일입니다. 불규칙적으로 느슨하게 묶여 비너스의 몸을 감싸고 있는 머리는 나른하고 몽환적인 느낌을 선사해 줍니다.


La nascita di Venere, da Sandro Botticelli, Uffizi, 1485


시모네타가 죽은 지 9년 후에 완성된 [비너스의 탄생{La nascita di Venere}]은, 비너스의 모델이 시모네타가 맞다면* 오롯이 보티첼리의 기억에 의존하여 그려진 그림입니다. 그림 속에서 시모네타의 모습은 미학적인 이미지로 변형되어 진정한 '신플라톤주의적 아름다움'으로 이상화되었죠.



* 저명한 역사가 펠리페{Felipe}에 의해 ‘낭만적인 넌센스'로 일축되기도 했지만, 많은 연구가들은 비너스의 모델이 시모네타라 생각함



보티첼리의 관심은 점점 더 머리스타일에 집중되었고, 단순히 머리를 풀어놓은 상태가 아닌 복잡한 스타일을 통해 시인 폴리지아노가 심어놓은 에로틱한 이미지를 충실히 재현해냈습니다. 보티첼리가 머리카락에 관심을 두게 된 그 시작은 스승의 가르침에 의한 것으로 베로키오는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다른 헤어스타일을 고안하는 것을 훈련시켰습니다.


15C 결혼한 여인들의 머리장식


당시 명망 있는 기혼 여인들은 유혹의 상징인 머리카락을 머리 장식으로 가리고 다니거나, 심지어 결혼 직후엔 머리카락을 자르기도 했습니다.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포기하며 남편에게만 충실하겠다는 의미였죠. 그만큼 여성의 긴 머리카락은 여성스러움의 상징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엔 소녀들을 제외하고 풀어헤친 머리방탕함의 상징이었고, 느슨하게 묶인 머리는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아직 중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기였고, 교회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악마시 했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머리카락에 대한 경시는 13세기부터 지속되어 온 중세 기독교적 문화 현상입니다.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머리 모양에 돈을 쓰는 일은 똥 덩어리에 돈을 쓰는 것과 같았고 머리카락을 가꾸는 일은 여성의 허영심을 나타내는 지표였습니다.


보티첼리의 여성 머리스타일에 관한 연구는 그동안 예술사를 지배해왔던 머리카락 경시에대한 기독교적 편견에서 벗어나려는 도전이었습니다. 그가 이상화시키고 매혹적으로 표현한 곳은 여인의 머리카락이었습니다. 그가 그린 여인들의 머리카락은 점점 더 화려하고 복잡해져 갔습니다.


보티첼리의 여신들의 머리장식과 (위)/ 이상화된 여인의 초상화 속 머리스타일 (아래)

보티첼리의 이런 자유분방한 머리카락은 장르를 안내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그것은 실제가 아닌 이상적인 여성을 그려낸 상상의 영역이었죠. 폴리지아노의 시 속에서 머리카락을 휘날리던- 매혹적이지만 그래도 순결했던 님프의 모습은 점차 시인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의 관능적으로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14세기 시인 페트라르카는 짝사랑했던 여인 라우라{Laura}를 신성시하며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고정 관념화시켰습니다. 시인은 라우라의 머리카락에 주의를 기울였죠. 그녀의 머리카락은 황금빛 금발로, 목 위로 흐르는 땋은 머리와 매듭진 형태로 표현하며, 그런 머리스타일이 자신에게 미치는 매혹적인 효과에 대해 썼습니다.



* 14세기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의 기초를 다진 인물로, 중세를 문화적 '암흑기'로 칭하며 그리스·로마 고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함. Lorenzo시대 피렌체의 신플라톤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침



Ideale di Dama, da Sandro Botticelli, 1475-80 ca.


보통 보티첼리의 프랑크푸르트*초상화로 인식되는 이 초상화는 바사리가 언급한 '두 개의 옆모습 여성 초상화'중 줄리아노가 사랑에 빠졌던 여인의 초상화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녀의 목에 걸려있는 펜던트는 로렌초 데 메디치가 소장했던 것으로 알려진 헬레니즘 시대에 만들어진 보석의 복제품인 카메오{Cammeo}**로, 여인의 머리 위에 있는 로렌초의 상징인 깃털 장식과 더불어 미루어보면, 이 그림은 보티첼리가 로렌초에게 선물한 그림으로 추정됩니다. 그림의 제작 연도는 1475-1480년으로, 1475년은 시모네타가 죽기 1년 전입니다. 하지만 이 초상화도 당시 시모네타를 묘사한 일반적인 초상화가 아닌 여성의 아름다움을 제시하는 이상화입니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Francoforte)에 있는 슈테델 박물관{Städel Museum}에 소장

** 양각으로 무늬를 낸 장신구



보티첼리 그림 속 시모네타의 베스파이오

고대 조각에서 영감을 받은 베스파이오{Vespaio}는 피렌체 여성들의 머리장식이었습니다. 리본과 수많은 진주로 만들어 머리에 감아 원하는 자리에 고정시켜주는 끈으로, 시모네타의 성{姓}인 Vespucci를 연상케 하는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보티첼리가 그린 머리스타일은 보통의 베스파이오보다 더 정밀하고 독특하게 연출된 상상의 영역입니다. 실제로 가능한 머리스타일이 아니죠. 이 세상의 화려함을 뛰어넘는 모습으로 연출하려 보티첼리는 200개 이상의 진주를 머리에 고정했습니다.


의도적인 화려함이 돋보이는 머리는 자유분방함이 느껴지지만 사실, 매우 세심하고 정교하게 연출되었습니다. 머리카락들의 불규칙한 배열은 일상적인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매우 도발적입니다. 귀부인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관능적인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녀에게서 에로틱한 설렘이 느껴지는 건 아닙니다.

그림 속에서 그녀는 항상 몽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에 초연한 듯한 생기 없는 표정은 어딘가 우울해 보이기까지 하죠. 폴리지아노의 시에서 시모네타는 순결하지만 에로틱한 욕망의 대상이었다면, 보티첼리의 여인은 완전히 순결하지도 않지만 육욕적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화가는 의뢰인의 욕망에 따라 의도적으로 시모네타를 다양한 범주를 넘나들게 하며 실제와 이상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했습니다.


Simonetta Vespucci, da Piero di Cosimo, 1480-1490 ca.

화가 피에로{Piero di Cosimo}가 그린 시모네타는 조금 더 노골적입니다. 그는 시모네타를 클레오파트라로 묘사한 누드화를 그렸죠. 다른 그림과는 달리 밑단에는 시모네타의 이름까지 쓰여 있습니다.

시모네타가 사망했을 시 화가는 겨우 13살로, 아마 그녀와 마주한 적도 없었을 화가는 4년 뒤 일종의 예술적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시모네타의 이상화를 그렸습니다. 보티첼리에게 시모네타가 여신이자 님프였던 것처럼 피에로에게 시모네타는 클레오파트라였던 것이죠.


여러 갈래로 땋아 올린 금발머리는 어느 고대 여신 혹은 메두사를 연상시킵니다. 피에트로 또한 많은 보석으로 복잡하게 엉켜있는 머리를 장식했고 수많은 진주로 이어진 끈을 감아 현실세계의 화려함을 넘어선 이상적이고 관능적인 머리스타일을 연출했지만, 피에트로의 시모네타 또한 몽환적인 시선에 엷은 미소 띠고 있는, 욕망과 순수함 그리고 실제와 이상의 경계선을 오가는 또 다른 인물입니다.


그녀의 길고 얇은 목에 걸린 금목걸이를 감싸고 있는 뱀은 보통 이른 나이에 그녀의 목숨을 앗아간 질병을 상징하거나 신플라톤주의적으로는 죽음을 나타내지만, 에로틱함의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교회가 싫어한 소녀들의 머리와 옷차림


매혹적으로 그려진 머리스타일은 당연히 성직자들이 매우 싫어했습니다. 그림으로 표현된 시모네타의 아름다운 모습은 유행처럼 번졌고 소녀들은 따라 했죠.

1490년, 피렌체의 수도사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1452-1498)}는 딸들이 미사에 참석하면서 머리를 가리는 베일을 쓰지 않도록 내버려 둔 어머니들을 비난했습니다.





유혹되는 자신들의 잘못이 아닌 소녀들이 머리를 풀고 다니는 것을 질책했습니다. 소녀들이 머리를 풀고 다니는 것은 당시 평범한 현상이었는데도 말이죠. 결혼한 여인들은 머리에 베일을 써 감추거나 틀어 올렸지만, 소녀나 약혼하지 않은 여성들은 머리를 느슨하게 묶거나 풀고 다녔습니다.


그림은 패션잡지처럼 당시 세련되고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를 제공했습니다. 화가들이 그리는 - 하늘하늘한 소재의 아름답게 주름 잡힌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장밋빛이 도는 백옥 같은 피부에 빛나는 금발의 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맨발로 걷는 고대 여신이나 님프의 아름다운 모습은, 오늘날 아이돌의 모습처럼 시대의 스타일로 꼽혔고 당연히 소녀들은 따라 했습니다. 집에서 입는 과르넬로{Guarnello}는 요정의 옷이 되었습니다.


소녀들은 님프처럼 연출해 얇은 드레스를 입고 다녔고, 이는 교회의 심기를 많이 불편하게 했습니다. 수도사 사보나롤라는 도덕적 타락의 징후로 보고 공개 설교에서 어머니들을 질책하죠.



피렌체의 관습을 보십시오!
피렌체의 어머니들이 딸들을 어떻게 결혼시키는지..
님프처럼 치장시켜 가장 먼저 교회로 데리고 나옵니다.



그 시절에도 사람들은 거룩한 종교활동만 하러 교회를 다닌 건 아니었나 봅니다.

성직자들은 축제 기간에도 님프처럼 꾸미고 돋보이려 활발히 돌아다니는 소녀들을 비판했습니다. 더불어 성모 마리아가 마치 창녀의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며 피렌체 화가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죠.

여인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아무도 유혹당하지 못하게 머리카락을 베일로 덮고 망토로 드레스도 가리고 다니도록 강요당했습니다.



정조와 순결을 상징하는 하얀 드레스

보티첼리가 그린 여신과 님프의 드레스는 아름다웠습니다.


'금성과 화성' / '봄'의 삼미신


보티첼리의 여신과 님프의 드레스는 고대 그리스·로마 드레스를 기반으로 한 상상 속 스타일입니다. 그들의 후손인 당시 이탈리아 여인들은 그리스의 리넨으로 만든 키톤{Chiton}과 유사한 카미치아{Camicia(chemise)}를 기본 속옷으로 항상 착용했습니다. 비너스의 무릎 부분을 보면 하얀 드레스 밑으로 얇은 천의 카미치아를 볼 수 있으며, [봄{Primavera}] 속 삼미신{Le tre Grazie}도 카미치아와 유사한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키톤과 페플로스 / 15C 피렌체 기본 드레스 과르넬로


여신을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하는 흰 드레스는 고대부터 입어온 그리스의 키톤과, 15C 피렌체 여성들이 집에서 입는 가정용 작업복인 과르넬로와 비슷합니다. 과르넬로는 가벼운 소재로 만든 기본 드레스로 편리함과 활동성을 위해 허리나 엉덩이 부근을 끈으로 감아주기도 했는데, 이때 얇은 천으로 인해 불규칙적으로- 자연스럽고 우아한 볼륨감이 생겼습니다. 과르넬로의 장식성이 배제된 우아함과 이상적인 아름다움‘천사의 표준 복장’으로 예술가들에 의해 선호되었습니다.


보티첼리는 자주 흰 드레스를 여신의 드레스로 채택했는데, 시모네타일 가능성이 있는 프랑크푸르트초상화에서 드레스의 매우 정밀한 묘사를 볼 수 있습니다. 리넨에 레이스 자수가 드려진 드레스는 다른 그림 속의 흰 드레스보다 좀 더 현대적인 기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피렌체의 수녀원에서 제작한 레이스기술*로, 15세기의 발달된 레이스 장식을 엿볼 수 있죠.



* 흰색 리넨을 바탕으로 리넨 또는 비단사를 사용해 흰색으로 자수를 놓는 기술



레이스 장식과 흉갑


네크라인을 따라 가슴 중앙으로 연결된 땋은 머리장식 밑으로 보이는 파란색의 흉갑(가슴을 가리는 갑옷)은 순결하고 이상주의적인 여성의 특징으로, 줄리아노가 조스트라 출전 당시 들었던 깃발에 그려진 아테나 여신 또한 흰 드레스에 갑옷을 입은 모습으로 연출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없어진 깃발 속 그림은 프랑크푸르트초상화와 유사할 수도 있겠습니다.

여신 같은 옷차림과 관능적으로 화려한 머리스타일에, 흉갑을 착용한 채 단호한 결의로 정조를 지키고 있는 이 복합적인 장치로, 화가는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을 피하며 그림 뒤에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봄, 산드로 보티첼리, 우피치 미술관, 1480 ca. / 여신 플로라


보티첼리의 우화{Allegoria}에는 이 자주 등장합니다.

피렌체는 이름부터 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개화{blooming}를 의미하는 라틴어 'Florentia'와 풍요로운 땅의 의미를 가진 'Florents', 꽃의 여신 'Flora'의 의미가 결합된 'Firenze{피렌체}'는 온화하고 영원한 꽃의 정신을 형상화한 곳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은 피렌체를 꽃처럼 번영하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의인화하여 그렸고, 시모네타로 그 이상적인 형태가 완성되었죠.



배 앞으로 꽃을 가득 안고있는 플로라


[비너스의 탄생] 속에서는 일종의 축복을 내리는 것처럼 꽃 비가 내렸고, 메디치 황금기의 이상적인 봄을 묘사한 [봄]에서 꽃으로 장식된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꽃의 여신 플로라{Flora}는 피렌체의 꽃을 피우는 여인으로 묘사된 시모네타로, 월계수와 오렌지 나무*의 보호를 받으며 배에 꽃을 한 아름 안고 미소 짓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폴리지아노가 ‘줄리아노와 시모네타의 사랑’에 대해 쓴 시 속에서 여인의 모습을 그린 구절 [꽃으로 가득 찬 배..]과 일치하죠. 그녀 자신이 만발하여 번성하는 피렌체이자 피렌체의 모든 것을 꽃으로 축하하고 있는 님프로, 로렌초 데 메치디 치하의 번영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 오렌지 덤불은 메디치가의 상징



도덕적 가르침과 예언적 암시를 담고 있는 우화는 당시 종교화와 함께 귀족 가정 내 가구의 일부로, 침대의 머리판에 그려지거나 장식용으로 신혼부부에게 선물되기도 했습니다.

[봄] 또한 메디치가문의 결혼 선물*로 의뢰되었고, [금성과 화성{Venere e Marte}]은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그려진 신혼부부의 침실 장식의 일부였죠. 수수께끼 같은 수많은 상징이 숨겨져 있는 우화는 그림을 보고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을 구별해내는 지식 탐지기 같은 것으로, 해독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인식할 수 장치였습니다. 그들 만의 놀이이자 차별적인 문화였죠.



* 원래는 줄리아노가 자신의 첫 아이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의뢰했으나, 암살된 후 피에르프란체스코{Pierfrancesco de’ Medici}가 재의뢰하여 결혼 축하선물로 재활용됨





폴리지아노의 찬사로 신화가 되고 보티첼리에 의해 불멸의 존재가 된 시모네타.

시대의 필요에 의해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만들어진 뮤즈는 죽어서도 그녀를 사랑한 예술가들로 인해 끊임없이 재탄생되었습니다. 너무 이른 죽음으로 비극을 맞이했지만, 죽음은 늙음도 앗아갔기에 영원한 '이상적인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아이콘이자 모델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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