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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아무도 모르는 소녀

;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by MODA


그녀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지만, 누구나 아는 그녀



Meisje met de parel, Johannes Vermeer, c. 1665


입을 살짝 벌린 채 고개를 돌려 어깨너머로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은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모나리자와 마찬가지로 정보가 없는 신비한 소녀의 정체는 작품의 인기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네덜란드의 황금시대에 그려진 이 무명의 소녀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우리의 눈을 응시하며 끌어당긴다. 시선에 사로잡힌 그 순간 우리는 관찰자를 넘어서 그림에 관여하게 되는 심리적 대상이 된다. 이는 [모나리자{Monna Lisa}]와 매우 닮아있다. 모델의 감정을 포착하여 담아내는 화가의 방식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떠오르게 하며, 실제 그녀는 '북유럽의 모나리자'라 불리기도 한다.






터번을 두른 소녀의 이국적인 모습



베르메르 소녀의 터번은 그 형태와 색이 독특하다. 특히 터번의 형태는 화가가 연출한 스타일로 짐작된다. 단순하지만 감각적인 스타일로 연출된 머리장식은 묘하게 세련된 느낌마저 선사한다.


유럽에서 오스만 제국의 패션은 이미 르네상스 시절에 유행했었고, 동방에서 만들어낸 고품질의 이국적인 물품들은 베네치아를 통해 유럽으로 들어와 유럽인들의 집안 곳곳을 장식한 지 오래였다.

그중 터번 패션은 15-16세기 유럽 남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돈 있고 힘 있는 남성들은 머리에 천을 한 보따리씩을 얹고 다니며 위엄을 과시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유럽의 주요 경제 및 문화 세력이었다. 발달된 문명에서 온, 이 머리가 강조되는 머리장식은 철학과 지식이 중요했던 유럽 르네상스 인들에게 위대한 지식의 근원처럼 여겨졌다.

이러한 터번은 이국주의의 상징으로 유럽의 화가들이 애용하는 소품이 되었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연출과, 풍성하고 주름진 직물의 표현으로 화가들은 자신의 기량을 뽐낼 수 있었기 때문에 선호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베르메르, 소매 디테일 / 여주인과 하녀, 베르메르, 소매 디테일

소녀의 황토색 재킷 또한 터번의 영향으로 이국적이라 뭉뚱그려 표현되지만, 사실 당시 네덜란드 여인들이 입었던 재킷의 형태다. 화가는 넓고 힘찬 붓터치로 큰 주름을 가진 두툼하고 투박한 옷감 -아마도 모직물- 을 표현했다. 몸통에 붙여진 소매의 소매산 뒷부분에 보이는, 넓은 간격으로 접어서 생긴 두툼한 팬시턱은 당시 여인들의 드레스나 겉옷의 소매에서 볼 수 있으며, 이는 소매 뒷부분에 큰 볼륨감을 주려는 장치였다.


바로 이 터번과, 형태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 이국적인 옷처럼 보이는 상의는 그림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었다. 그림은 실존인물의 초상화가 아닌 머리와 얼굴 표정에 대한 연구인 트로니{Tronie}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 작은 꽃다발을 들고있는 터번 소년 / 베아트리체 첸치


비평가들은 베르메르가 다른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생각하는데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그려지기 약 10년 전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트로니로 유명했던 플랑드르 예술가 미키엘{Michiel Sweerts}의 [작은 꽃다발을 들고 있는 터번 소년]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어두운 배경은 인물의 입체감을 높이기 위해 당시 초상화에서 널리 표현되었으며, 소년의 노란색 터번과 군청색의 숄은 [진주 귀고리의 소녀]를 떠올리게 한다.

혹은 당시 유럽을 사로잡은 -베르메르도 잘 알고 있었을- 베아트리체 첸치*를 묘사한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베아트리체의 터번과 뒤를 살짝 돌아보는 포즈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와 닮아 있다.



*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를 죽이고 1599년 참수당해 억압받는 순수함의 상징이 된 이탈리아의 귀족 여인




초상화인가, 트로니인가...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초상화들이 그렇듯, 밝혀내는 건 학자들의 몫이다. 그렇기에 논란은 숙명이다.

초상화라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녀가 화가의 큰 딸 마리아나 집에서 일하던 소녀라 추측하고, 트로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배경이 없으며 소녀의 눈썹이나 속눈썹등의 묘사가 없다는 점*과 그녀의 이국적인 패션을 들어 이상화된 인물의 그림으로 추정한다.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측 입장 또한 후자와 같다. 네덜란드에도 터번은 최근 발달한 무역으로 들여와 인기를 끌었지만, 17세기 네덜란드 소녀들의 패션은 아니었다. 특별하게 연출된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화가의 사후 작성된 유품 목록에는 ‘터키 스타일로 그려진 두 개의 트로니’가 있었는데, 학자들은 소녀의 초상화가 그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한다.



* 하지만 2018-2020년 미술관의 정밀한 연구에 의해 소녀에게는 섬세한 속눈썹이 있었고, 배경에는 녹색 커튼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짐. 적어도 그림을 위해 어떤 모델이 있었음을 시사함




네덜란드 황금시대 트로니 / 렘브란트(좌), 아드리안(중), 프란스 할스(우)


네덜란드어로 'Tronie: 트로니'는 대략 '얼굴(상판, 낯짝) '을 의미하며, 초상화처럼 보이지만 특정한 유형의 캐릭터나 상상 속 인물을 그린 이상화로,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회화 스타일이다. 렘브란트에 의해 대중화된 네덜란드의 특징적인 예술로 약 40년 동안 유행했으며, 지금은 사라진 용어이다. 특별한 복장을 입고 과장된 표정이나 제스쳐가 특징인 머리와 얼굴 표정에 대한 연구로 지금의 캐리커처라 할 수 있다.



주인공이 된 진주 귀고리

전통적으로 진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위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다른 보석들과는 달리 가공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완성품이었던 진주는, 그 완벽한 아름다움과 희소성으로 오랜 시간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왕족과 귀족들만이 독점적으로 착용했다.

17세기에도 진주는 부와 권력, 중요한 지위의 상징이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일반 시민들도 진주를 원하기 시작했고, 실제 이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점차 돈이 계급이 되는 사회가 되면서 사람들은 이 돈으로 얻어진 사회적 지위를 과시적으로 드러내고 싶어 했다. 당대의 화가들은 여인들이 목걸이를 차며 귀고리를 거는 모습, 화장대 위의 보석들을 자연스러운 구도로 연출하여 화폭에 담아내었다.



메르베르 그림 속 진주의 모습들


진주는 베르메르의 서명만 있을 뿐 연대를 알 수 없었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연대를 알려주기도 하는데, 베르메르가 진주를 모티브로 그림을 그렸던 1665-68년 경으로 추정한다.


가짜 진주의 유혹

소녀의 귀고리는 그 크기가 남다르다. 두어 번의 붓놀림으로 완성된 진주 귀걸이는 자세히 보면 고리 부분이 없다. 하여 화가의 예술적인 과장과 상상의 산물로 보기도하는 소녀의 진주 귀고리는 가짜일 확률이 높다. 일단 그 크기가 자연에서 나왔다고 보기엔 어려울 정도로 크며, 만약 있다 하더라도 그리 넉넉하지 못했던 화가에게 그만한 진주를 살 여유는 없었다.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누구나 갈망하던 진주가 모조품으로 탄생하게 된 데에는 원하는 것을 기어이 손에 쥐고 싶은 인간의 심리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당시에는 모조 진주가 다량으로 생산되어 왕족이나 귀족들만 했던 진주 장신구를 일반 여성들도 착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진주가 진짜이건 아니건 진주는 터번을 제치고 명실상부 그림의 주인공으로 자리를 차지했으며, 소녀는 우리에게 영원히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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