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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Dec 26. 2021

아닌 건 아닌 거지.

나는 대체 무엇에 길들여져 있는 걸까.

한 사무실 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가 발견되었다. 


여직원이 드나드는 화장실. 서로 기본적인 믿음은 가진 사무실의 사람들.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사람이 내 앞자리 남직원이었음이 밝혀질 때까지 사무실 사람들은 '몰래카메라'라는 이상한 기계로 술렁이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범인이 밝혀지자 불쾌감이 사무실을 덮쳤다. 배신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여직원들은 화장실에 갈 때마다 올라오는 트라우마를 애써 누르며 최대한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 하거나, 무시하려고 애썼다. 


공중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가 발견되는 일이 허다하다. 경찰서에서 발견된 몰래카메라는 동료 경찰이 몰래 단거였다. 초등학교에서 발견된 화장실 몰카는 학교의 한 선생님이 설치한 거였다. 칸막이 아래로 폰이 들어올까, 어딘가에 카메라가 숨어있진 않을까.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주변을 살피는 일은 일상의 작은 행동이 되었고, 사회의 작은 풍경이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나는 선생님에게 폭행을 당했다. 물리 선생님에게 뺨을 삼십 대 넘게 맞은 거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아버지를 데리고 학교를 찾았다. 중국어를 가르치는 담임 선생님은 내게 부모님이 왔으니 교장실로 가보라면서 아이들이 다 앉은 교실 교탁에서 내게 물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니?"


꼭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벌려야 했냐던 그녀의 물음을 뒤로한 채 나는 교장실로 향했다. 물리 선생님은 끝끝내 "미안"이라는 한마디 말만 띡 던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에 다녔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편인 나에게 많은 어른들과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이 말했다. 


"불편하면 투덜대지 말고 불편한 사람이 적응해야지."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는 분위기 앞에서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했어야 했고, 해야 할까?




크리스마스 다음 날,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기분에 젖어 마무리를 하는 기분으로 만화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만화를 보다 보니 소변이 급해 반층 위 화장실로 향했다. 남녀 공용 화장실이었다. 멍하니 여자 칸에 앉아 오줌을 누는데 천장에 검은색 기계가 보였다. 천조각에 담긴 검은색 기계가 천장에 요상한 모습으로 천장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인상을 푹 쓴 채로 천장을 보며 저게 대체 뭔가 뚫어져라 쳐다봤다.


애초에 공용 화장실을 갈 때마다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불안감에 둘러보면 늘 문에는 '카메라 집중 단속 구간'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래도 의심이 사라지지 않으면 벽 곳곳에 난 구멍에 휴지를 말아 박아 놓는다.


자리에 돌아와 앉았는데 기계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몰래카메라는 아닌지. 그게 무슨 기계 던 간에 그 속에 몰래카메라가 숨겨진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문제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도 몰랐다는 거다.


"불편하면 투덜대지 말고 불편한 사람이 적응해야지."


불편한 상황에서 목소리를 낸 사람이 처벌받는 상황을 많이 봤다. 두려웠다. 나는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이 불편한 감정에 익숙해져야 된다는 생각의 관습에 짓눌려 내 속에 어떤 생각들이 오고 가는지 재빨리 알아채지 못한 채로 천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찝찝하다. 저게 뭐지. 혹시 몰래카메라는 아니겠지. 그래. 설마. 아닐 거야. 생각하면서. 아니길 바라면서.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를 하지 못한 채로, 나는 자리로 돌아와 앉아, 빙글빙글 머리를 돌고 도는 천장에 달린 기계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하고 있었다. 찝찝한 기분. 그리고 이 찝찝함에 짓눌리는 기분으로 멍하니 앉아 다시 만화책을 들여다보았다.


여자 칸


잠시 뒤에 남자 친구가 화장실을 가겠다고 말하며 나갔다. 얼마 뒤에 그가 나를 부르며 나오라고 손짓했다. 핸드폰을 손에 쥔 그는 나를 데리고 화장실로 갔다. 나는 열린 화장실 문 속에서 방금 전 누군가 있어 열어보지 못했던 남자 칸의 풍경을 마주한다. 남자 칸의 풍경을 보니 이상한 usb단자가 천장에서 주렁주렁 아래로 떨어져 내려와 있다. 우리는 떨리는 손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다. 찍고 돌아와서 우리는 이야기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네가 봐도 이상하지."

"응. 이상해. 이게 대체 뭐야. 이거 어떻게 해야 돼?"


남자 친구는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는데 옆에서 찰칵하는 소리가 났다며 뭐지 하고 주변을 둘러보다 그 기기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다. 가뜩이나 그는 여기저기에 달린 cctv 때문에 예민한 상태였다. 그가 외국인이라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모르는 사회의 일면을 쉽게 알아차질 수 있다는 거였다. 언젠가 그가 내게 한국에 cctv가 너무 많다고 했을 때 나는 그게 좋은 거라고 말했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면서 의문해보게 되었다. 정말 그게 좋기만 할 걸까?


우리는 우선 사장님께 물어보자고 했다. 사장님하고 부르니 지금까지 우리가 물어보는 족족 날카롭고 무례하게 대답하신 직원분이신지 사장님이신지 알 수 없는 여자분이 대답하셨다.


"사장님.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화장실 천장에서 이상한 기계 봤는데요. 그 천장에 달린 게 뭐예요?"

웬 일로 그분이 친절하게 나왔다.

"아. 그거요. 사실 그게 오해를 많이 사는데 그거 그냥 mp3에요. 노래 들으려고 거기에 둔 건데 다들 많이 오해하시더라고요."

"아... 그래요?"


우리는 대답을 듣고 돌아와 앉았다.


"그런데 그게 진짜 mp3인지 어떻게 알아? 녹음기여서 오줌 놓는 소리 녹음 한걸 지도 모르잖아."

"아니야. 요즘 기계 속에 몰래카메라 숨기기가 얼마나 쉬운데, 그 기계에 몰래카메라 숨겨뒀을지도 모르잖아."


우리의 결론은 다시 확인사실을 체크해보는 일이로 이어졌다. 다른 직원분들이 모두 곳곳에 만화책 배치를 하러 가셨는지 같은 여성분이 카운터에 서계셨다. 그 mp3라는 건 들어서 안 건지 누가 mp3라고 했다는 건지 정확히 그분에게 물으니 그분이 그 기계를 자신이 달았다고 한다.


"아. 그거 제가 화장실 갈 때 노래 들으려고 단거예요."


"... 아... 그래요? 

근데 그거 떼셔야 할 것 같아요. 요즘 같은 때에 그렇게 천장에 달아 놓으면 오해도 사고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아무래도 천장에서 떼셔야 할 것 같은데..."

여성분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아. 네. 그럼 제가 사장님한테 말할게요."

"아... 네."


애초에 고객에게 친절하지 않는 만화카페였다. 바빠서 그런 걸 지도 모르지만 이 이상한 화장실 기계 말고도 기분 나쁜 상황이 다섯 번 넘게 일어나 가뜩이나 기분이 나쁜 참이었다. 옆에서 고객이 쓰고 간 담요에 소독 스프레이도 뿌리지 않고 접어 칸막이에 되돌려 놓는 직원들과 방석 아래에서 나온 장난감 조각들. 청소를 하지 않는 게 분명했고, 음식이 되었다고 해서 가지러 가서 한참을 서 있는데 "아." 하시며 까먹은 걸 기억했다는 듯이 어딘가에서 음식을 가져와 건넸고, 병따개가 필요한 음료 병에 병따개 없이 주셔서 가서 따달라고 하니까 카드 가져와 보라고 해서 가져가니 계산서에 추가하려고 했다.


남자 칸


찝찝함은 여전했다. 그 여성분은 우리의 말을 사장님에게 전한 건지 안 전한 건지. 직원분들이 카운터에서 그저 노닥거리고 계신다. 한분만 평상복을 입은 걸로 보아 그분이 사장님인 듯 보였다. 우리는 둘 다 가만히 멍하니 앉았다가 만화책을 정리했다. 시간도 거의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찝찝한 기분에 더 이상이 만화카페에 머물 수가 없었다. 어서 자리를 털고 나와 다시 화장실로 향해 남자 친구 핸드폰으로 화장실 동영상을 제대로 찍었다. 


저들이 떼준다고 했으니 우선 하루쯤은 기다려보고 했다. 다음날 가서 확인했는데도 떼어져 있지 않으면 기자에게 메일을 보내던지 하자고 하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이 찝찝한 기분을 없애보고자 다른 카페를 향해 걸었다. 우리가 다음에 가보자던 카페는 문이 닫혀있었다. 건너편에 다른 커피숍이 있어 건너갔지만 딱히 뭘 마시고 싶지 않아서 옆에 자리한 메밀 국숫집 앞에서 주저하며 서로 물었다. 배고파? 메밀국수 먹을래? 그치. 나도 별로 배는 안고파. 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메밀 국숫집에나 갈까 주저하는데 그가 말했다.


"우리 경찰서에 가자."


괜한 일 일으키는 건 아닌가 하는 긁어 부스럼 일으키는 두려움이 일었다.


예전에 친구 생일날 경찰을 부른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친구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깊이 남아있다.


"내 생일날인데 그렇게까지 해야 해?"


실은 그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스트레스를 미간에 한껏 모아 인상을 쓴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경찰서까지 가야 할까? 


그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 이 상    황에서 우리만 이상한 사람 되면 어쩌지 걱정이 드는데 그가 말했다.


"나 이렇게는 찝찝해서 가만히 못 있겠어. 혹시라도. 만약에 진짜 누가 그걸로 뭘 찍었어. 그리고 그 기계가 사라지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알겠어. 그 만화카페 사장님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다른 누군가가 그 구멍 송송 뚫린 천 가방 안에 카메라를 두고 찍어서 가져갈 수도 있는 거잖아. 무슨 일이 일어나면 곧장 해결하는 게 맞다고 했어."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땅을 내려다보며, 생각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지금 메밀국수나 먹을 때가 아니야. 솔직히 몰카를 남자가 찍으라는 법 있어? 우리한테 대답한 그 여자분이 찍을 수도 있는 거잖아. 가자. 경찰서로."


나는 한 숨을 쉬고 그와 함께 경찰서로 걸었다. 가까워질수록 설마 별거 아니겠지 하는 안일함이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여러 복잡한 마음으로 도착하니 경찰서가 닫혀있다. 경찰분들이 계시지 않고, 문에는 순찰 중이라는 문구와, 왼쪽의 민원 전화기로 전화를 달라는 문구와, 경찰서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노란색 전화박스를 열자 그 속에 검정 전화기와 함께 <긴급전화>라는 문구가 보였다.


"긴급 전화? 우리 상황이 그렇게 긴급한가?"


이번엔 내가 괜찮다며 전화를 걸려고 했고, 그가 걱정이 되어 우물쭈물 이 되었다. 그의 불안감에 나도 동화되어 그럼 종이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자고 거니 통화 중으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주야장천 기다릴 수도 없고. 다시 근처의 다른 경찰서로 가보면 어떻겠냐며 길을 찾아 걸었다. 그런데 그 다른 경찰서에도 사람이 없다. 똑같이 벨을 눌러도 반응이 없어 큰 용기를 내 노란색 부스 안의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걱정하는 그에게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뚜루루... 뚜루루..."

빠른 속도로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말씀하세요-"하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더욱 용기가 나서 힘차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 직원한테 말했는데... 떼준다고는 했다... 그런데 아무런 행동을... 어떻게 알게 됐냐면..."


경찰 분께서는 알겠다며 가서 확인해보시겠다고 말했다. 오히려 내가 이상한 거라고 하지 않는 경찰분의 반응에 나는 점차 마음이 진정되었다. 전화를 끊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편해졌다. 나는 나의 두려워하는 마음에 부끄러워하며 그에게 말했다.


"와서 말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어. 처음 네가 경찰서에 가자고 하고 난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하느냐고 생각했는데, 그때 한 생각이 잘못된 거 맞고 내가 불감증이었던 거 맞아. 너 아니었으면 나는 이거 신고 안 했을 거야. 못했을 거야. 정말 고마워."


우리의 크리스마스가 꽤 멋지게 끝났다고 생각하며 걷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경찰분이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서로 오실 수 있으시냐고 물었다. 우리는 다시 경찰서로 가서 경찰차에 대기 중이신 두 분을 만났다.


동영상을 보여드리고 설명을 하자 가서 확인해보겠다고 하셨고, 우리가 다른 서에도 갔었다고 이야기하자 경찰분께서는 그럴 때는 그냥 112에 바로 전화를 해주시는 게 빠르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이 상황이 심각할지도, 불법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을 가진 채로 대해주신 경찰분의 대답에 나는 깊게 감동했다.


"불편하면 지는 거다."라는 말

"불편한 사람이 바뀌어야지. 우리한테 말해서 뭘 어쩔 거냐. 네가 적응해라."라는 말


그 익숙한 말 앞에서 나는 깊게 감동했다.


다른 상황이지만 크리스마스였던 어제 처음으로 남자 친구를 3촌 가족(작은 아버지)에게 소개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남자 친구는 한국에서 남자인 친구들을 사귀기가 힘들다면서, 서로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가 힘들다며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한국에서 만난 남자인 친구들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남자 친구들은 애초에 감정에 대한 대화를 잘 시도하지도 않거니와 대화를 꺼내도 이어가기가 힘들는다는 거였다. 


작은 아버지는 말했다.


"한국에서 남자들끼리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는 거지. 그러니까 딱 말을 나누지 않아도 서로를 챙기고 아끼는 거야. 사회생활할 때도 그래.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기보다 그저 간결하게 말하고 신속하게 행동하는 걸 우리나라 사람들은 좋아하지. 그러니까 말을 너무 많이 할 필요는 없어."


내가 마음으로 애정하고 존경하는 작은 아버지의 말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는 부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통을 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상대를 그냥 내가 이해하고 싶은 대로,  받아들이고 싶은 대로 나의 선에서 이해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되지 않을까. 결국 그건 내가 옳아. 말하며 확 중편 향이 더 짙어지게만 되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까. 


대화 단절의 결론은 결국 단절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음에도 대화 끝에서 작은 아버지는 소통의 방식으로 편지를 꼽았다. 편지만큼 마음을 제대로 나눌 수 있는 건 없다고 하시면서 편지로 마음을 나누고 의중을 밝혔는데도 상대가 못 알아먹으면 인간쓰레기니까 씹어버리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결국 짧게 말하던 길게 말하던 우리는 서로의 의중을 알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존재라는 걸 모두 가슴 깊이 알고 있고, 알아야 하며, 기억해야 한다.


물론 모든 일을 나의 선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화를 포기하는 길은 나의 생각만 옳다는 무지의 마음이 더더욱 굳혀지는 길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건 결국 상대를 진정한 상대로 이해하기보다는 내 편의대로 이해하겠다는 말이 아닐까.

이제는 알겠다. 나는 두려웠던 거다. 다툼과 싸움과 고통을 피하고 싶어서 이해하는 길 앞에서 주저하고 멈춰 서서 고민했던 거다. 지금 내 선택이 옳은 선택일지. 그들이 내게 잘못되었다고 한 저 말이, 애써 불편한 상황 일으키지 말라고 한 그 말이 옳은 게 아닐까 두려웠던 거다.


그런데.


아닌 건 아닌 거지.


고등학교 때 폭력 사건과, 친구의 물음, 그 외에도 나에게 일어난 부당한 수많은 사건들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때는 담임 선생님의 질문에 친구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대답하려 한다.


응. 난 꼭 그렇게 해야만 했어.

아닌 건 아닌 거야.


나는 집에 도착해 손을 닦고 씻을 준비를 했다. 막 씻으려고 하는 참에 경찰분이 전화를 주셨다. 전화를 받자 경찰분께서 상황설명을 해주셨다.


"그 기계가 노래 듣는 기계가 맞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가 떼라고 말씀드려서 밖에다가 단다고 했어요. 저희가 떼어달라고 말씀드렸고, 내일 기계를 가지고 떼야한다고 하셨어요." 


'공구? 그냥 일단 기계를 꺼낼 수는 없는 건가? 내일 떼어진 것까지 확인해주시는 걸까?'


속에서 수천 가지 질문이 일었지만 나는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네. 너무 감사합니다."


빠르게 아무런 질문 없이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의문했다.


나는 대체 무엇에 길들여져 있는 걸까?


좀 더 물었어야 했을까.

나의 생각을 좀 더 소리 내서 말해야 했을까.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더 물었어야 했을까.

그저 순간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서 "네. 감사합니다." 말하기만 하는 일이 옳은 일이었을까.


나는 대체 무엇에 길들여져 있는 걸까?


무엇에 길들여져 있길래 이리도 친절과 편리를 위해 목소리를 줄이고 말수를 줄이는 걸까.

궁금한 부분까지 묵살해 버릴 정도로

나는 대체 무엇에 길들여져 있는 걸까.


나는 생각하다가 마음을 정리하면서 되려 힘을 얻었다.


이제는 목소리를 묵살하는 일은 관둬야겠다. 예전의 어느 날의 당당했던 내 모습처럼 내가 믿는 것들을 외치고, 대화하고, 용기를 내야겠다.


무슨 일이 있든 간에 대화하는 일과 소통하는 일을 멈추지 말자. 우리는 대화를 하지 않으면 단절해버린다. 대화를 하지 않으면 난 여전히 엄마와 동생을 오해할 채로 지냈을 거고, 남자 친구와 서로의 영혼을 이해하지도 못했을 테고, 친구와 마음을 나눌 수도 없었을 것이며 나의 무지함을 이해하지도 못했을 거다. 소통만큼이나 우리 삶에 중요한 게 있을까? 우리는 정말 소통을 멈추고 그저 더 빠르게만, 더 신속하게만 일을 처리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우리의 삶에 발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하다, 그러기 위해서 내 목소리를 더 목청껏 꺼내 놓아야겠다고 생각하다, 나는 강요고 불편감을 만들지 말라는 사회의 분위기고 뭐고 나는 나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말고 외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혹시나 범죄에 가담하는 이들에게 이 메시지를 보낸다.


지켜보고 있다. 조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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