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디리딩~
띵띵딩~
사용자님께서 로그아웃하셨습니다.
마음 에너지가 전부 소진되어버렸다.
애초에 별로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내향형 인간인 나. 누군가를 만나 진심을 나누는 에너지와 스스로의 시간을 보내며 충전하는 시간이 반비례해서 가끔씩 이 세계에 지쳐 로그아웃하고 싶어지고는 한다.
어느 겨울날.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모두 고향으로 돌아갔다. 외국 친구, 중국 친구, 한국 친구 모두 떠났다(나는 중국 대학교 한국 유학생). 쓸쓸한 학교에는 개미 한 마리조차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좋다. 그 고요함이 좋았다. 어딘가 텅 비어버린 학교의 풍경이 내 마음 같아 보여 좋았다.
그해 겨울, 나는 한국에 돌아가지 않았다.
홀로 기숙사에서 시장에서 사 온 생선을 튀겨 먹거나, 침대에 누워 창가에 발을 올리고 망상을 하거나, 피아노 타일을 누르는 핸드폰 게임을 했다. 때때로 친구가 부탁한 고양이에게 밥을 주러 가기도 했다. 언젠가 고양이와 친구가 되고 싶어 '나는 너의 친구'임을 알리기 위해 사족보행을 시전 했더니 그 뒤부터 고양이는 내가 오면 눈을 크게 굴리며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고양이도 아닌 인간이 사족보행을 하는 걸 처음 본 그 고양이는 아마도 나를 괴물쯤으로 여겼을 테지. 쳇. 그렇게 나의 첫 고양이 사귀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 뒤로도 그 검은 고양이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야옹하며 불러도... 기척 조차들을 수 없는 너. 안녕. 잘 지내니?
그해 겨울, 내가 내뱉은 말이라고는 거의 세네 번 정도의 "아." 하는 탄성 소리밖에 없었다. 가끔 무언가가 생각나서 내뱉은 한탄 소리 "아.(맞아)". 조심성이 부족해 탁상 모서리에 발가락을 찍고 내뱉은 탄성 소리 "아.(욕지거리)". 책을 읽다 무언가가 이해가 가서 내뱉은 감탄소리 "아~(대박)". 방학이 끝나고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며칠간 목에서 쉰내가 났다.
그 해 겨울이 사무치게 외로웠음에도 그 속에서 느껴진 평온함이 그립다. 아무에게도 방해하지 않고 에너지를 충전했던 그 해 겨울이 그립다. 요즘 그렇다. 나는 지쳤다. 지쳐버렸다.
그래서 쉬었다. 쉬면서 재충전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만 무기력했다. 신께서 자꾸만 나를 향해 로그인 버튼을 누르려고 손가락질을 하시는데 손가락을 다치셔서 자꾸만 로그 아웃 버튼을 누르시는 기분이었다. (아니. 왜.)
어느 겨울날 느꼈던 평온함도 고요함도 없다. 그저 의도치 않게 꽤 오랜 시간을 쉰 기분이다.
왜 이런 무기력한 기분인 건지 생각해보니. 사실 지금의 내 상황이 그랬다.
거의 4, 5년간 숱한 공모전에 출품했다. 출판사에 글을 보내고, 누군가 나를 봐주길 바랬다. 브런치를 시작한 것도 그 이유였다. 공모전. 그런데 의도치 않게 공모전보다 더 값진 것들을 얻어가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아무리 영향을 받지 않으려 해도 공모전에 번번이 떨어지는 일이 지친다. 누군가는 당연한 결과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나의 노력이 자꾸만 손가락 삐듯이 삐어버려서 아프다.(삐끗) 아무리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해도 5일 다닌 회사를 멋지게 박차고 나온 지금의 백수 생활이 조금 버겁다. 한 번은 출판사를 스스로 세우려고 했었다. 펀딩을 진행했는데 실패했다. 졸업 후에 계속해서 실패에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 중이다. 아무리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해도 전전 직장 상사가 했던 말이 종종 떠오른다. 너는 분명 이 회사를 그만두면 다음 회사도, 그다음 회사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신세를 지게 될 거라고.
직접적으로 그리 이야기 한 건 아니다. 그분이 한 말을 거의 그대로 가져오자면.
"나는 지금 여기서 5년이나 다니고 있잖아. 근데 나 말고 금방 회사를 때려치운 동료들이 있어요. 그 애들 보면 꼭 회사에 정착을 못 해. 이 회사에서 버티지도 못하는데 어디서 버티겠냐는 거야. 결국 이 회사 저 회사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거지."
그런 말을 참 자주 했다 그 사람.
근데 의문인 건 회사를 관두었다는 동료와 연락도 안 하신다면서 대체 그들이 회사를 차렸는지,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사는지, 회사 생활을 멋지게 해 나가는지, 복권에 당첨이 되었는지 어떻게 아느냐는 거다. 의문이다. 나보고 이 회사에서 나가지 말고 잘 보텨보라는 의미로 했던 말일까. 그래서 내게 겁을 준 걸까. 이 회사를 그만두면 넌 떠돌이 신세를 지게 될 거라고.
모르겠다. 신빙성이 없는 말이 분명한데 상황이 자꾸만 의도치 않게 돌아가다 보니 문제가 나에게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별스러운 의문이 종종 든다. 그런 의문을 안고 상황에 흔들리고 좌지우지되는 나라는 인간은 코비드 시국을 맞아 내향형 인간이 점점 더 극도로 내향적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사람들 만나기도 두렵고, 귀찮고, 다 싫다. 나는 방 안에 틀어박혀 히키코모리의 기분을 이해하며 이런저런 영상을 찾아보다가, 밖으로 향하는 전원 버튼을 꺼버릴까 고민하다가, 펜팔 친구에게 편지를 몇 줄 끄적여보았다.
있지. 난 요즘 많이 무력해. 무력감이 자꾸만 침투해 무기력해.
예전에 나는 내가 노력을 쏟으면 쏟은 만큼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난 두려워. 상황이 주도권을 전부 가져가 버리게 될까 봐.
매번 내 바람과 다른 결과를 얻으면 내가 내 삶에서 주도권을 잃어버린 기분이 들어. 나는 아직도 내가 마주한 수많은 실패를 애도하는 중인가 봐.
내 생각에, 그건 아마도, 나의 꺾여버린 수많은 노력에 대한 좌절감인 거 같아. 나는 시도하지 않는 일이 이 좌절감의 열쇠라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너무 열심히 일하고 시도하는 일에 지배당하지 않는 일 또한 삶의 지혜라고 생각해. 너무 애쓰고 힘들 만큼 온 힘을 다해 시도하지 않고 매일 작은 승리감을 얻는 일이 난 자꾸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 난 요즘 그런 생각을 해.
쓰다 보니 알게 되었다.
맞아. 매일 원대한 목표만을 위한 노력보다도 하루를 기쁘게 살기 위한 작은 승리감을 나에게 선물하는 일. 그 일은 바로 삶을 기쁘게 살아가는 또 하나의 지혜일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로그아웃이 된 상태로 조용한 우울함을 점차 떨쳐냈다. 나는 무력감에 묻혀, 너무 오래 원대한 목표에 애쓰는 일에 묻혀, 자신의 매일매일에게 작은 승리감을 주는 일을 잊어버렸다.
나는 며칠 전부터 작은 목표를 세웠다.
ㅁ. 이력서 정리
ㅁ. 느낀 감정들 글로 적기(그 글이 이 글)
다음날은
ㅁ. 크리스마스 선물 사기
ㅁ. 올리고 싶은 대로 글 올리기
그다음 날은
ㅁ. 산책 겸 운동
ㅁ. 맛있는 음식 먹기
ㅁ. 회사 자료 찾고 지원하기
네모칸을 체크할수록 내 몸에 묻은 무력감이 아주 조금씩 퇴색해갔다.
그리고 편지를 보낸 바로 다음날 답신이 왔다.
그녀는 말했다.
슬픈 일을 겪은 때에 애도하는 일은 참 중요해. 충분히 애도해. 지금이란 시간이 너를 다 스쳐 지나버리기 전에 너는 충분히 애도하도록 해. 우리는 전부 인간의 요소로 만들어진 인간이잖아. 네가 느끼는 기분 난 충분히 이해가 가.
나에게도 두려움이 있어. 혹시 그러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야. 하지만 미래는 결국 알 수 없잖아. 그러니 자신을 챙기는 시간을 보내도록 해.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너 자신에게 너무 채찍질하지 말기를 바래. 난 네가 얼마나 애썼는지 충분히 이해해. 매일 자신에게 승리감을 주는 일과 삶 속에서 주도권을 느끼기 위한 너의 시도는 참 현명하다고 생각해. 너에게 사랑을 보내.
혹시 무기력을 느낀다면 작은 승리감이 들 수 있는 아주 자잘하고 소소한 미션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거대하고 원대한 목표를 위해 애쓰는 일보다
작은 승리감을 위하여
원대한 꿈보다 알찬 매일매일을 위하여
스스로를 챙겨주자.
룰루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