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타지 살이 속에 만난 친구들은 친절했다. '한국애'라고 하면 일단 먹고 들어가는 게 있었다. 중학교 때 처음간 중국 학교에서 난 적응하기 위해 애썼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뭐든 열심히 하는 학생의 이미지를 얻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날 좋아해주었지만 이미 내 속은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우울증이었다. 겉으로 보이기에도 괜찮아 보이니 내 우울증을 아는 이도 아무도 없었다.
그냥. 마음이 그랬다. 쓸쓸하고 외로웠다. 그때를 색깔로 표현하자면 깊은 물속의 짙은 남색, 색채 없는 회색 정도가 아닐까 싶다. 나의 최선은 최대한 그런 감정을 회피하며 일상생활을 하는 거였다. 다만 사람들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곧바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가 우는 게 아니었다. 내 몸이 우는 거였다.
중국에서 대학생활을 하는데 고모 둘이 여행을 가고 싶다며 가이드를 부탁했다. 가기로 한 여강(丽江)에 가기 위해선 전에 살던 곤명(昆明)을 지나쳐가야했다.
나는 약속일 하루 전에 곤명(昆明)에 도착했다. 사계절이 마치 봄과 같다는 이곳은 국수가 맛있었다. 오래 전에 살던 아파트 옆의 국숫집을 찾아가보았다.
오랜만에 와서 그런가 어디였는지 기억이 안 났다. 어디지 어디지 한참을 헤매다 언뜻 기억에서 봤던 간판을 찾아 지하로 내려갔다.
"그래. 여기였어."
국수가 나오길 기다리는데 처음 여기 왔을 때 물었던 종업원 언니의 질문이 떠올랐다.
"계란 한 개 넣을래 두 개 넣을래?"
계란을 별로 넣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질문하시니 넣어야 하는줄 알았다.
"한개요..." 대답했는데 알고 보니 종업원 언니의 작은 계략이었다. 잊고 있던 오래전 기억이 떠올라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막나온 국수를 후루룩 먹었다. 그 때는 정말 눈이 휘둥그래지는 맛이었는데 이상하게 맛이 달랐다. 기억의 그 맛이 아니었고 그 놀라움이 없었다.
'주방장이 변한 건가...' 생각하며 국수집을 나왔다. 장염이 걸렸던 만두집을 지나쳤고, 위염 때문에 갔던 작은 병원을 지나쳤다. 참 이상하게도 저 만두집에만 가면 배가 아팠다. 참 맛있었는데, 대체 그 속에 뭐가 들었길래 매번 토하고 아팠던 건가 궁금증이 일었지만 알고 싶진 않았다. 언젠가 자주 가던 국숫집에서 하수도에 흐르는 물을 바가지로 펐다는 친구들의 말을 떠올리다가 몸서리치며 그냥 그런 궁금증을 지나쳐갔다.
학교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네 정거장쯤 지나자 언덕이 나왔다. 언덕을 한참 지나니 편의점이 나왔고, 학교가 보였다. 그 길을 걸을수록 추억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추억의 소리와는 반대로 넓은 운동장과 식당, 학교는 썰렁하게 비어 있었다. 방학이라 그런지 떠도는 나뭇잎도 썰렁해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내 귀에는 농구공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햇볕이 강한 날 친구와 주고받은 공은 퉁퉁 튀다가 철컹하며 농구대를 통과했다.
체조했던 자리를 지나자 교실로 가는 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오르는데 마치 다시 중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책가방을 들고 체육복을 입고 어딘가 습한 공기를 맡으면서 탁 트인 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기분. 천천히 올라간 2층에서 나는 낯익은 공간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친구와 작별인사를 한 공간이었다. 그 애는 졸업식 날 내게 물었었다.
"우리 이제 또 언제 만나?"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때 나는 내 감정들을 회피하느라 바빠서 그 사이 어딘가에 널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 마음도 마음이 잔잔해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고, 그제야 언제 만나냐는 너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때는 네가 없었다.
우리가 작별한 그 공간 앞으로 복도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교실 문은 닫혀있었지만 작은 유리창 안으로 교실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순간 누군가 나를 치고 화장실 쪽으로 달려갔다. 다른 아이 둘이서 그 아이를 쫓아 뛰었다. 어디선가 아이들이 장난치는 해맑은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졸업하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아이들의 얼굴까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첫 등교, 첫 기분마저 생생하게 떠올랐다. 와보지 않았다면 평생 잊고 살았을, 장소가 가진 기억이었다.
우리들이 시간을 보낸 비밀 장소가 떠올랐고, 장난치다 묻은 내 발의 진흙과 푸르렀던 풀잎이 떠올랐다. 잔디밭에 누우면 너는 네가 외운 시를 읊조리고는 했다. 가끔은 나에게 너의 생활을 보여주었고, 가끔은 알 수 없는 말에 함께 폭소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너희들은 정말 친절했다.
언젠가 청소년기의 한 때를 보낸 이 장소에서 나는 슬펐고 슬퍼서 모든 기억을 슬픔의 웅덩이로 전부 던져버렸다. 그런데 이제 와서 묻어둔 마음에 우연찮게 다시 서고 보니 무덤인 줄 알았던 그곳은 동산이었더라. 동산에 서서 본 기억의 색도 이제와서 보니 짙은 남색이 아닌 밝은 하늘색이었더라. 어쩌면 그동안 기억을 잘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슬픔을 되새기느라. 슬픔에 눈이 팔려 좋았던 시간마저 잊고 지냈음을 그때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물어보기만 하면 내가 슬프다고 말해줄 텐데 왜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 걸까 생각했었다. 답이 늘 정해진 나의 마음에 왜 질문하지 않느냐고 생각했었다. 나는 몰랐고, 몰랐다. 네가 모른다는 걸. 나는 모르고, 몰랐다. 내가 슬프다고 말해주었다면 네가 날 안아 주었을 거라는 걸. 손 뻗으면 닿을 자리에 네가 있었는데도 나는 슬픔에 열중하느라 그 사실을 몰랐다.
나는 울고 있었지만, 실은 그밖에 네가 있었고, 어두운 줄만 알았던 과거의 기억 외벽에 네가 있었다. 그 시간에 우리가 아름다운 시간을 나누고 있었음을 우울함을 떨쳐낸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당황했던 내게 기억이 다시 보였다. 아주 오래전 어긋났던 기억들은 웅덩이에서 빠져나와 아름다웠던 기억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나는 텅 빈 교실을 보며 슬프게 웃다가 기억 속 친구들에게 말을 걸었다. 슬픔이 휘몰아 칠때 네 존재를 좀 더 기억했다면 좋았을 걸. 작게 되뇌며 한참을 교실 앞에 서있었다.
고마워. 친절했던 나의 친구들아. 이제야 나는 나의 어긋난 착각을 마주 보게 되었어. 늘 손 뻗으면 닿을 자리에서 묵묵히 미소 지으며 나를 대해줘서 고마워. 이제 나는 커서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알아. 손 뻗는 자리에 나를 위하는 또 다른 친구들이 있다는 걸 말이야. 슬픔의 착각 속에 빠져 나를 내놓는 일도 더는 하지 않게 되었어. 그리고 그 사실을 지금 이때에 발견하게 되어서 참 아쉽고 슬프지만, 그래도 우리의 시간들은 참 아름다웠어.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