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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Feb 13. 2022

울타리

나의 울타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그 울타리는 내가 지었는가 누군가 세웠는가.

그것은 돌로 만들어졌는가 나무로 만들어졌는가.




인간에게는 모두 울타리가 있다. 그 울타리는 우리를 편안하게 느끼게 해주는 우리만의 공간이다. 개인적인 공간. 그 공간이 누군가로 인해 부서지는 경험을 하고 나면 점점 그 선을 믿지 못하고 헷갈리게 된다. 나에게도 그런 울타리가 있다. 대부분의 영역은 많이 손보아 보수가 되었다. 하지만 성에 대한 울타리가 온전해지기 까지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고, 나는 이제 그 부근을 돌아보며 선을 명확히 만드는 중이다.


내가 일곱 살 때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남자 목욕탕에 가셨다. 나는 엄마와 동생과 함께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와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성에 대해 무지하신 분이었다. 그냥 딸이니까. 내가 낳았으니까 다 괜찮다는 어떤 안일하고 무지한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나는 그 남자탕에 몹씨도 가기 싫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 당시의 분위기. 남성들의 몸. 혼란스러움.


그때 당시 나는 내가 느낀 게 무엇인지 몰랐다. 그것은 수치심. 수치심이었다. 스물아홉이 된 지금에서야 나는 그 사실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막연히 불쾌감만 안고 있던 그 시기의 감정은 분노, 슬픔, 침범당한 고통, 내지는 무기력이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부모님의 성화로 가게 된 명상 합숙소에서 한 달을 지냈었다. 그때가 몇 살이었는지 기억이 명확하지는 않으나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언니들이 내 머리를 예쁘게 따주었다. 급식을 받으러 가는데, 스무 중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이 나를 넋 놓고 보았다. 마치 어떤 신기한 물건을 보는 듯한 호기심과 이성을 향한 끌림을 느낄 때 보는 그 시선은 내가 살면서 처음 본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없었다. 왜 그 아저씨의 눈빛에 나는 불쾌해졌는지를. 왜 내가 예쁜 양갈래 머리를 풀었는지를. 그건 내가 나체로 들어간 수많은 어른 남성의 나체 사이에서 그들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나의 가슴과 성기를 쳐다볼 때 스치듯 봤던 어떤 표정과 같은 것이었다. 


언니들은 나에게 왜 예쁜 머리를 풀었냐고 슬퍼하고 아쉬워했다. 그 당시 나는 그 사람의 그러한 불쾌한 시선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내 머리에, 내 머리카락에 불쾌해진 거라 착각을 했다.


반대되는 성을 가진 부모는 아이에게 어떻게 이성의 존중을 받는지를 가르치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에게 그러한 존중감을 가르치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저 성에 대해 무지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무지함의 파급력은 나의 안정감을 파손했다.


언젠가 반신욕을 하며 책을 읽다 잠에 들었다. 아버지는 밖에서 노크를 하고 안 나오냐고 물으면 될 것을 문을 벌컥 열고 다 벗은 내 몸, 이미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교 2학년 때의 나의 몸을 보았다. 나의 사적인 공간, 나의 울타리를 존중받지 못함으로써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나의 나체가 침범당했다고 나는 느꼈다. 그 느낌은 강렬한 분노였고, 수치심이었다. 괴로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했다. 나는 자꾸만 아버지에게 울타리를 침범당했다.



그가 너의 동생에게 성적인 끌림을 느낀다고 했을 때, 우리는 스웨덴에 있었다. 그의 부모님이 외출해 집에 없고, 그가 나를 데리고 저번에 가보자고 한 그 카페로 나를 데리고 갔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나. 모든 게 완벽했다. 그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 대체 언제? 어떻게? 왜?"


"네가 나에게 동생 소개해주고 우리가 단 둘이 시간을 많이 보내던 때, 그 애가 널 닮아서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어. 그런데 나 그때 너의 동생에게서 끌림을 느껴서 너무너무 괴로웠어. 이제는 그런 감정이 끝나서 너에게 이야기해주는 거야."


나는 곧장 그와 헤어져야 했다.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한 동안 나는 정신을 머나먼 우주로 보낸 여자처럼. 머리가 하는 횡설수설을 들으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로부터 다섯 달 가량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와 헤어졌다. 그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며칠 전 나는 걷다가 걷다가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의 신뢰를 잃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존중했다면 곧장 그만두었을 관계였다. 


하지만 그때는 그러질 못했다. 아무도 없는 이국 땅에 진심으로 나의 편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그 기분. 곧장 비행기 표를 사고 나 다시 돌아간다고 하기에 스웨덴에 오기까지 내가 너무도 많은 그의 부모님 도움과, 내 가족의 지지를 얻었음을 알아서 그 순간 얼어붙었다. (실제로 돈을 보태주심)


사실 나는 스웨덴에 가기 싫었다. 하지만 몇 달이고 그가 울고 불며 사정했다. 그는 단 한 번도 친할머니를 만난 적이 없었다. 이베 아흔셋이 되시는 할머니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데 그분이 핀란드에 사시니 나에게 함께 가줄 수 없느냐고 했다. 나는 이제 일을 구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시점이라고 하며 거절했다. 그리도 돈도 떨어져 갔다. 나는 돈이 나의 독립심에 아주 큰 영역이라 믿었고, 나의 독립심을 침범당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슬픈 모습에 그만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왕 가기로 한 거 알바를 찾아서 하고, 이왕 가기로 한 거 즐겁게 갔다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힘으로 가지 못하면 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도 가기로 마음먹어서 누군가가 주는 재정적 지원을, 아버지가 주는 돈을, 그의 가족이 주는 비행기표를 아주 조금 내가 용서할 수 있을 정도만 받았다. 그래도 내 속에는 어떤 불쾌감이 자리했다.


굉장히 복잡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에게서 흘러나온 그 한마디에 나는 "꺼져. 난 지금 당장 비행기 표를 사서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라고 나를 위해 말하지 못했다. 마치 모든 시간의 흐름이 멈춘 기분이었다. 사실 그의 가족이 너무도 따스하고 사랑스러워서. 스웨덴이란 나라가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그냥 부서진 나의 울타리를 재건하지 않고 어쩔 줄 모른 채로 울타리 밖을 나가 걸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왜 무기력한 줄 몰랐다.


울타리 밖 지옥을 걷다가 걷다가 강아지가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자꾸만 귓전을 맴돌며 나를 그때의 상황으로 돌려놓았다. 


언제 큰어머니 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큰어머니 큰아버지는 여행을 가셔서 집에 없고 고모와 친척 동생 둘이 거기서 잠시 신세를 지고 있었다. 


두 분은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셨다. 그 개는 늘 나를 싫어했다. 그 개는 자꾸만 나를 보고 짖었다. 나는 개가 짖는 것 따위는 그리 무섭지 않았다. 다만 하루 종일 으르렁 거리고 짖어서 혹시 정말로 공격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짖고 으르렁거리는 개를 처음 봤다. 만약 나에게 공격해오면 강아지를 내가 반격할 생각이었다. 그 개가 고모와 친척 동생을 보고 짖지는 않아서 나는 고모에게 말했다. 


"고모 저 개 좀 방에다 넣으면 안 돼요?"


"안돼. 어떻게 개를 방에다 넣어."


"네? 그런데 저렇게 나를 보고 짖고 으르렁거리고, 애가 정말 미친 것 같은데요?"


"그럼 누나가 방으로 들어가."하고 친척 동생이 말했다.


"뭐?"


"그래. 모다야. 네가 방에 들어가 있어."


"..."


분노가 일었다. 내가 왜 방에 들어가야 하지? 나는 개를 공격할 생각은 없는데, 저쪽에서 나를 공격해 온다면, 저 쪽을 분리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고모 가족은 내 가족이 아닌가? 나는 짜증이 나서 말했다.


"됐어. 공격해 오면 내가 모가지를 분지를 거야."


그러자 고모 가족은 놀라며 나에게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그 순간 숨이 턱 막혀오면서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개는 계속 나를 향해 짖어대고 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개가 나를 공격해서 내가 개를 죽이던 공격하던 그건 내 탓이다. 저 개새끼가 나보다 중요하다. 는 어떤 생각들이 1초도 되지 않는 순간 머리를 스쳤고, 나는 곧장 그 집에서 나와 근처의 할머니 집으로 갔다. 마치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에게서 너의 동생에게서 끌림을 느꼈다는 말을 들은 순간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다만 근처에는 나의 할머니 집이라는 공간이 없었다.


그 뒤로 나는 아주 오랫동안 개가 짖는 소리를 들으면 몸이 얼어붙고 두려운 마음에 위축되었다. 다시 그 짖는 소리가 괜찮아지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치 그때와 같이 나의 울타리는 이미 부서져 내렸고, 그 울타리 중앙에 자리해야 할 사람이 나였으나, 나는 그 자리를 다른 이에게 내어 주었다.


나는 그가 나에게 한 고백을 듣고, 끔찍한 그 말을 밀어내지 않아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궁리했다. 그런 궁리를 하며 나는 서서히 나의 신뢰를 잃어갔다. 내가 나를 믿기 힘들어졌다. 내가 나를 믿기 힘들어서 나는 자꾸만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내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들도 말이다.


이제야 나는 나를 지키는 선택을 하고서야 내가 나의 신뢰를 잃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울타리 밖에서 나의 울타리를 부신 이를 용서하기 위해 애쓰고 나의 안정감과 사적인 공간을 침범하도록 놔두면서 나의 신뢰를 잃었다. 나는 부서진 울타리를 바라보았다.


그 울타리를 지키는 사람도 나고 보수하는 사람도 나. 나는 그 사실을 여실히 깨달으며 내가 온 마음 다해 소중히 여긴 다른 이들이 나의 울타리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부셔놓았는지 가늠하고 있다.


아마 한 동안, 개 짖는 소리가 괜찭아지기까지 걸렸던 한 동안만큼, 나는 시간을 들어 내 부서진 울타리를 재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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