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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Feb 24. 2022

온 마음 다 해 너를 사랑했던 시간 동안

#1 - 오늘의 쉼표, 

그럼에도, 나는, 


너를 사랑하는 시간 동안 나는,


너를 이해하고자 무진 애썼다. 네가 되어보고, 네가 되어보고, 또다시, 온전히 네가 되어보다가


그럼에도 드문 드문, 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너를 생각하며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을 응모했으나 공모전에는 탈락했다. 그럼에도... 


너를 사랑했던 모든 시간 동안, 너를 이해하기 위해 애썼던 나의 모든 노력들이 꽤 근사하게 느껴져서, 나는 브런치 앞마당에 남 몰로 홀로 했던 고민의 조각들을 널어보기로 했다. 


이로써 오늘, 브런치 앞마당에


하얗게 답을 얻은 빨래들에서


그때의 고민이었던 물이 뚝뚝 떨어진다.


뚝 뚝 시멘트로.

'공모전 출품작'하는 특이한 소리를 내면서.


뚝.

뚝.


제.

목.


: 좀 칭얼대면 어때서









  전화벨이 울렸다. 연인인 너의 전화를 받아 들었다.

  “여보세요?”

  너는 외국인이다. 우리가 만난 지 2년째 너는 한국에 머물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국땅의 외로움을 피할 수는 없었으나 대학원에 진학한 뒤로 너는 부쩍 외롭다는 칭얼거림이 늘었다.

  “혹시 지금 많이 바빠?”

  전화기 너머로 너는 조심스레 나의 공기를 살폈다.

  “바쁘면 이따가 전화할까?”

  무슨 일이냐고 묻자 전화기 너머로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연구실에 도착한 건 오후 한 시 경이었다. 문을 열자 음식 냄새가 진동을 했다. 쓰레기통에는 먹고 버린 도시락이 수북이 쌓였고, 몇몇 동기들은 어물쩍대며 나갈 채비를 했다.

  너는 동기들을 지나쳐 너의 자리로 갔다. 너의 자리에는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이게 뭘까. 너는 생각했지만 아무도 너에게 인사를 하거나 설명해주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 누구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연구실을 나가버렸다.

  너는 연구실을 마지막으로 나가는 동기를 붙잡았다. 혹시 오늘 연구실 사람들이 다 같이 점심을 먹었느냐고 물었다. 초조해진 너의 마음에 동기는 가볍게 돌덩이를 던졌다.

  “응.”

  너는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 그저 멀어지는 동기의 발자국을 멀거니 보다가 책상에 덩그러니 놓인 도시락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너는 핸드폰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먹고 버린 도시락통처럼 수북이 쌓인 공지 더미 사이로 너는 각진 문구를 발견했다.

  “점심에 다 같이 모여 도시락을 먹읍시다.”

  너는 쭈뼛 서는 등골을 애써 잠재우며 왜 스무 명 밖에 되질 않는 연구실에서 빠진 사람에게 한 통의 전화, 한 통의 문자도 보내지 않았는지. 왜 너에게 아무도 연락을 하지 않았는지 의문했다. 너는 자꾸만 울컥거리며 다 식어버린 도시락을 살짝 열어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무거운 소외감과 무관심이 돌덩이가 되어 뚝뚝 마음으로 떨어졌다. 헝클어진 물결이 일렁이며 너의 가슴은 조용히 슬픔을 집어삼켰다. 어쩐지 도시락에서 짠맛이 났다. 한없는 외로움을 먹은 마음은 너에게 말했다. 연인에게 전화하라고, 전화해서 위로를 받으라고.     



  너는 바쁘냐고 물었다. 오늘의 마음을 고백하며, 조금만 나에게 친절할 수는 없었는지 되뇌며 너는 글썽였다.

  나는 사실 너의 고백을 들으며 네가 아이같이 군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원래 삭막하다. 삭막한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너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제는 네가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몰라.”     



  대학생 때 학과로 막 편입한 친구가 있었다. 중간에 편입해 얼마나 힘이 들까 싶어 함께 공부하고 정보를 나누면 어떠냐고 물었다. 그 애가 나눌 정보나 자료가 없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자료를 그 애에게 주었다.

  정보가 힘이었던 오픈 북 시험 날, 나는 그 애 책상에서 처음 보는 자료 더미를 보았다. 그 애는 나의 정보를 모두 받고 자신의 정보는 전혀 나누지 않았다. 스쳐 지나가는 나를 쳐다도 안 보는 그 애와 같은 상황이 얼마나 흔했던가. 함께 나누는 일은 내가 속한 무리에서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이득 앞에서 우리는 예민했다. 치열한 경쟁 앞에서 나누면 빼앗긴다고 착각을 하면서 친절을 기대하는 일은 애초에 포기를 해버렸다.      



  “아마 앞으로도 그 애들은 너에게 친절하진 않을 거야. 어쩌면 이제는 네가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몰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해놓고선 뒷맛이 씁쓸해 기분이 떨떠름했다. 한편으로는 너에게 그만 칭얼거리라는 말을 매섭게 쏟아낸 건 아닌가 싶다.

  나는 너에게로 떨어지는 돌덩이가 되어, 너를 아이 같다고 생각하는 묵직한 돌덩이가 되어, 칭얼거리는 너의 슬픔이란 물 안가로 떨어지며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런데 전화 한 통, 문자 한 통은 어려운 거 아니잖아.”

  좀 칭얼거리면 어때서. 기대하면 어때서.

  그거 내가 들어주고 괜찮다고 해주면 되는 거잖아.     

  그에게 받아들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되뇌었고, 차갑게 식어버린 나의 말로 그의 눈물을 그치게 만들 수는 있었지만, 아이같이 군다는 마음의 썩어버린 돌덩이를 칭얼대면 좀 어떠냐는 생각을 휘두르며 부셨고, 그럼에도 여전히 돌덩이가 되어 그의 슬픈 마음 물 안가로 떨어지며, 그 마음 수심을 깊게 만드는 돌덩이가 아닌 하늘을 향해 떠오르는 공기 덩어리가 될 수는 없었는지 스스로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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