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일이다. 글을 쓰는 시간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내가 마주하기 싫은 어떤 현실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도소에 일반인들을 넣고 며칠간 실험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피폐해졌다. 후에 실험 날짜가 끝나고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얻게 되었다. 그중에서 오롯이 정신이 건재한 사람이 왜 그런가 알아보니 오직 그 사람만이 작은 교도소 방 안에서 그림을 그렸다. 상상의 세계. 그 세계가 그녀를 구해준 것이다.
상상의 세계는 언제나 아름답다. 가상이지만 내가 원하는 것들이 모두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상상의 세계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빗장을 걸어 잠근다. 그러면 그 속에서는 그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못했다. 나는 온전했고 완전했고 안전했다.
나는 비교를 많이 당하며 자랐다. 하루에 비교 한 번 당하면 그날은 견딜만한 날이었다. 어린 나의 비교대상은 대부분 동생과 학교 친구였다. 나에게는 뚱뚱하고 못생겨서 살 좀 빼라고 하고, 동생에게는 아이고 예뻐라~ 하는 소리를 해댔다. 너도 네 친구 좀 닮아서 영악해져봐, 넌 애가 뭐가 그렇게 순진해? 너 그러다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럴 때마다 상상의 세계로 숨었다. 내 곁에 상상의 어른을 만들었다.
부모님은 내적 성장을 이루셨다. 이제는 나를 존중해주신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그때의 상황과 많이 다르다는 걸 안다. 나 또한 훨씬 많이 성장했고, 건강해졌다. 그럼에도 그와 만나면서 때때로, 그가 한 말, 이제는 전 남자 친구인 그가 한 말, 너의 동생에게 끌린다는 말은 자꾸만 내 가슴에 깊이 숨겨둔 응축된 슬픔을 자극했다. 마치 그 말이 너의 동생이 너보다도 훨씬 아름다워, 그녀가 더 매력적이야 라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안다. 그래서 괜찮다는 사실도 안다. 알기 때문에 다행이다. 지금의 상황이 그때와 달라서 다행이다. 만약 내가 나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난 응축된 슬픔이 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내가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이해했을 테니까.
그와 헤어지기 전이었다. 나는 어느 날 동생에게 말해줬다.
너에게 솔직하게 말해줄게...로 시작한 말에 동생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너에게서 끌림을 느꼈데. 그 이야기를 나에게 해줬어. 그날.. 마치 가만히 있는 우리에게 폭탄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우리는 자매 관계가 매우 좋다. 나는 거의 모든 걸 그녀에게 말했고, 그녀도 그랬다. 그녀는 내 생을 반쪽으로 나눈 영혼의 벗이었기에 우리는 나누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동생은 그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 자다가 깨길 반복했다. 어느 날 밤, 동생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왜 울어? 하고 내가 물었다.
언니가 나의 존재로 너무 고통을 받아서 괴로워서 라며 그녀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어릴 때도 지금도 나는 언니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라는 말을 하며 우는 그녀는 마치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건 부당한 감정이었다.
너의 탓은 아무것도 없어. 너의 존재가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게 아니야. 만약 네가 없었더라도 사람들은 그들만의 기준, 말라야 한다거나 잘나야 한다는 기준으로 어떻게 해서든, 옆집 친구, 길가는 사람, 친구 딸을 두고 나를 비교했을 거야. 그리고 나의 힘듦은 네가 있고 없고 와 관계없이 여전히 같은 힘듦이었을 거야. 나에게 온 고통은 너로 인한 게 아니야. 그 고통은 오롯이 그들로부터 나온 거야. 그러니까 너의 탓은 아무것도 없어. 잘못이 있다면 그건 온전히 그들의 것이야.
고통이 가슴을 파고들수록 나는 나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자세를 고쳐 잡았다. 무엇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가려내기 위해 내가 탓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고통받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나. 나는 누구인가.
나 조차도 내 본연의 모습을 모르는 걸...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나는 한평생 나에게 못난 말을 내뱉는 사람들의 말을 피해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 자신을 모르는데 어떻게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소설을 읽다가 한 문장에서 눈길이 머물렀다.
- 나는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비록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지만.
나는 궁금해졌다. 나는 소리 내어 읽는 것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싫어하는 가? 나는 몰랐다. 아직 몰랐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그리고 나는 내가 알고 싶어졌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다. 어린 날에 철수라는 남자를 만나고 사랑했으나 착각이었다. 내가 사랑한 건 철수가 아닌 그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었다. 사랑을 끝내고 저만치 뒤돌아보니 철수라는 남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그 순간, 사랑을 하는 감정에 흠뻑 빠지고 싶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대학생 때였다. 나는 사랑에 있어서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를 몰랐다. 금방 좋아하고 금방 빠져들었다. 좋아하던 상대가 나를 차도 마음 정리가 빨랐다. 다들 나에게 어떻게 그러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몰라 난 원래 그래. 대답했지만 사실 내가 사랑한 건 그들이 아니었기에 그랬다.
그렇게 몇 번의 짧고 굵은 만남을 끝내고, 이제는 사람이 좋아서 하는 사랑을 해야지 마음먹은 뒤에 만난 게 바로 그였다. 나는 그를 온 마음 다 바쳐 사랑했다. 정말 그를. 그를 사랑했다. 그는 친절한 사람이었으나 나보다도 더 자신에 대해 몰랐다. 그래서 그는 방황했고 혼란스러워했다. 나는 그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이번에는 조금씩 나 자신을 잃었다. 나를 지키는 방법을 잊으며 내 마음의 중심을 그에게 내줬다. 그를 지키고 돕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솔직히 내가 지금까지 사랑 앞에서 해온 행동으로 미루어보아 나는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려기 보다는 내 감정에 취하는 편이어서 나 스스로의 감정에만 매몰되지 않기 위해 '그'라는 온전한 모습을 보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나에게 진정 필요했던 건 나를 믿어주는 마음이었다.
이번 관계로 나는 더 이상 상상 속의 남자를 만나지 않게 되었다. 상대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하지만 나를 잃어버렸기에 나는 이제 나 자신을 되찾을 생각이다. 나의 기준을 세우고, 나를 이해해보고, 내가 누군가에게 그토록 받고 싶었던 사랑을 나에게 주기로 했다.
난 이제 막 여인이 되었고, 나 자신을 사랑하며 이해하는 길 위에 막 들어섰을 뿐이다.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 쓰던 여자 아이에서 이제는 자신을 자신으로써사랑하며 이해해주는 삶의 길 위에올라섰다. 그 길 위에서 나는 한 발 한 발 내딛어보려는 거다.
언젠가 이 사랑의 길 위에서 나는 온전히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고, 누군가를 그 사람 자체로써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내가 삶 속에서 늘 바라고 바라던 당신을, 내가 그토록 바란 사랑을 줄 수 있는 당신, 어디일지, 언제일지 모르지만 나의 당신을 만나게 되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그때까지, 더 단단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진심으로 온 마음 다해 나를 사랑해 주려한다. 언제부터? 지금 이 순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