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
나의 아버지는 두려움을 많이 가진 사람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른다.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다.
아버지는 두려움이 많아서 이런저런 방법을 많이 사용하며 자신의 두려움을 줄였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제어가 되지 않을 때면 나에게 공포감을 주는 일로 그 두려움은 확장되었다. 원래 내가 아주 어린 다섯 여섯일 때는 자상하고 상냥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나에게 성격이 잘못되었다라거나 네 살 속에 묻힌 아름다운 네가 있다거나 하는 불쾌한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내가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하고 괜히 기분이 상하면
그는 듣고 싶지 않으니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시끄러우니까. 말하지 마."
나는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않는 그가 답답했다. 나의 아버지는 상대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는데 능했다. 어째서 아버지가 그런지는 아마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으리라. 아버지는 그런 불안한 분위기와 폭력적인 분위기를 종종 만들었다. 그의 분노는 대부분 나를 향해 쏘아졌다.
나는 오랫동안 내 속에 그와의 경험을 숨겨옴으로써, 이 주제를 피했다. 나의 아버지가 혹여 언젠가 나의 글을 읽거나 알게 되고 또다시 나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을까, 어쩌면 그 자신의 잘못에 스스로 괴로워 더 약해진 모습으로 날 괴롭히진 않을까, 실은 내가 더는 그 때문에 힘들고 싶지 않아서 나는 이 이야기를 가슴에 고이고이 깊고 어두워 보이지 않는 습지 저 바닥에 숨겨왔다.
나는 나에게 매번 공포감을 주는 아버지가 미웠다. 부당한 말을 하거나 그러한 태도를 보이면 되려 나도 소리를 질렀다. 내가 너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기 때문에 이 집에서는 내 말이 법이고, 내가 왕이다. 그러므로 넌 내 말을 들어야 한다며 아버지는 강요했고, 나는 맞서 싸웠다. 버럭버럭 맞서 소리 지르고 말대꾸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여 맨 몸으로 길거리에 나앉게 되면 어쩌나 하는 작고 강력한 공포감이 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런 식으로 나를 두려움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내가 가장 싫어했던 강요 중 하나는 절대 방 문을 잠그지 말으라는 강요였다. 나는 자라나면서 심리적 개인 공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알았지만, 한 번도,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나의 공간은 늘, 언제나, 침해당한 채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흩어졌고 뭉개졌었다.
"당장 문 열어! 당장 열지 못해!" 하고 "쾅! 쾅!"하고 드문드문 내가 문을 잠갔나 안 잠갔나 확인하다가 내가 문을 잠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문을 부수어라 두드려대며 소리쳤다. "당장! 문! 열어!" 열지 않으면 부실 기세였다. 그래도. 사실은 그때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나를 단 한 번도 때린 적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소리 지르고 폭력적인 태도를 보이고 공포감을 조성하는 게 미웠지만, 언제든 벌컥벌컥 문을 열고 들어올 순간들에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토록 우울하고 힘겨운 시간은 보낸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였다. 나는 소리 지르는 그에게 소리쳤다.
"그만해! 신고할 거야! 아버지 신고할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버지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적막한 집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가 방에서 나왔다. 손에는 골프채가 들려 있었다. 나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문은 잠글 수 없었다. 잠그면 안 되니까. 그는 내 방으로 들어와 그 골프채를 높게 들었다. 그리고는 한 대 두 대. 나는 손가락이 그렇게 크게 부울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다리에 그리도 선명한 멍자국이 날 수 있다는 걸 그날 알았다. 그리고 난 아주 오랫동안, 사실은 지금까지도, 울고 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사랑해서, 자꾸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까먹어서, 다시 대화를 시도하지만, 결국 대화의 끝에 얻은 것이 두려움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나는 또다시 절망하며, 왜 나의 시간을 그에게 쏟았을까 후회하고는 했고, 그 굴레는 마치 절대 끊이지 않는 굴레처럼, 한편으로는 조금씩 나아지는 기미를 보이며 여전히 어떤 고통의 굴레를 만들었다.
아버지는 오늘 나와 대화를 하며 말했다.
"네 속에는 멋진 것들이 있는데. 네가 언제 그걸 발견하게 될지 모르겠구나. 언제 너의 그 멋짐을 발휘하게 될지 모르겠다."
그는 말하며 나는 절대 알 수 없는 그 자신의 감정 속으로 빠져들었다.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그는 내가 늘 자신보다 미성숙하고 어리고 멍청한 존재라는 무의식을 아무렇게나 내던졌고, 그 본인조차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나는 물었다.
"누군가의 멋짐을 발휘한다고 여기는 기준이 뭔데? 멋짐의 기준이 뭔데. 모두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주관적인데, 어느 기준에서 내가 멋지고, 그걸 발휘하거나 안 한다고 판단할 수 있는 건데."
내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나의 영혼은 어떤 모습인지 그는 결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더 불쾌했다. 결단코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들으려는 시도도 거의 하지 않았으면서 나를 이렇다 저렇다 쉽게 정의 내려서. 나는 불쾌했다.
세상에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이 많다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나를 쉬이 판단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실은 아버지 본인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채로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늘 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절대 아버지만큼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아주 몇 년 전 내 가슴에서 아버지라는 존재에게 바라는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았다. 그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어려웠으며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환상에 사는 내가 현실을 보기 위해선 환상도 희망도 꿈도 모두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나는 모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되도록 또렷이 현실의 모습을, 우리의 관계를 보려고 노렸했다.
어쩌면 아버지는 많이 변했는지 모르지만, 그는 아직도 내게 사과하지 않았고, 아직도 그는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미성숙해서, 다만 어쩌면 그 자신보다 객관적인 나를 무의식의 한 편으로는 여전히 무시를 하면서,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는지도 모른 채로, 인지하지 못한 채로 말을 건네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났음에도 내 가슴속에 깊게 자리 잡은 상처를 또 한 번 고통스럽게 느끼며 그저 담담히, 되도록 담담히 내 속을 들여다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