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앉았고, 비는 옅게 옅게 내리기 시작했다. 졸졸 물 흐르는 소리, 빗소리, 그리고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 듣지 못했던 어떤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자연의 울림소리. 그 울림소리는 내가 여태껏 지나다니며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치부한, 여태껏 공허한 줄만 알았던 공간에서 나는 소리였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 구간에서 멈춰 서거나 쉬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공간이 마치 텅 빈 공간인양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줄만 알았는데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공허했는 줄만 았았던 길 위에 처음으로 멈춰서 보았다.
어떤 벅찬 울림이 나를 통과하고 지나갔다. 나는 그 순간에 내가 마치 이 거대한 푸른 별 위 어딘가에서 막 떨어져 나온 하나의 객체처럼 낯설고 색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마치 엄마 뱃속에서 떨어져 나와 크게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점점 더 조용하게, 점점 더 적막하게 어둠이 내려앉을수록 생명력은 점점 더 거세게 요동쳤다. 그것은 낯설지만 익숙한, 자연, 자연 속에서 나는 살아있는 것들의 요동 소리였다. 나는 이 소리를 얼마나 오랜만에 들었던 것인가.
나는 이 거대한 지구의 고동소리를 마지막으로 느꼈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해보려 했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애써 떠올린 기억은 몇 년 전, 밀양의 작은 절에서 보낸하룻밤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템플스테이를 하기로 한 그날 옅은 비가 억세게 쏟아졌다. 스님은 템플스테이를 하게 되면 새벽 다섯 시에 행하는 기도에 꼭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시간이 너무 지나 네시였는지 다섯 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는 알겠다고 말하고 옷을 갈아입고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떨어지는 빗물 소리가 온 곳에 부딪치며 요동쳤다.
그날 밤, 나는 문 앞에 걸터앉아 하늘에서 높게 내리는 빗물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거셌다. 나무들이 흔들리며 온 산이 요동쳤다. 드높은 소리 사이로 달이 떠 있었다. 달빛 아래 흔들리는 빗물은 바람에 날려 춤을 추는 것 같았고 마치 넓고 큰 보호막을 만들며 절을 보호하듯 절 바깥으로 휘감기며 날렸다. 둥글게 춤을 추며 내리는 빗물과 요동치는 산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 순간 나는 내 가슴울 관통하는 어떤 거대한 고동소리를 느꼈다. 그것은 자연에서 오는 광활하고 깊은 감동의 요동침이었다.
그 절에는 내 또래 여자 하나 남자 하나가 더 머물렀다. 새벽이 되어 스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절에 모인 우리는 서로를 보고 가볍게 목례했다. 맨 중앙 앞에는 스님이 앉고, 그 뒤에는 젊은 우리와 아저씨 한분이 앉으셨다. 맨 오른쪽 아저씨의 옆에는 내가 앉아 있었다. 나는 새벽녘 회색 방석의 촉감이 유독 좋아 그 위에서 몸을 구겨 눕고 잠을 자고 싶었다. 그럼에도 청명한 공기와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에 가슴이 청량해져 천천히 잠이 가셨다.
절에서 기도를 드리는 건 처음이었다. 다른 두 명도 그런 듯했다. 우리는 서로를 흘끔거리며 낯선 절의 공기를 살폈다. 십 분쯤 지났을까 내 오른쪽에 앉아계시던 아저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셨다.
나는 재빨리 아저씨를 따라 일어났다. 나는 그 전에도 천주교 성당을 다닌 적이 있어서 아저씨가 왜 일어났는 줄 알았다. 성당에서도 이렇게 일어나서 기도를 한다. 처음 겪는 불교 기도에서도 이렇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자 내 왼쪽에 앉은 나머지 두 청년도 나를 따라 일어났다. 아저씨는 일어선 우리 셋을 흘끔 보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내심 '젊은 녀석들이 이토록 기도에 열중하다니 참으로 자랑스럽군'하는 의미가 깃든 미소였다.
아저씨는 바닥에 쭈그리고 엎드려 절을 하셨다. 우리 셋도 따라 절을 했다. 잠시 후 아저씨가 일어났고, 우리도 일어났다. 아저씨는 한번 더 절을 하셨고, 우리도 절을 했다. 나는 돌아가신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며 일어난 아저씨를 따라 다시 일어났다. 아저씨는 다시 넙죽 절을 하셨다. 우리도 따라 절을 했다. 50배를 넘을 때까지도 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고 80배 정도 했을 때. 아. 하는 탄식을 내뱉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로 108배를 했다. 나도.. 내 옆의 여자분도... 남자분도... 먼저 일어나서 미안... 그러니까 아저씨의 그 흐뭇한 웃음은 '젊은이들이 108배를 하다니. 자랑스럽군.' 하는 웃음이었던 거다.
108배를 하고 나니 기도 시간이 끝났고, 밖은 비가 그치어 화창했다.
뜻 모른 채로 108배를 한 웃긴 일화도 얻었지만, 여전히 나는 그 전날 저녁에 보았던 춤추는 빗물의 모습을 잊지 못하였다. 그 자연의 생명력에서 오는 요동치던 감동을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다시, 시간이 한참 지난 오늘, 어둠 속에 서서, 전봇대의 밝은 등불 아래로 옅게 보이는 빗줄기를 바라보다 그날이 떠올라 탄식했다.
광활한 자연에서 받는 그 위로를 참 오래도 잊고 지냈구나.
언젠가 나는 멀리 중국에서 나와 관계된 모든 이들과 떨어져 지내며 작은 숙소 방에 누워 생각했다. 아마 내가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지. 어쩌면 한 달이 지나고서야 시체 썩는 냄새에 누가 죽었나 살펴보다 날 발견하게 될 거야.
그러한 생각은 그 시절 내가 가장 많이 하던 생각이었다. 우울해서 했던 생각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든. 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현실에 대한 자각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시절에도 나는, 그날 절에서 느낀 그 광활한 자연이 주는 감동의 요동침을 잊지 않았다. 그러므로 참을 수 없을 만큼 거대했던 고독도 괜찮았다. 내리는 빗물을 맞고, 잔디를 만지고, 새를 보고, 자연에 속할 수 있으니 난 이런 고독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자연이 있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났고, 난 그 광활한 생명력으로부터 오는 깊은 울림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나는 그때와 달리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가득하고, 익숙한 환경에 속해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내 가슴에서 느껴지는 슬픔을 견디지 못했다. 생명력이 배제된 공허한 공간에 누워 나는 견딜 수 없이 슬퍼했다.
그러다 오늘, 다른 날과 달리 저녁에 산책길을 걸었고, 비가 내렸고, 사람이 없어 유독 조용해진 어둠 속에서, 광활한 자연의 고동소리를 듣고서야, 그제서 내가 참 오래도 이 자연이 주는 감동의 울림을, 자연에 그득한 생명력을, 그 요동참을 잊고 지냈음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게 아니라 모든 게 이 자연 속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들었다. 광활하고 넓게 뻗쳐진 어떤 공간에서 오는 생명의 고동소리를, 새로 싹이 트는 어떤, 작지만 짙은 울림을.
그것은 광활한 자연, 헤아릴 수 없는 자연의 거대함에서 오는 울림이었다. 작고 작은 나 하나가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생명력으로 가득 찬 자연에 속해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운 좋게, 또 필연적으로, 자연에 속하는 기쁨을 기억하게 되었고, 이 들끓는 생명의 요동침 속에서 또 하나의 객체로, 자연의 울림에 감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