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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Jul 26. 2022

내가 갇힌 좁은 방 안에 하염없이 하늘만 우러러보아도

현관 밖에는 그대가 있음에-

언젠가 유년기를 떠올리고는 웃었다. 엄마와 보냈던 아름다운 시간들이 선명했기 때문에-

가장 먼저 떠오른 엄마 요리 오징어 스파게티에 모짜렐라 치즈 녹이기, 집 앞 붉은 벽돌 길 안가에 펼친 돗자리에 널브러져 앞 뒤로 주차된 남의 집 차와 티타임 가지기, 넓고 큰 텃밭에서 그림을 그리고 엄마한테 보여주기. 선명한 기억을 올리자 엄마가 대답했다. 그거 일주일 기억이네.

응? 거짓말 이게 어떻게 일주일 기억이야. 엄마는 그런 내게 엄마가 쉬는 날 없이 일해야 했음을 알려주었다. 일하느라 바쁘고 널 봐줄 이는 없고, 일하러 나가면 넌 주로 집에 혼자 있었어. 그리고 한번. 일주일간 너랑 같이 온전히 시간을 보냈었는데, 이거 그때 기억이네.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어린 시절의 기나길고 아름답게 기억하던 시간들이라고 여겼던 게- 일주일치 기억이었다고? 지금 이 기억이 전부가 아닌 일부였어?- 

어쩐지 틈 없이 아름답기만하던 기억에 거절당한 기분으로 머릿속이 하얘지다가 기억 해마가 어린 날의 다른 기억들을 보여주었다. 난 보여달라 한 적 없는데-

'스탑! 스타압!!!'(이런 해마새ㄲ)

멍하니 집에 앉아 내다보던 창밖 하늘이 떠오른다. 티브이는 바보상자라며 보지 못하게 해서, 뭘 할까 뭘 할까 그림을 그리다, 공상에 빠지기를 반복했던 시간들. 하염없이 가족이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다가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귀를 쫑긋 세우고는. 깡깡 보폭 좁은 윗집 아줌마, 뭉툭한 운동화 발자국 아랫집 아저씨, 열쇠 소리, 열쇠 소리, 저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벌떡 일어나 현관 앞에 서서 기다리면 문 뒤의 예쁜 두 얼굴이 날 보며 활짝 웃네. 그 시절 내 세상의 전부. 엄마 그리고 아빠.


그러네. 나 꽤 오래 혼자 있었네. 엄마랑 보낸 시간이 그토록 짧았는데도 난 그 시간을 내 어린 날의 전부로 기억했었네- 이 사실을 막 알고 나서는 조금 속상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기억 오답이 한 건했네. 짧고 좋은 시간이 내 어린 날의 공허함을 메꿔줄 수 있게 내 기억이 잘했네- 비록 그게 짧더라도 그만큼 강렬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내 외로운 시간을 메꿔버릴 수 있게 되었네-


그럼 짧고 좋은 시간으로도 고통과 상처를 메꿔갈 수 있다는 거네. 비록 여전히 나는 멍하니 하늘을 보고, 주로 혼자이고, 여전히 아프고 슬프기를 반복해도. 그날 본 하늘과 오늘 하늘이 달라도 여전히 하늘은 참 푸르르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 바로 직전에 나는 푸른 하늘 바닥에 우두커니 서서 다 썩어버린 마음에서 날파리를 죽이다가 변해버린 것들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코를 막고 중얼거렸다.


내 마음에 빛나는 건 이제 없어. 이제 난 어둠의 자식이야.


긍정적이던 네가 다 어디로 갔느냐는 친구물음대한 답이었.


내 말에 친구는 너 전에도 그랬다. 한참을 즐겁게 웃는가 싶더니 돌연 멍하니 슬픈 표정 짓고 그랬다. 그래서 난 그냥 아 얘가 가슴에 상처가 많구나 멍이 많구나 생각했다. 니가 얼마 전에 마음 터놓고 얘기하고 다 이해됐다. 왜 그랬는지.


굴러가던 낙엽에도 깔깔대던 학창시절. 나는 늘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만 나눴던 우리라고 생각했고, 그저 밝은 면만 보여서 아무도 몰랐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나를 보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너 진짜 나를 봤구나.


친구가 나를 보았다는 사실에 울컥했다. 그 애는 또 나를 울리려고 그러는지 지금은 조금 차가워져도 된다,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하잖아. 그래도 내가 계속 니 옆에 있을게. 대신 연락 좀 해라 친구야, 하며. 내 눈시울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래. 너는. 내 심장을 뛰게 해주는 몇 남지 않은 소중한 사람이구나, 그리고 그래서 더욱 내가 널 피하고 싶었던 거구나 생각하며 꼴깍 눈물을 삼켰다.



며칠 전, 늦은 시간에 잠들지 못한 채로 동생에게 카톡을 남겼다.


나는 늘 이런 게 두려웠어.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거. 상처받다 상처받다 지쳐. 내 온 마음의 뜨거웠던 것들이 전부 박동을 멎고 싸늘해지는 거. 사람들은 아마 모르겠지. 내 마음이 얼마나 따듯했는지. 그리고 지금도 모를 거야. 내 마음이 얼마나 싸늘한지. 이제 그런 건 상관없어, 모든 게 그저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질 뿐이야. 그 어떤 것에도 더해진 환상 따윈 없어. 책상은 책상, 의자는 의자, 침대는 침대, 너는 너, 나는 나.

이제 나는 누가 아프고 괴롭대도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아. 아니. 정말 사랑하는 몇 사람, 나에게 소중한 그 몇 사람을 빼고는 말이야. 그래도 다행이지 그들 덕에 내 몸에 온기가 남아 있는 거야. 그들 덕에 내 심장이 그나마 뛰는 거야. 그리고 그중 하나는 너야. 사랑하고 오늘도 잘 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답변이 왔다.


언니. 나도 너무너무 사랑해. 내게 그대가 있음에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나는 어리석어 그 감사함을 너무 자주 까먹고 여러 핑계를 대며 말하지 않아도 언제나 알아줄 거라 착각하지. 하지만 마음이라는 게 눈으로 훤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면 아마 말 따위는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었을지도 몰라.

나도 누구보다 언니를 사랑하고

언니가 있음에 늘 감사해 사랑해 언니

잘 자


나는 또 꿀꺽 눈물을 삼키다 결국 눈 밖으로 뱉어냈다.



전 남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안녕. 잘 지내? 난 얼마 전에 한국에 돌아왔어. 네가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어. 시간 될 때 연락 줘.


그래. 생각해보고 알려줄게.

라고 답변을 남기고. 그 애를 만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그 연락에.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자꾸만 주저하고 망설여졌다. 하지만 다시 널 만날까 고민하는 내 마음에게 물었어. 널 만나는 게 그냥 잠깐이라도 너를 마주하는 게 나에게 좋은 일일까?


나 알아. 어떤 의미로 내게 연락했는지도. 네 카톡 프로필 사진이 어떤 의미인지도. 난 여전히 널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어. 하지만 네가 준 상처는 아직도 내게는 쓰라려서 널 다시 만나면 그동안 애써 나아지던 마음이 또 한 번 아파야 할 거야. 그리고 난 또. 그 고통을 벗어나려 더 긴 시간을 보내야 하겠지. 네가 내 브런치 읽는다는 거 알아. 사실 난 아직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어. 하지만 이 싸움은 조만간 끝날 것 같아. 난 내 안에 갇혀 있지만 내 문 밖에 좋은 사람들이 내 집 현관을 두드려주고 있거든. 나는 이제 마음만 먹으면 이 바깥으로 나가게 될 수 있을 것 같아. 미안해. 너에게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 것 같아.


우리 이제 서로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존재하자.


잘 지내고

건강해


너에게도 아름답고 좋은 사람들이 너의 현관 밖에널 기다리고 있길 언제나 기도할게.



우두커니 막은 코를 열고 높게 펼쳐진 하늘을 보았다. 문득 여전히 푸른 저 하늘과 날 따듯한 마음으로 바라봐주는 내 소중한 이들에게 고마워졌다. 나는 쫑긋 귀를 세웠다. 저 문밖에서 나를 부르는 사랑의 소리를.


고맙습니다.



- 소중한 마음을 지닌 모든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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