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종 맛도 알아버렸다는 거 아닙니까?
꼭 인생에 무슨 답이 있어야 하나요?
요즘은 맥주보다 소주가 좋아요. 언젠가 의도치 않게 두 번 보게 된 드라마 이태원 클래스에서 아빠와 아들이 술을 마시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아들이 불합리한 이유로 자퇴를 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소주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는 물었어요.
“그래. 소주 맛이 어떻더냐?”
소주를 한 잔 들이켠 아들이 달다고 했고, 아버지는 말했죠.
“그 말은 오늘 하루가 인상 깊었다는 말이야.”
저는 그 말을 듣고 언젠가 소주가 달다고 느꼈던 때가 있었는가를 기억해보았습니다. 생각해보니 딱 한 번 쓴 소주가 달콤하다고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감기에 걸렸을 때였죠. 이상하게 아픈데 소주가 달다 하니, 옆에서 술을 들이켜던 선배 하나가 이럽니다.
“원래 아프면 술이 달고, 아프면 술을 마셔야 낫는 거야.”
궤변을 늘어놓길래 사람들은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했지만 저는 그 말이 꽤 일리 있게 들렸습니다. 당시 그 소주가 정말 달게 느껴져서였을까요? 감기에 걸리면 소주 한 잔 마시고 자면 된다는 항간의 설이 맞는 것도 같았습니다.
스물아홉이 되기 전까지는 소주 맛을 몰랐습니다. 사실 언젠가 술을 마시고 좀 무서운 일을 겪은 터라, 말 그대로 술 때문에 죽을 뻔한 적이 있고 나서는 되도록 술을 멀리했습니다. 덕분에 알콜성 치매도 치유가 되었지요.
아. 또 한 번 술이 달게 느껴진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신 장례식장에서였어요.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그 과정을 묵묵히 옆에서 지켜보긴 처음이었습니다. 언젠가 동생이 친한 친구 아버님 장례식에 갈 때 아버지는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그냥 가서 아무렇지 않은 척 씩씩하게 괜찮다고 해주고 와. 슬프다고 막 울고 그러지 말고. 때로는 그게 예의야.”
그래서 저는 왜 자꾸만 눈물이 멎지를 않는지. 노력을 해도 멎지 않는 눈물이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나는 왜 눈물이 멎지 않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내가 미쳤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는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그 아이의 부모님과 친했느냐고 묻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냥 모르겠습니다. 학창 시절을 나누어서인지. 마음을 나눈 친구여서인지. 아직도 이유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와서 우는 나를 보며 놀라 물었습니다. 뭔 일이야, 뭔 일 있어? 나는 울면서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울면 안 되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아버지는 괜찮다고 울어도 된다며 나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간 장례식장에서 친구는 되레 웃으며 물었습니다.
“야. 니가 상주냐?”
그 말에 나도 되레 웃다가 꿀꺽 눈물을 삼킵니다. 그날 이상하게 술이 달았습니다. 이상한 것 투성이인 날이었습니다. 동창회라도 하듯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오가고 아버지의 말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한참을 자리를 지키며 농담 따먹기를 하고 갑니다. 왜 그때 아버지가 동생에게 그리 말했는지 이해가 갔고, 소주가 달아 이상하기만 한 날이었습니다.
30에 드리우면 인생 쓴맛을 알게 되는 걸까요? 갖은 인생풍파에 지치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그저, 소주가 달아지는 걸까요? 이상하게 소주가 단물 같습니다.
근래에 저는 그 어떤 것도 크나큰 의미를 갖지 않은 메마른 세상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간 제 마음이 너무 촉촉하고 부드러웠어서, 지금을 보내는 이 한때의 인생 구간은 잠시 메마른 채로 살아보려 합니다.
아무것도 없고 메말랐고 공허하지만 그대로 편안한 상태. 슬픔도 있고 고통도 있지만, 그것이 그리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 어떤 메마른 상태. 난 지금 이 상태가 꽤 마음에 듭니다. 이곳에서는 소주가 달거든요.
당신에게 제 말이 궤변처럼 들리지 않았길 바랍니다. 저는 잠시 이 메마른 땅을 유랑하려 하고, 혹시 그대도 나와 같다면 우리가 이곳에서 잔을 기울여볼 수 있지 않을까요?
ps- 소주가 싫다면 차도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