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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Sep 14. 2022

우리의 아픔은 모두 하나의 상장이야

아픔이 널 찾아가도 괜찮아-

차를 타고 타는데, 엄마가 오래전 이야기를 꺼냈어. 오은영 선생님의 십계명 중에 아이를 절대 때리지 말라는 게 있었다는 거야. 엄마는 몰랐다고 했어. 그러면 안 되는지 몰랐다고 했어.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어. 어릴 때 때려서 미안하다고 했어.


그래. 난 좀 징글징글하게 많이 맞긴 했어. 솔직히 하루라도 선생님과 엄마에게 맞지 않은 날이 있다면 정말 운이 좋은 날이었어. 늘 누군가 날 리지 않을까 전전긍긍이었어.


그런데 차에서 들은 엄마의 사과가 난 싫었어.


우린 언젠가 사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어. 엄마와 동생이 어떤 영상을 보고는 그런 적이 있었어. 사과는 상대가 받아줄 때까지 해야 하는 거라고. 난 너에게 잘못을 했어, 그래서 너에게 사과하고 싶어. 정말 미안해.라고, 상대가 밀쳐내고 밀쳐내도 또 한 번 또 한 번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사과하는 거랬어.


엄마와 동생이 사과에 대해 말했던 대로, 엄마는 이미 나에게 여러 번 사과했어. 난 그럴 때마다 엄마에게 이제 괜찮다고, 다 지나갔다고 말해주었어. 물론 때때로 울었고, 가슴이 쓰렸고, 아팠어. 하지만 그런 고통쯤은 감내할 수 있었어. 그때는 그랬어. 오히려 사과를 들어서 좋았어.


엄마와 동생에게 사과에 대한 하나의 개념을 들었을 나는 지속적인 사과가 상대에게 자신의 진심을 제대로 또 정확히 전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 방법은 상처받은 이들에게는 좀 과격한 방법일지도 몰라.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어. 엄마의 사과를 듣고 나서 분노가 차올랐어. 눈물이 나서 화가 났어. 이젠 정말 지긋지긋한데. 우는 것도. 슬픈 것도. 징글징글한데. 엄마의 사과 때문에 또다시 그때 그 고통을 느껴야 한다니. 또다시 아프고, 슬퍼야 한다니. 이젠 좀 가볍게 웃고 떠들고 싶은데. 그저 메마른 웃음이라도 웃고 싶은데. 그런데 엄마가 날 또 울렸어. 잔인하더라도 말해야 했어.


"엄마는 그 말을 해서 날 다시 고통 속에 빠뜨렸어. 결국 가장 아픈 건 나야. 가장 고통받은 것도 나야. 엄마가 엄마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사과한 거라면, 앞으로는 그러지 마. 앞으로는 사과하지 마. 앞으로는 사과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한테 사과해줘."


때때로 슬픈 이야기를 하지 않고 비껴가려는 사람을 보면서, 무뚝뚝한 사람을 보면서 생각했어. 말을 하고 내뱉으면 더 괜찮아질 텐데. 울고 나면 더 괜찮아질 텐데 하고.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그건 또 하나의 어린 오해이지 않았을까. 삶을 조금 살다 보니, 때때로는 어쩔 수 없이 무뚝뚝한 침묵만이, 말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것만이 고통을 잠재워 줄 수 있는 것 같아. 아무리 울어도 사라지지 않는 슬픔과 고통이 있다면 때론 말을 삼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으로 느껴져서. 때론 시간만이 해결해주는 일들이 있어서. 때로 어떤 것들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어서. 때로 어떤 고통은 시간이 지나도 잘 지워지지 않아서. 그래서 그냥 기다리는 수 밖엔 없어.


만약 너무 아프다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괜찮아. 꼭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시간이 이해해 줄 거니까. 그냥 잠시 침묵한 채여도 괜찮아.


엄마는 내게 알겠다고 했어. 엄마도 말했어. 너에게 사과함으로써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고. 그래서 이제 다시는, 내가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 다시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어.


나는 한참을 눈물을 그치지 못해 울었어. 시간을 지나쳤어. 시간을 한참 지나쳐서야 돌아 돌아 진정이 되니. 다시 메마르게 웃을 수 있었어. 이제 슬픈 건 좀 지겹지만 기억과 상처는 워낙 친한 사이라 우리는 한참 동안 기억을 나누며, 이제는 너무 깊지도 크지도 않은 상처들을 묵묵한 표정으로 나누었어. 서로에게 그런 것들이 있었구나 때때로 살짝은 놀라거나, 아름다움이 섞인 상처라 즐거워하며 말야. 나는 그런 상처들, 기억들을 나누다가 알게 되었어.


"엄마. 우리의 상처는 모두 하나의 상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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