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세가 뜬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다. "2023 모다님의 운세를 확인하세요. 용하다. 용해......"
벌써 한 해가 또 한 번 지나가는구나. 나는 빠르게, 문자함에 쌓여 확인이 필요한 숫자들을 지워나갔다. 내년이 되면 서른이라니. 무대 조명 아래 서른즈음에를 잔잔하고 쓰린 표정으로 부르는 김광석 이미지가 머릿속을 쓸고 다닌다.
수많은 사람들이 삼십되면서 딱히 별 감상이 없었다 해서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삼십 뭐. 숫자일 뿐. 감상은 무슨 감상. 그런데 웬걸. 마지막 달이 되니 또 한 해를 보낸다는 생각에 김광석의 찌푸려진 미간처럼 가슴이 쓰라리다. 좌충우돌 이십 대를 마친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헤어짐은 늘 슬픈 법이라 그런 걸까.
마지막 해를 보내기 전 엄마를 보러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노래를 들으며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자꾸만 눈물이 흘러서, 울보가 되어버려서. 갱년기도 아닌데 감정이 왜 이리 널뛰기를 하는지. 내 모습이 참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년에는 뭔가 좀 달랐으면 좋겠어. 좀 더 성숙하게 문제들을 해결하고, 덜 놀라고, 덜 무서워했으면 좋겠어.'
늦어진 계절과 차마 가져오지 못한 휴지 때문에 닦지도 못하는 콧물을 줄줄 흘리며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별 감상이 없긴 개뿔. 감상에 젖어버렸는데.
엄마는 찌푸린 김광석 미간과는 대비되는 반가운 표정으로 날 반겼다."우리 딸." 하면서 얼굴을 쓰다듬기에 만지지 말라고 말하자 엄마는 하하 웃으며 운전대를 잡았다. 우리 딸 까칠이가 진짜 여기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이 엄마 미소에 드리웠다. 언젠가 엄마는 나를 귀엽다며 자꾸만 다 큰 딸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건드리지 마. 내 몸은 내 연인만 만질 수 있어."라고 대꾸했더니, 이 말에 충격을 받은 엄마는 서운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그럼 나는. 그럼 나는!" 나는 이내 미안해져서 "그래도 손은 괜찮아." 하며 엄마 손을 꼭 붙들었다. 그때 생각이 났다. 나는 핸들을 꺾어 검은 어둠 사이를 헤치며 달려가는 엄마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맥주도 마셔야지."
딱 적당한 양의 맥주와 고기 야채 김밥 초콜릿. 재치가 가득 담긴 농담들이 오가며 엄마는 겨울에 태어난 내게 생일 선물을 건네었다. 포동포동한 택배 주머니에서 꺼낸 건 황순원의 소나기였다. 언젠가 내가 이-북으로 샀던 한국 단편 소설 모음집. 이상하게 그 책을 보자마자 눈물이 떨어졌다.
아. 진짜 울보가 다 되어버렸구나.
"괜찮아. 울어도 돼." 엄마는 나를 보며 말해주었다. 말해주었다. 괜찮다고. 엄마랑 있으면 이런 게 좋다. 뭐든 괜찮은 기분. 이래도 저래도 괜찮은 기분.
감정을 덜 느끼고, 덜 아파하고, 덜 괴롭고 싶은 나에게 엄마는 늘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괜찮아. 울어도 돼. 만약에 말이야. 우리가 영혼이었을 때, 몸을 가지지 않은 영혼이었을 때 말이야. 몸이 얼마나 가지고 싶었을까? 화도 내 보고, 슬퍼도 해보고, 기뻐도 해보고, 얼마나 그러고 싶었을까?"
나는 내가 떠다니는 한 줌 공기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공기라면 빛처럼 빠를 수도 있고 빛을 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원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얻을 수 있으며,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그 사람 곁에 머무르며 그 사람의 호흡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형태가 없는, 무형의 공기이기에 나를 표현할 수가 없어, 모든 게 다 있지만 또 모든 게 다 없는 상태에 머물렀을 것이다. 나는 얼마나 이 몸이라는 것을 가지고 싶었을까. 엄마 말대로 얼마나 이 몸이라는 형체로 '나'를 표현하고 싶었을까.
"그래서 우리가 태어난 게 아닌가 싶어."
난 엄마의 그 말에 동감했다.
"힘들어도 괴로워도 그것에는 나름의 맛이 있어. 오직 그때만 느낄 수 있지. 물론 힘들고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고통스러웠던 그때조차 너무나도 향긋했던 추억이 되는 신기한 일을 경험하게 될 거야. 그리고,힘들지 않은 일은 도전할만한 가치가 없는 거야."
새직장에 적응하느라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나에게 건넨 엄마의 그 말에 난 또 동감했다.
"모든 것은 너에게 경험으로 남게 될 거야."
나는 엄마의 그 따스한 말에 담긴 온기가 좋았다. 그래서 더, 엄마가 건넨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울음이 차올랐고, 울음이 차올랐을 때, 그냥 참지 않고 울어버렸다. 나의 힘든 시간을 즐겁게 따스하게 이 소설처럼, 한껏 앓다간 열병처럼 즐길 수 있는, 즐거웠던 때였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문득문득 기억이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고 가듯, 소나기를 읽던 때가 또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도 바로 이 집, 엄마의 시골집에서였지. 시골집 창문을 열면 여름을 피해 들어오던 식은 바람 한 줌과 온 사방의 개구리 소리가 가득한 밤에. 엄마가 잠든 새벽녘 사이 어딘가에 환하게 태블릿 이-북을 켜고 소나기를 읽은 순간은, 내 속에 진하게 아름답게 풍경으로 남았다. 그 풍경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고마워 엄마."
난 소나기를 잡아들고 엄마를 끌어안았다.
내 손에 내려앉은 소나기를 보며 나의 삼십 또한 이러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마 삼십의 나는 울보이겠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 덜 느끼고 덜 아프기보다, 울보여도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여주고, 탓하지 않고, 그럼에도 제자리에서 노력하는 '나'이지 않을까.
아. 삼십이 되면 주머니에는 휴지는 꼭 넣고 다녀야지.
마치 맛있는 밥상을 놓고 먹방을 쳐다보며 맛있겠다 중얼거리듯이, 나는 30의 초입에서 40의 초입도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우리만의 집을 사서 그곳을 꾸미고 시골 한적한 마을 어디선가 뿌리를 내리며 지내는 모습을. 나는 삼십에 더 열심히 돈을 벌어서 사십부터는 자연이 일상인 삶을 살아야지. 내 먹을거리는 내가 농작을 하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하고, 이야기를 읽고 만들고, 때때로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을 만나는, 어딘가 부족해도 그대로 만족스러운 삶.
이제 난 그 삶의 초입부에 선 것이겠지. 삼십. 입에 착 달라붙진 않지만 언젠가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그 숫자 삼십.
삼십. 꽤 마음에 든다.
잘 가라 내 이십 대야. 그동안 너무도 처음인 고통과 아픔을 마주하느라 참 수고 많았다.
내가 애정하는 나의 모든 분과 브런치의 모든 분이 사랑하는 이과 함께하고, 자신에게 작고 귀한 선물을 주며,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풍성하고 값진 2022 마지막 한 달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