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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Dec 03. 2022

또, 한 해를 보내며

(바이바이 2022)

운세가 뜬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다.
"2023 모다님의 운세를 확인하세요. 용하다. 용해......"


벌써 한 해가 또 한 번 지나가는구나. 나는 빠르게, 문자함에 쌓여 확인이 필요한 숫자들을 지워나갔다.
내년이 되면 서른이라니. 무대 조명 아래 서른즈음에를 잔잔하고 쓰린 표정으로 부르는 김광석 이미지가 머릿속을 쓸고 다닌다.


수많은 사람들이 삼십되면서 딱히 별 감상이 없었다 해서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삼십 뭐. 숫자일 뿐. 감상은 무슨 감상. 그런데 웬걸. 마지막 달이 되니 또 한 해를 보낸다는 생각에 김광석의 찌푸려진 미간처럼 가슴이 쓰라리다. 좌충우돌 이십 대를 마친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헤어짐은 늘 슬픈 법이라 그런 걸까.

마지막 해를 보내기 전 엄마를 보러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노래를 들으며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자꾸만 눈물이 흘러서, 울보가 되어버려서. 갱년기도 아닌데 감정이 왜 이리 널뛰기를 하는지. 내 모습이 참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년에는 뭔가 좀 달랐으면 좋겠어. 좀 더 성숙하게 문제들을 해결하고, 덜 놀라고, 덜 무서워했으면 좋겠어.'

늦어진 계절과 차마 가져오지 못한 휴지 때문에 닦지도 못하는 콧물을 줄줄 흘리며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별 감상이 없긴 개뿔. 감상에 젖어버렸는데.

엄마는 찌푸린 김광석 미간과는 대비되는 반가운 표정으로 날 반겼다. "우리 딸." 하면서 얼굴을 쓰다듬기에 만지지 말라고 하자 엄마는 하하 웃으며 운전대를 잡았다. 우리 딸 까칠이가 진짜 여기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이 엄마 미소에 드리웠다.
언젠가 엄마는 나를 귀엽다며 자꾸만 다 큰 딸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건드리지 마. 내 몸은 내 연인만 만질 수 있어."라고 대꾸했더니, 이 말에 충격을 받은 엄마는 서운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그럼 나는. 그럼 나는!" 나는 이내 미안해져서 "그래도 손은 괜찮아." 하며 엄마 손을 꼭 붙들었다. 그때 생각이 났다. 나는 핸들을 꺾어 검은 어둠 사이를 헤치며 달려가는 엄마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맥주도 마셔야지."

당한 양의 맥주와 고기 야채 김밥 초콜릿. 재치가 가득 담긴 농담들이 오가며 엄마는 겨울에 태어난 내게 생일 선물을 건네었다.
포동포동한 택배 주머니에서 꺼낸 건 황순원의 소나기였다. 언젠가 내가 이-북으로 샀던 한국 단편 소설 모음집. 이상하게 그 책을 보자마자 눈물이 떨어졌다.

아. 진짜 울보가 다 되어버렸구나.

"괜찮아. 울어도 돼." 엄마는 나를 보며 말해주었다. 말해주었다. 괜찮다고.
엄마랑 있으면 이런 게 좋다. 뭐든 괜찮은 기분. 이래도 저래도 괜찮은 기분.


감정을 덜 느끼고, 덜 아파하고, 덜 괴롭고 싶은 나에게 엄마는 늘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괜찮아. 울어도 돼. 만약에 말이야. 우리가 영혼이었을 때, 몸을 가지지 않은 영혼이었을 때 말이야. 몸이 얼마나 가지고 싶었을까? 화도 내 보고, 슬퍼도 해보고, 기뻐도 해보고, 얼마나 그러고 싶었을까?"

나는 내가 떠다니는 한 줌 공기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공기라면 빛처럼 빠를 수도 있고 빛을 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원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얻을 수 있으며,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그 사람 곁에 머무르며 그 사람의 호흡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형태가 없는, 무형의 공기이기에 나를 표현할 수가 없어, 모든 게 다 있지만 또 모든 게 다 없는 상태에 머물렀을 것이다. 나는 얼마나 이 몸이라는 것을 가지고 싶었을까. 엄마 말대로 얼마나 이 몸이라는 형체로 '나'를 표현하고 싶었을까.

"그래서 우리가 태어난 게 아닌가 싶어."

난 엄마의 그 말에 동감했다.

"힘들어도 괴로워도 그것에는 나름의 맛이 있어. 오직 그때만 느낄 수 있지. 물론 힘들고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고통스러웠던 그때조차 너무나도 향긋했던 추억이 되는 신기한 일을 경험하게 될 거야. 그리고, 힘들지 않은 일은 도전할만한 가치가 없는 거야."

새직장에 적응하느라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나에게 건넨 엄마의 그 말에 난 동감했다.

"모든 것은 너에게 경험으로 남게 될 거야."

나는 엄마의 그 따스한 말에 담긴 온기가 좋았다. 그래서 더, 엄마가 건넨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울음이 차올랐고, 울음이 차올랐을 때, 그냥 참지 않고 울어버렸다. 나의 힘든 시간을 즐겁게 따스하게 이 소설처럼, 한껏 앓다간 열병처럼 즐길 수 있는, 즐거웠던 때였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문득문득 기억이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고 가듯, 소나기를 읽던 때가 또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도 바로 이 집, 엄마의 시골집에서였지. 시골집 창문을 열면 여름을 피해 들어오던 식은 바람 한 줌과 온 사방의 개구리 소리가 가득한 밤에. 엄마가 잠든 새벽녘 사이 어딘가에 환하게 태블릿 이-북을 켜고 소나기를 읽은 순간은, 내 속에 진하게 아름답게 풍경으로 남았다. 그 풍경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고마워 엄마."

난 소나기를 잡아들고 엄마를 끌어안았다.

내 손에 내려앉은 소나기를 보며 나의 삼십 또한 이러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마 삼십의 나는 울보이겠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 덜 느끼고 덜 아프기보다, 울보여도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여주고, 탓하지 않고, 그럼에도 제자리에서 노력하는 '나'이지 않을까.

아. 삼십이 되면 주머니에는 휴지는 꼭 넣고 다녀야지.

마치 맛있는 밥상을 놓고 먹방을 쳐다보며 맛있겠다 중얼거리듯이, 나는 30의 초입에서 40의 초입도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우리만의 집을 사서 그곳을 꾸미고 시골 한적한 마을 어디선가 뿌리를 내리며 지내는 모습을. 나는 삼십에 더 열심히 돈을 벌어서 사십부터는 자연이 일상인 삶을 살아야지. 내 먹을거리는 내가 농작을 하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하고, 이야기를 읽고 만들고, 때때로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을 만나는, 어딘가 부족해도 그대로 만족스러운 삶.

이제 난 그 삶의 초입부에 선 것이겠지. 삼십. 입에 착 달라붙진 않지만 언젠가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그 숫자 삼십.

삼십. 꽤 마음에 든다.

잘 가라 내 이십 대야. 그동안 너무도 처음인 고통과 아픔을 마주하느라 참 수고 많았다.


내가 애정하는 나의 모든 분과 브런치의 모든 분이 사랑하는 이과 함께하고, 자신에게 작고 귀한 선물을 주며,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풍성하고 값진 2022 마지막 한 달이 되기를.

덧없는 마음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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