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삶의 시간 동안

by 모다

친구는 말을 잘 못한다. 우리는 주고 받는 대화도, 한마디 말도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친구는 매번 같은 소리를 내뱉었지만, 난 그 소리가 좋았다. 야옹 야옹.

2년 전 봄날에 애를 처음 만났다. 나는 흙밭에 앉아 그림을 그리며 의식이 흐르는대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독도는 우리 땅~ 우리 땅!”

“어? 쟤 뭐지?”


멀지 않은 곳에서 주황색 고양이 한 마리가 노랫소리에 맞춰 야옹야옹거렸다. 내가 ‘독도’ ‘독도’ 거리면 꼬물거리며 내쪽으로 다가온 그 아이는 전생에 애국열사였나보다. 가만히 쳐다보니까 한참을 내 옆에서 자기 털을 핥고 앉았다. 차마 무서워서 만져보진 못하겠고 집으로 얼른 뛰어가 먹을 걸 챙겨 와 건네주었다.


천천히 다가오는 중...


이듬해 봄, 나는 ‘독도’를 다시 만났다. 그런데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자기와 똑 닮은 애기 고양이와 함께 나타났다. 딱 봐도 앳되어 보이는 그 애기 고양이는 애교가 많았다. 나에게 와서 몸을 부비적거릴까 하다가 ‘독도’ 눈치를 한번 보고 근처 풀에다가 몸을 부비적거렸다.


반가운 마음에 먹을 걸 주고 한산한 시간도 때울 겸 두 놈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 둘도 어디에 가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지는 노을을 보았다. ‘독도’는 살짝 웃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세상 편해 보이는 그 미소는 노을빛과 함께 내 안으로 들어왔다. 비록 너희들은 동물이었지만 나는 너희들과 함께 해서 마음이 행복했다.

그다음부터 고양이들은 나만 보면 야옹거리며 다리에 몸을 부비적거렸다.


처음에는 그냥 밥을 줘서 그러겠거니 했다. 그런데 밥을 다 먹어도 떠나질 않았다. 어딜 가면 따라왔고, 웅크려 앉으면 와서 몸을 부비적거렸다.



그 큰 고양이는 알고 보니 남자 고양이였다. 독도를 좋아하나 보다 했는데 '사나이'란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그랬나보다. '사나이'는 지가 부비적거리는 건 좋아하고 내가 만져주면 싫어했다. 어쩌면 아주 어릴 적에 누가 그 애 꼬리를 잘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 애 꼬리는 짧아도 너무 짧았다.


친구가 된 후로 그 애들은 때때로 집 앞으로 찾아왔다. 내가 떠난 후에도 야옹거리며 찾아오는 탓에 엄마는 투덜거리면서도 매번 그 애들에게 밥을 챙겨주었다.




이번 해 여름에 다시 찾은 시골집에서 나는 고양이를 만나려고 반나절 내내 현관 밖에서 땡볕을 쬐었다. 사나이는 저녁이 되어서야 슬그머니 집 앞으로 찾아왔다.

“애기는 어디 있니 사나이야.”

그 애는 야옹거리며 손등에 몸을 비볐다. 애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날 저녁, 엄마와 맥주를 마시는데 엄마가 말했다.

“그런데 그 새끼 고양이는 죽은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번쩍 들어 엄마를 보았다.

“어? 왜?”

“네가 저번에 그 새끼 고양이 배가 부른 것 같다고 했잖아. 그런데 얼마 뒤에 보니까 정말 애기를 밴 것 같더라고. 그런데 요 며칠 한참 모습이 보이질 않았어... 아무래도 죽은 것 같아."

"설마... 정말 아기를 낳은 거면 돌보느라 얼굴 안 비춘 거 아니야?"

"아니지. 아기를 낳았으면 밥을 먹으러 왔겠지."

엄마는 뜬금없이 며칠 전에 꾼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날 꿈을 하나 꿨는데 꿈에 애기 고양이가 나왔다고 했다. 푸른 들판에서 고양이와 함께 즐겁게 노는 꿈이었다고 했다. 깨어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마음이 좋아서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애기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문득 엄마는 생각했다고 했다. 그때 그 애기 고양이가 떠나기 전 자신을 만나러 와서 마지막으로 잠시 놀다 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어쩐지 언젠가부터 나타난 '사나이'의 울음소리가 달라졌다고 했다. 자신한텐 곁도 안 주던 사나이가 와서는 부비적거리더니 아무래도 애기가 죽어서 그랬던 것 같다고 했다.


쓴 약을 심장에 골고루 펴 바른 기분이었다. 사나이보다도 자주 얼굴을 내비치는 아이가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슬프다.”

나는 맥주를 들이켰다.

“괜찮아 우리 딸. 그 애는 자기 삶의 시간 동안 행복하게 살다 갔을 거야. 자신이 가진 자유를 누리고, 자신의 삶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고 갔을 거야.”

“그렇겠지?”

그래도 자꾸만 내일이 되면 그 애가 문 앞에 찾아와서 야옹거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 집 앞을 찾아온 사나이가 내 몸에 얼굴을 들이밀며 부비적거렸다. 우거진 수풀을 바라보았지만 애기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눈길은 자꾸만 수풀로 향했다. 수풀 사이 어딘가에서 그 애가 푸른 들판을 뛰 노는 모습이 보였다. 내 상상의 들판 속에서 그 애는 자유롭게 뒹굴며 보이는 모든 풀과 나무에 몸을 비볐다.


“그 애는 자기 삶의 시간 동안 즐겁고 자유롭게 살았어. 그러니까 괜찮아 그렇지?”

내 말에 사나이는 슬픈 목소리로 야옹거렸다.


나는 언젠가 겨울에 너희와 함께 산책을 했었다. 눈 오는 길 위로 내가 걸으면 너희들이 총총거리며 쫓아왔고, 너희들이 총총거리며 나를 지나치면 나도 총총거리며 너희들을 쫓아갔다. 때때로 가다가 멈춰서 잘 따라는 오는지 뒤를 돌아 서로를 바라보기도 했다.

그다음 날도 우리는 걸었고, 그다음 날도 우리는 걸었다.



가을이 되어 다시 찾은 시골집에서(오늘, 10월 18일) 주인집 할머니를 오랜만에 만났다. 언제 왔느냐고 물으신 할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할머니는 네가 시간을 자주 보내는 그 고양이 기억하느냐고 물으셨다.

한참 전에 그 애를 찾은 분은 할머니 본인이라고 하셨다. 막 죽은 것 같더라고. 배가 불렀던데. 아이를 배었던 것 같은데. 거기에 그렇게 죽어 있더라고. 하셨다.

그날 하루 동안 할머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할머니는 막 죽은 그 애를 데려가서 산에 묻어주었다고 했다.

또다시 쓴 약을 심장 곳곳에 바른 심정이 된 나는 스스로 중얼거렸다.

"괜찮아. 그 애는 자기 삶의 시간을 충분히 살고 행복하게 누리다가 자기의 때를 맞이하여 떠났을 테니까."

너희들이 야옹거리는 말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말도 그 말 밖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삶의 시간 동안 너를 알아서 행복했고, 내 삶의 한때를 함께 보낸 이가 '너'여서 참 행복했다.




어느 겨울날 너희들과 산책을 했었다.




ps- 사나이는 건강하게 살아서 꾸준히 집에 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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