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너에게도 머물 자리를

오 카타르시스여! 내 마음의 방이여!

by 모다

멍하니 앉은 할머니 집 거실에서는 드라마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도 크고 화면도 커서 오도카니 앉아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막장드라마. 대체 왜 보는지 이해하기 힘든 장르였다. 그런 생각을 막 마치기도 전에 나는 어느새 드라마 앞에서 자세를 고쳐 앉고 할머니와 공을 주고받듯 욕설을 주고받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저런. 저거 저. 미친 거 아니야?"

"아유. 징그러워. 대체 왜 저러는 거야? 미쳤구먼 아주 미쳤어. 아주 대가리가 단단히 돌아버렸어."


욕을 좀 멈출까 하는 순간이면 할머니가 저 놈이 바람 폈다고 알려주시고, 또 욕을 멈추려고 하면 입에도 담기 힘든 충격 사실을 알려주셨다. 막장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더는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또다시 폭주하는 기관차가 되어서 외쳤다.

"뿌뿌. 저 지금 지나갑니다. 막지 마세요."

텔레비전 속으로 캐릭터를 향해서 손가락질까지 해가면서 멍멍이 자식들 이름도 여기저기서 찾아 외쳤다. 가슴속에 숨어서 호시탐탐 때를 노리던 분노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며 노래하고 춤췄다.

'그래. 바로 이 느낌이야.'

욕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욕을 하면 할수록 추악하게 뭉친 응어리 같은 게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뭐지. 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건데?”

내 말을 듣자 동생이 화면을 보며 물었다.

“카타르시스가 어디서 생겨난 말인 줄 알아?”


“어디서 생겨났는데?”

“<오이디푸스 왕>이란 작품에서 생겨난 말 이래."

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동생을 쳐다봤다.

"그래?"


동생은 분명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나는 동생을 빤히 쳐다봤다.

"그 이야기해줘? 좀 긴데 괜찮아?”

“그럼. 어서 해봐. 어서.”





#- 오이디푸스 왕



옛날 옛적에 왕과 왕비가 살았어. 두 사람은 아이를 낳고 싶었어.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애가 생기질 않는 거야. 왕은 예언자에게 가서 대체 왜 아이가 생기지 않는지 물었어. 예언자의 대답은 충격적이었어.

“너한테 아들이 생길 것인데 그 아들은 너를 죽이고 너의 부인과 애를 낳을 것이다.”

왕은 궁으로 돌아와 결정했어. 만약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버리겠노라고.


그 뒤로 왕과 왕비에게 정말 아이가 생긴 거야. 둘은 아이를 목동에게 넘겨주면서 저기 저 먼 숲 속에다가 아니 사막에다가 갖다 버려달라고 했어. 하지만 어쩐 이유인지 목동은 그 아이를 목자에게 넘겨주고, 목자는 그 아이를 이웃나라의 왕과 왕비에게 넘겨주었어. 이웃 나라의 왕과 왕비도 오랫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했거든. 둘은 너무 행복해하며 아이를 데려다 자신의 아이로 키웠지. 새로운 부모는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어.

오이디푸스.


고대 그리스어로 오이디푸스의 뜻이 뭔지 알아? ‘부은 발’이란 뜻 이래.

처음에 애를 건네주기 전에 왕이 아이의 발바닥과 발목을 끈 같은 거로 묶어서 애기 발이 퉁퉁 부어 있었대. 그래서 이름이 '부은 발'이야.


부은 발이 조금 큰 어느 날이었어. 그 애보다 나이가 좀 많은 아이들이 와서 그러는 거야. 너희 엄마 아빠는 너를 낳은 엄마 아빠가 아니다.

부운 발은 당연히 그 말을 안 믿었지. 하지만 신경이 쓰여서 직접 예언자에게 찾아가 물었어.

신탁의 대답은 충격적이었어.

“너는 저주받은 아이다. 너는 너의 아비를 죽이고 너의 어미와 아이를 낳을 것이다.”


부운 발은 그 말을 듣고 곧장 고향을 떠났어. 자신을 키워준 엄마 아빠를 그 이야기 속의 엄마 아빠라고 생각했거든.

떠나는 와중에 오이디푸스는 길에서 어떤 노인을 만나게 돼. 그런데 이 노인이 비키라면서 오이디푸스를 마구 때리는 거야. 오이디푸스는 화가 나서 그 노인을 죽여버렸어. 그 당시에는 싸우고 죽이는 일이 심각한 죄가 아니었데.


그렇게 죽이고 가던 길에 테베라는 길 안내표를 보고는 테베로 향했어. 근데 그 당시에 테베는 굉장히 힘든 지역이었어. 테베에는 스핑크스가 살았거든.

스핑크스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고 수수께끼를 내서 못 맞추면 잡아먹었어. 언니도 그 스핑크스 수수께끼 알지?


“어.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

(출처: 픽사 베이)


그래. 그거. 오이디푸스가 “그것은 사람이다(사람은 어렸을 때 네 다리로 기고, 자라서는 두 발로 걷고, 늙어서는 지팡이를 짚어 세 다리로 걷기 때문에)”라고 대답해서, 스핑크스는 물속에 몸을 던져 죽어버려.


스핑크스를 처치하다니. 마을 사람은 부운 발은 영웅으로 맞이해.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며칠 전에 왕이 어떤 외지 사람에게 살해를 당했데. 그래서 지금 왕자리가 비었다는 거야. 사람들은 왕비가 지금 혼자 있으니 우리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부은 발에게 부탁했어.

왕비가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부은 발은 왕비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테베에서 살게 돼.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마을에 역병이 돌았어. 부은 발은 이걸 어찌할지 해결 방안을 얻으러 예언자를 다시 찾아갔지.


예언자가 말했어.

“너의 전대 왕을 죽인 그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그 말을 들은 오이디푸스는 그 사람이 누군지 찾아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 그러다 왕비에게 이야기를 하나 듣게 돼.

예전에 우리가 아이를 낳았는데 예언자가 말하길 그 아들이 나의 왕을 죽이고 나와 결혼한다고 해서 아이를 죽여달라고 사주했다는 거야. 하지만 왕은 분명 아들이 죽인다고 했는데 그냥 길거리에서 모르는 이가 죽였다고 해서 마음을 놓고 있었다고 말하자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죽인 노인을 떠올리게 돼. 그제야 자신이 죽인 노인이 왕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거지.

오이디푸스는 그게 자신임을 알게 되고 왕비에게 사실을 알려줘.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왕비는 자살을 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너무 수치스럽고 죄스러워서 평생 앞을 보고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보지 못한 자신의 눈을 찔러버려. 그렇게 평생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거야.

근데 이거를 보는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왜 느끼냐면 오이디푸스가 만약에 그렇게 너무 힘든 상황이 와서도 죽음을 택했을 수도 있잖아. 자기의 눈을 찌르는 게 아니라. 그랬다면 이 작품은 4대 비극에 들만큼 엄청난 작품이 되지도 못했을뿐더러 관객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 거래. 하지만 오이디푸스 왕이 자신의 눈을 찌름으로 인해서 그 죄를 받아들이고 계속 살아가잖아. 거기서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거래. 그걸 사람들이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거야. 그냥 죽어버리는 게 아니라 죗값을 치르고 자신의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니까. 그때부터 카타르시스라는 단어가 생겨난 거래.




그 기나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마음에서 뿜어져 나오던 희열 하는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누군가를 한껏 비난하고 욕하다 보면 화가 풀렸다. 솔직히 험담이 재미있었던 것도 내 마음의 응어리가 풀려서 그랬다. 말로 그 사람을 욕보이면 그 사람이 내 말속에서 고통받는 기분이 들었다. 응당 받아야 할 대가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의 모습은 추악했다. 누군가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데 희열을 느끼다니. 또 누군가를 욕하다 보면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그 사람의 본심과 진실을 전부 이해할 수도 없는데 뭘 안다고 내가 지껄이겠는가. 못된 마음이 내 속에 있다는 것도 싫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못됨' 그 자체가 되는 기분도 싫었다. 그 마음의 모습이 추악하고 흉측해서 나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 그 마음을 고이 숨겨두었다.

그런데 이 막장 드라마 속에서 나온 비정상적인 사람들과 그 사람들에게 김치 싸대기를 때리는 모습들을 보면서 뒷담화를 할 때에 느꼈던 희열이 느껴졌다. 실존 인물이 아니라서 내가 아무리 스크린을 향해 욕을 내뱉어도 상처 받을 이는 없었다.


나는 몇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자신의 한을 풀려고 막장 드라마를 보는 아주머니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바로 이 풀리지 못한 한을 풀려고 막장 드라마를 보시는 거였다. 그 시간 동안 미워하는 마음을 분출하고, 정당하지 못했던 세상에게 분노하는 이 막장드라마는 당신 가슴에 또 하나의 통로였던 거다. 말은 다 못 해도 저 놈이 내가 미워하는 그 놈이고, 저 놈이 나에게 상처 준 그 놈이라는 기분을 느끼면서 캐릭터를 향해 욕을 하다 보면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씩 풀어졌던 거다.


그날부로 나는 내 마음속에서 발 딛지 못하고 머물지 못하던 추악한 마음들에게 방을 하나 내어주었다.

이름하여


"막장 드라마의 방.”


아마 그 속은 무대가 한 중앙에 자리하는 커다란 극장처럼 생겼을 테다. 갖가지 인물이 나오는 커다란 극장에는 수많은 좌석들이 자리해 있었다.

갈 곳 잃은 모든 추악한 마음들이 극장 안에 앉아 연극이 상영하길 기다렸다. 극장이 상영하면 갈 곳 잃고 방황하던 다른 마음들도 소리를 듣고 극장에 들어가 앉았다. 그리고는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멍멍이들을 찾아 불렀다.


"왈 왈 왈 왈 왈 왈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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