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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Oct 09. 2021

모르는 사람에게서 온 연락

"... 누구세요?"

  핸드폰을 바꾼 뒤로 자꾸만 모르는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전에 이 핸드폰을 쓰던 사람이 아주 마당발이었음이 틀림없다.

  메시지는 "형님"으로 시작했다.

  아니다. 링크로 시작하고 온 다음 메시지가 형님으로 시작한 거였다.

  "형님 잘 지내시지요?"

  형님? 누님이면 누님이었지 형님은 아닌데...

  나는 빨간 꽃 프로필의 카톡을 응시했다.

  열어서 확인해볼까. 말까. 그냥 차단을 해버릴까.

  머릿속에서는 보이스피싱을 당하는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내가 링크를 누른다. 해킹을 당한다.

  중국 유학을 끝내고 막 돌아왔을 때 보이스 피싱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시간이 꽤 되어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xx경찰서 사기범죄부 xxx경찰입니다. 이 모다 씨 맞으시죠?"

  "네? 네. 그런데 경찰서에서 왜..."

  "아니. 어제저녁에 체포되신 63세 xxx 씨께서 이 모다 씨의 카드를 무단 사용이 된 정황이 포착되어서 연락드렸어요. 지금 카드에 잔액이 얼마 있는지 확인해보시겠어요?"

  "네?..."

  진짜 경찰인지 확인해볼 생각 같은 건 해보지도 않았다. 그냥 경찰에게 전화가 온 게 얼떨떨하고 신기했다. 보이스 피싱범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는 남은 잔액이 얼마인지 확인해서 알려드렸다.

  "230원 있는데요...?"

  "아. 네 알겠습니다."

  뚜... 뚜... 뚜...

  다른 유학생 친구들도 이런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들도 나처럼 돈이 없었다. 보이스 피싱범은 우리의 가난함을 알아차리고 빠르게 내뺐다. 생각 없이 한 방 먹여준 셈이다.

  확인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예전의 나는 이 세상 사람이 모두 내 친구이고.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은 아직 알지 못한 내 또 하나의 친구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친구는 무슨 친구 다 각자 알아서 사는 거지라는 생각을 가진 어떤 부분이 썩어버린 반어른이었다.

  살면서 사람들에게 쓴 맛 신맛 매운맛 뜨거운 맛을 보았다. 별의 별맛을 다 맛보았다. 개중에는 애벌레도 섞여 있었고, 곰팡이도 섞여 있었다. 겁이 없어서 상처도 많이 입어왔는데, 전 직장의 상사라는 사람이 화룡정점을 찍어주었다.  



  그 사람은 내 옷도 머리도 화장도 싫다고 했다. 처음에는 너는 생머리를 하면 예쁠 것 같다고 했다. 그다음에는 옷이 너무 촌스러우니까 네 동료 ooo에게 좀 물어보고 쇼핑을 하라고 했다. 그런 말들은 조금씩 강도를 높여가면서 난 니가 싫으니까 너라는 존재를 좀 바꿔보라는 식으로 바뀌었다. 나중에는 말투까지 고치려들었다. 같은 "네."인데. 내가 "네"하고 대답하면 목소리가 흥겹다며 목소리를 깔고는 "내가 네. 네. 이렇게 말하라고 했지." 하며 내가 "네." 한 마디를 할 때마다 바늘로 쿡쿡 찔렀다.


  자존감에는 힘이 가해져도 부러지지도 않는 강철 상태, 조금만 힘을 줘도 뚝 하고 부러지는 나무형태, 여기저기로 굽힐 수 있는 고무 형태, 이렇게 세 가지 형태가 있다고 했다. 그중에서 고무 형태가 가장 건강하다고 했다.

  그때의 내 자존감으로 말하자만 힘을 주지도 않았는데 뚝뚝 부서져내리는 물에 젖은 나무 형태였다. 그 사람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뚝뚝 부러뜨렸다.


  그 인간 때문에 가게 된 심리치료센터에서 인간에 대한 피해의식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고, 사람 보는 눈을 기르는 건 좋지만 피해의식은 좀 달랐다. 더 나아가 이유 없이 사람들이 싫고 혐오감이 들었다.

  저 사람은 날 해치려 들 거라는 증거 부족의 믿음 위로 의심에 의심이 더해졌다. 피해의식이 생긴 뒤로는 되도론 본심과 진심과 진실을 숨겨왔다. 그걸 알게 되면 날 공격해 올 테니 그냥 입 다무는 쪽이 낫겠다 싶었다.

  사람만 보면 좋아서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에서 사람 할퀴는 고양이가 된 후로 일단 인간이면 의심부터 하고 봤다. 조심을 넘어서서 그들과 나 사이에 차단 버튼을 눌러버렸다.  


  나는 붉은 꽃을 배경으로 한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서 온 메시지를 쳐다보았다.


  궁금했다.

  왜 연락한 걸까. 뭘 말하려는 걸까. 뭔가를 말하려고 연락을 한 것 같은데.

  신종 보이스 피싱 같은 거면 어떻게 하지?


  추리를 시작해보자. 이미 핸드폰 번호를 쓴지도 4년이 되어갔다. 3년째부터 온 전화는 제발 전화 좀 주지 말라고 내가 사정사정해도 전화를 걸어오는 통신사 마케팅 전화였다. 전주인 이름을 부르며 새로 가입하시라고 말하는 그 끈질김에 나는 녹음된 "안녕하세"까지 기억하여 듣자마자 꺼버리는 고수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3년째부터 4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는 모르는 누군가에게 단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거다. 그 말은 이 번호로 연락을 준 빨강 프로필의 남자도 이 번호의 전주인에게 아주 오랜만에 연락한다는 소리였다.

  무슨 일로 연락을 끊고 살았을까. 갑자기 한 연락이면 뭔가 중요한 일인 건 아닐까?


  카톡을 열어보았다.

  확인한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니까.


  "형님 잘 계시지요 녹색에 ooo입니다

  아들 장가보낸다고 모바일 청첩장 하나 보냅니다"


  아 그렇지. 지금이 10월이니까 딱 다들 청첩장 보낼 때지. 그런데 녹색은 뭐지. 자신을 색깔로 표현한 건가. 그렇다면 나는 노랑이라 해주어야 할까.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오랜만에 연락했는데 알려는 드려야지 싶어 답변을 썼다.

  "저... 죄송하지만 형님분은 전화를 바꾸셨고 이건 다른 사람 핸드폰 번호입니다..."


  답변이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나는 쓸까 말까 쓸까 말까 길 잃은 손가락을 허공에서 휘적거리다 그냥 써서 보내버렸다.

  "아닙니다. 아드님분 장가가신다니 축하드려요. 아드님께서 행복한 결혼 생활하시길 바랍니다."


  그대로 대화가 끝난 줄 알았는데 아저씨께서 질문을 하신다.

  "혹시 형님 번호 아는지요"


  '...'


  "아니요 완전 연관도 없고 모르는 분입니다."

  "네."


  뭔가 이 사람이 내게 사기를 칠 것만 같은 피해적인 생각은 "네"라는 답과 함께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바로 차단을 하지 않고 답변을 하고 나니 이게 뭐라고 마음이 편했다. 그래도 이 사람은 내가 형님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니까.


  멍하니 턱을 괴고 생각에 빠졌다.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을 생각하자니 어느 가을날이 떠올랐다.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마음이 활짝 열렸던 그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 기억


  피해의식 같은 건 없었던 때였다. 상처는 받아도 언제나 사람들에게는 진심이었다.

  신촌에서 홀로 길을 걷는데 할머니 한분이 다가오셨다.

  "미안하지만 그 연세대학교 쪽에 결혼식장에 가야 되는데 어떻게 가야 되는지 알아요? 오늘 내 조카 손주가 결혼을 허는데 어떻게 가야 되는지를 모르겠어요."

  지금 같았으면 설명만 해드리고 내 갈길을 갔을 텐데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 결혼식장은 우리가 선 위치에서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설명하기엔 복잡한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할머니 제가 데려다 드릴까요? 어차피 저도 그쪽으로 가는 길이었거든요."

  할머니는 내 소매를 잡았다.

  "아이고. 그래도 돼?"

  "네. 그럼요. 이쪽으로 가면 돼요."

  앞장서서 걸어가는데 할머니가 말했다.

  "아이고. 이걸 고마워서 어째. 내가 뭐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에이. 아니에요. 저 진짜 이쪽으로 어차피 가야 됐어요. 집 가는 쪽이라 괜찮아요."

  "그럼 처녀. 와서 밥이라도 먹고 가. 거기 가서 맛있는 거 먹고 가."

  나는 몇 번 거절하다가, 짧게 고민하고 흔쾌히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할머니."


  우리가 도착한 결혼식장에서는 이미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식장 옆에는 뷔페가 자리했고 앞에는 할머니 친지분들이 서계셨다. 한 남성분이 밝게 웃으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아이고. 고모님 이제 오셔요?"

  "그래. 그래. 나 손녀랑 같이 왔어. 밥 한 끼 먹고 갈 거야."

  '응?'

  나는 끼긱거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할머니를 한번 돌아보고 아저씨를 한번 돌아보았다. 굳이 그런 말을 안 하셔도 되었을 것 같은데 급기야 손녀가 된 내 심장은 거짓말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며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고모 손녀 중에 내가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저씨는 호탕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아이. 내 손녀야. 손녀. 그. 저. 멀리서 왔어."

  '...'

  '???'

  '!!!'


  '아...'

  그냥 거절하고 갈 걸 그랬다며 후회가 되었다. 얼굴이 새파래지고 몸이 돌처럼 굳어갔다. 마음도 끼긱거렸다.

  끼긱- 끼긱-

  발뺌하기도 늦은 듯하여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아저씨와 할머니를 번갈아보느라 내 목에서도 자꾸 끼긱거리는 소리가 났다. 두 분께서는 실랑이를 벌이다 할머니는 결국 사실을 실토하셨다.

  "실은 내가 길을 잃었는데 아가씨가 나 도와줘서 여기까지 온 거야. 내가 고마워서 밥 한 끼만 대접하고 싶었어."

  "에이 고모. 그렇게 고마우신 분을 뭘 손녀라고 까지 해~ 고모가 초대한 사람이면 누구나 올 수 있지 뭘 그래~"

  아저씨는 내 손을 잡으며 악수했다. 고맙다고 하시면서 뷔페까지 에스코트해주셨다.

  "맘껏 먹어요." 아저씨가 말했다.

  나는 접시에 연어 몇 점 김밥 몇 점을 집어와서 모니터에 나오는 결혼식을 보며 밥을 먹었다. 솔직히 불편했는데, 솔직히 맛있었다. 아저씨는 내게 명함을 내미셨다. 검도를 하시는 분이었다.


  아저씨는 나를 칭찬하시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나자며 허허 웃음을 지으셨다.

  지금 돌아봐 생각해보면. 참 재밌는 경험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의 조카 손주의 결혼식장에서 밥을 먹는 일은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니까.

  밖으로 나가는 마음의 문이 꽉 닫혀버린 지금에 와서 다시 그때를 생각해보면. 그럼에도 당신 앞에서 진심이었고 질실되었던 그때의 내 세상은 지금보다 아름다웠다.


  어쩌면.

  아주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올 수 있는 작은 문틈 정도는 내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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