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나누어 쓰는 일

나의 룸메이트

by 모다

누군가와 함께 공간을 나누어 쓴다는 일은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공간에 초대되고,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나의 공간으로 초대한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대학교가 끝나갈 무렵에 새로운 룸메이트가 생겼다. 아니. 그 애에게 새로운 룸메이트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 나는 내가 사는 방에서 그 애가 살던 방으로 짐을 옮겼다.


3 호동에 사는 그 애는 열이 참 많았다. 3 호동에 사는 나는 몸이 참 차가웠다. 여름이 되면 우리는 늘 에어컨을 키네 마네 논쟁을 벌였다. 틀었다 껐다 틀었다 껐다를 반복했다. 우리는 서로 많이 달랐다.

열이 많던 그 애는 귀여운 동영상을 보면 꺄르륵 웃었다. 귀여움에 늘 어쩔 줄 몰라하며 나에게 그 영상들을 보여줬다. 그런 친구를 처음 만나봤다. 그 애는 동영상이 귀엽지 않냐며 온 몸을 쪼그라뜨렸다 폈고, 나는 무표정으로 곁눈질을 하며 대충 보고 대답했다. "응. 그렇네." 하고는 다시 공부를 했다.


언젠가 그 애가 책을 읽으며 말했다. 내가 평생 책을 잘 안 읽는데 너가 맨날 방에서 뭘 자꾸 하니까 나도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그때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언젠가 귀여운 동물 동영상을 동생에게 보여주며 알게 되었다. 내가 하는 행동을 네가 했던 것처럼. 네가 하던 행동을 내가 하고 있다는 걸. 내가 동물 동영상을 보며 어쩔 줄 몰라 꺄르륵 소리를 지르면 동생은 무표정으로 보여준 영상을 보며 "응. 그렇네." 하며 대충 대답했다. 그때마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고, 그때마다 네 생각이 났다.


언젠가 에어컨 문제를 엄마에게 얘기했더니 엄마가 판결을 내려주었다.


"추운 사람이 더운 사람 맞춰주는 게 맞지. 추운 사람은 자기가 알아서 옷이라도 챙겨 입을 수라도 있지. 더운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땀 흘리는 거 말고는."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피부를 벗었다 입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때 알았다면 좋았으련만. 너무 늦게 알게 된 명쾌한 해답이었다.


가끔씩 그때가 떠오르고는 한다. 특히 귀여운 동물 동영상을 볼 때. 언제든 아침밥 먹을까 하면 함께 나가고, 산책할까 하면 같이 길을 걷고, 기분이 꿀꿀한데 노래방 갈래 하면 그러자 했던 우리의 그때를 아주 가끔씩 떠올리고는 한다. 너와 지내며 나도 모르는 새에 서로를 닮아가는 일이 뭔지 알게 되었다.

앞으로 언제쯤 너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번쯤은 너를 만나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때 에어컨 마음대로 틀지 못하게 해서 정말이지 미안하다고도 말해주고 싶다. 또... 또...


네가 보고 싶은 어느 날에, 연락이 닿지 않게 된 어느 날에, 나는 너에 대해 글을 쓰며 공간을 나눠 쓴다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공간을 나눠 쓴다는 말은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공간에 초대되고,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나의 공간으로 초대한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Ps- 그랬던 네가 보고 싶고는 해서 언젠가 훗날 만나게 된다면 대학교 때의 어느 날처럼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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