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나에게 소중한 물건

by 모다

모임이 끝나갈 때쯤 주최자님은 숙제를 하나 내주셨다.


“다음 시간까지 나에게 소중한 물건 세 가지를 찾아서 가져와주세요.”


나한테 소중한 물건이 뭐가 있을까. 예전에 살던 집과 마트 사이에 작은 아기용품점이 있었다. 매번 그 길을 지나쳐오면서 저 양말 혜인이한테 입히면 좋을 텐데 하며 디스플레이된 아이 양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돈을 받아쓰는 입장에서 양말을 사겠다고 하면 현미가 길길이 날뛸게 뻔했다. 너는 돈 벌지 않으면서 뭘 그리 사대기만 하느냐고 바가지 긁힐 순간이 뻔히 내다보였다. 집에서는 숨이 막혀서 근처 교회에 잠시 울며 기도를 했더라. 현미가 요즘 스트레스가 심해서 자꾸만 저를 때리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안 좋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제발 우리 가족 행복하도록 하느님께서 인도하여주세요 기도를 하다가 성경의 한 구절 읽으면 마음이 편해지겠지하며 성경책을 펼쳤다. 펼친 성경책 사이에 만원 세 장이 끼어 있었다. 그 만 원짜리들을 보자니 혜인이가 신으면 예쁠 곰돌이 양말과 검은 아기 신발이 생각났다.


이게 뭘까. 내 기도를 듣고 주님이 주신 걸까. 이걸 내가 가져가도 되는 걸까. 이걸 둔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이 돈을 여기 둔 걸까.


멀찍이 떨어져 앉은 사람이 두어 명 있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내 쪽으로 다가오거나 성경책을 가져가려 하지 않았다. 성경책을 살펴보니 뒷 커버에 교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누가 다시 가지러 올 모양은 아닌가 보다. 주섬주섬 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었다. 여직 그 양말과 신발을 장롱 코트 주머니에 숨겨 보관해왔다. 소중한 물건 세 가지중 두 가지는 그 양말과 신발이었다.


남은 하나를 생각하며 숨을 들이켜자 바람에 물기가 섞여 있었다. 공기가 축축했다. 비가 오려나 생각하는데 누가 말했다.


"비가 올 거야. 그러니 어서 집으로 가."


소리였다. 또 소리가 들렸다. 마트에 잠시 들를까 말까 고민하는 나에게 소리가 말했다.


"집으로 가. 비가 올 거야."


나는 한참을 마트 앞에 서서 고민했다. 오렌지 주스 한 잔 마시고 싶은데. 그 앞에 서서 고민하다 발길을 돌렸다. 우산이 없었다. 하늘에 뜬 먹구름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괜히 재촉했다.


처음 소리가 들린 때도 혜인이 양말을 사줄 즈음이었다. 스물 때, 혜인이가 갓 돌 지났을 때였다. 아이 기저귀를 구겨 버리려는데 엄마 소리가 들렸다.

“비닐에 잘 싸서 버려야지.”


나는 웃었다.

‘어떻게 이제는 따로 사는데도 엄마 소리가 들리네’


엄마가 보고 싶어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더라. 어느 날부터 누군가 자꾸만 내게 말을 걸었다. 여성의 목소리 같기도 남성의 목소리 같기도 한 그 중성적인 소리를 가진 누군가가 자꾸만 내게 말을 걸었다. 너 누구냐고 물어보면 가끔 대답도 해준다. 나를 모르냐는 듯이 이상한 투로 대답하기는 해도 나에게 말해주었다.


“난 너야. 왜 그걸 아직도 몰라.”


네가 정말 나일까. 그렇다면 왜 매번 너는 내가 원하지 않는 걸 원하곤 하는 걸까. 왜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를 설득하는 걸까.

아주 오랫동안 이 소리의 정체를 파헤쳐왔다. 공포나 두려움이 소리가 되어 들리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또 그건 아니었다. 꼭 두려우니까 이래야 할 것 같다 저래야 할 것 같다 하는 소리만 들리는 게 아니었다. 소리는 촉이 좋았다.

이쪽 줄에 서고 싶은데 소리는 저쪽 줄에 서라고 한다. 이게 사고 싶은데 저걸 사라고 한다. 심지어 하기 싫다 하면 설득을 한다. 너에게 의외의 행운이 생길 거라면서. 살살 꼬신다. 그래서 소리 말대로 해보면 이상한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서 할인을 받거나 좀 더 친절한 점원 덕에 할인할 방법을 찾아 싸게 사거나, 사라고 했던 로션이 원플러스 원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원플러스 원 스티커도 안 붙어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하다. 하나더 챙겨 가라는 게 그래서 그랬구나 되려 내가 소리를 이해하고는 한다.

사실 거의 그랬다. 머리가 좋은지 촉이 좋은지 소리는 가끔은 앞일을 예견해주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소름끼치게 들어맞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 알게 된 친구 놈이 혹시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냐며 자기가 예약할 테니 가보자더라. 근데 무당이 하는 말이 나보고 신수가 사납단다. 남들 기에 눌려서 하고 싶은 일은 못하는 사주더란다. 무당이 말하길 45세에 죽거나 큰 사고를 겪는다 조심하라더라.


나는 그 말에 기분이 상해서 한참 동안 두려워했다. 그래도 45세는 멀었다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위로했다. 그때는 그런 위로가 통했다. 스무 살이란 어린 나이여서.


이번 연도에 나는 그 무당이 말한 신수 사나운 45세가 되었다. 지금도 한결같이 내 마음을 갈구는 그 말에 친구도 더는 ‘무당’의 '무'자 소리 들리는 근처에 발도 딛지 않는다 했다. 친구 놈은 다 쓸데없는 말이라며 듣지 말라고 했으나 남에 기에 눌려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말은 저주가 되어 현실로 이루어졌다. 어릴 적도 그랬다. 엄마가 참 강요를 많이 했다.


학창 시절에 나는 공부를 못했다. 엄마 꿈은 아들 덕 한번 보는 거였다. 어디서 주워들으셨는가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과 옷 하는 말 가는 곳을 모두 관리했다. 할 수 있는게 공부밖에 없으니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성적이 확확 올라갔다. 지겹고 지겨운 시간은 미세한 차이만 먼지처럼 떠다닐 뿐 매일과 같이 공허했다. 그러다 독서실에 만난 게 그녀였다.


호배 오빠 호배 오빠 거리던 그 애는 나보다 한 살 어렸다. 근처 여고를 다녔고 야리야리한 체구에 하늘거리는 옷을 좋아하는 그 애를 참 좋아라했다. 지금은 살면서 하는 가장 큰 후회 중 하나가 널 만난 일이었다 생각을 하다가 혜인이 생각에 마음을 돌리고 비우길 반복했다.

아이를 배었다는 말에 아빠는 걸레질할 때 쓰던 나무막대를 집어 들었다. 대학교 합격 통지서를 들이밀며 같은 말을 무한 반복했다. 마치 카세트에 테이프 필름이 끼어들어서 같은 구간을 반복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여자애 인생 족치고 어떻게 살 거냐. 이런 자식 놈 한테는 돈 한 푼도 못 대준다. 부끄럽지도 않냐. 얼굴은 어떻게 들고 다닐 거냐. 때리고 때렸다. 엄마는 팔짱을 낀 채로 소파에 앉아 그런 우리를 쳐다봤다.


부모님은 상견례 때 알게 되었다. 장가 잘 간 아들내미 덕을 톡톡 보겠구나 하는 걸. 현미 집안은 소위 빵빵한 금수저 집안이았다. 만날 때도 몰랐다. 그 애가 이 정도로 잘 사는 집 애라는 걸. 독서실에 통 얼굴을 안 비쳐서 물으니 학원 가기 싫을 때 오빠 보러 가끔 오는 거랬다.


솔직히 안심이었다. 그렇게 공부를 시킨 부모님께서는 부잣집에 장가갔으니 굳이 대학은 가지 않아도 되겠다며 대신 가정에 집중하라며 나를 놓아주었다. 더는 이 지겨운 강요를 받지 않아도 된다니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누가 묻는다면.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얼 할 거냐 묻는다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대학에 갈 거라고 할 테다. 다시 돌아간다면 더 큰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내가 처한 현실이 우물 속의 세상임을 깨달을 거라 대답할 거다. 떨떠름한 생각을 해봐야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과거였 다만 가끔씩 그때로 돌아가는 상상을 했다.

그쪽 부모님은 귀한 딸 데려가는 사위가 비위가 상하여 거슬리다는 행동거지였으나 그래도 정석대로 조용히 결혼을 시키고 집을 한채 얻어주셨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나 뒤를 돌아보니 나는 경력단절 전업주부 남성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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