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저는 가정 폭력 피해자입니다.

by 모다

니가 여성스러워서 그런 게 아니냐고들 한다. 부인한테 맞았다고 하면 믿질 않는다. 몸에 난 칼자국과 시퍼런 멍자국을 보여줘야만 조금 납득 아닌 납득을 할 뿐이다. 그래도 너는 안 때렸지? 하며 되묻는 이들도 있다. 여자는 때리면 안 된다는 말처럼 난 단 한 번도 손을 든 적이 없다. 남자는 눈물 흘리면 안된다는 어느 고전 속 이야기처럼 남자는 때리면 안 된다는 말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말은 어디에도 없다.

난 여자에게 맞는다. 솔직히 처음엔 여자한테 맞는다는 게 창피했다. 친구들에게 말해봤자 씨알도 안 먹힐 말이었다.

"야 이 미친놈아. 니가 뭘 했길래 재수씨가 널 때리냐?"

친구 놈은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때는 그저 기우겠거니 했다. 하지만 손찌검은 기우가 아닌 전조현상이었다. 연애할 때도 그녀는 종종 나를 때렸다. 다만 애교를 섞어서 귀엽게 쳤다. 하하 자기야 비음 섞인 소리로 간드러지게 이야기하면서.

결혼하고 나니까 툭툭 치던 부위가 어깨에서 목으로 변했다. 가끔은 손가락을 튕겨가며 때리기도 했고, 젖꼭지를 꼬집기도 했다. 화가 많이 나면 뺨을 때렸다. 호칭도 호배 오빠에서 안호구쌍놈으로 바뀌어 있었다.


"왜 헤어지지 않았어요?" 묻는다면 할만한 대답이 없다. 이유가 너무 많은 것 같다가도 아무 이유가 없는 것도 같다. 스스로 물어도 아무리 이유를 찾아봐도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단 말 밖엔 마땅한 대답이 없다. 다행히도 주최자님은 그런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다만 각자의 취미가 뭔지 물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대처하는지, 몸에서 어떤 증상이 일어나는지 물었다.


사람들은 이모저모 살피는 눈으로 말했다.

"저는 스트레스받으면 그냥 뭘 계속 먹어요."

"저는 얼굴에서 뭐가 나더라고요..."


"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리가 들려요."

나는 내가 그렇게 말하는 걸 상상해보았다. 하지만 곧이어 소리가 들렸다.

"하지 마."


"네? 뭐라고 하셨어요?"

"아... 아니에요. 저는..."

분명 소리가 들린다고 하면 사람들이 날 두려워하겠지. 나는 내뱉고 싶었던 말을 다시 꿀꺽 삼켰다.

"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노래를 불러요..."

"어떤 노래를 부르세요?"

"...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성악 같은 거... 그냥 소리 지르고 싶을 때만 가끔씩 취미로요..."


"잘했어."

소리가 말했다.

나는 마른 입가에 침을 발랐다. 되도록 소리를 무시하면서 다음 사람의 말에 집중했다.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잘 숨겨온 비밀을 굳이 밝혀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생각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말을 되뇌면서.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래야 할 필요는 없어."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래야 할 필요는 없어."


그랬다. 난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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