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야근 따위는 퇴사의 결정적 이유였던 적은 없었다.
퇴사를 결심하게 하는 것들
누군가를 매니징 한다는 사람들, 혹은 대표한다는 사람들의 흔한 오해
아무나 데려다 놔도 다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저 사람(직원/팀원)이 우리 회사 아니면 어디를 가겠어.
우리 회사 정도면 다니고 싶은 회사다.
자신(직원/팀원)의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다.
저 사람(직원/팀원)은 참고 견딜 것이다.
이 외에도 더 있는 듯 하지만 여기까지만 써보기로 하자. 그렇다. 나는 저런 오해를 하는 안타까운 상사나 대표들을 종종 만나게 되곤 하였다. 물론 그렇지 않은 스마트하고, 멋진 상사나 대표님들도 계시지만, 아주 간혹 저런 안타까운 분들을 만나면 나는 어김없이 퇴사를 결심하곤 했다.
나는 '야근' 자체만으로는 그다지 퇴사를 결심해본 적은 없었다. 혹시라도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빠르게 퇴근하려면 무엇을 개선하면 되는지 찾아보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던 덕분이다. 물론 이 역시 '정도'라는 것이 있고, 절대적인 업무량이 지나치게 많아서 '야근 지속' 상태가 되다 보면 예외일 수는 있다. 일반적으로 9시 출근이라 가정했을 때, 21시 전후로 퇴근하는 것쯤은 'I'm Fine, Thank you'였던 것이다. 이는 내 업무적인 특성도 어느 정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광고 대행사에서 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한 일이 아니었고, 하나의 기업, 하나의 브랜드만 담당할 수도 없는 상황인 데다 동료들과 협업하거나 갑자기 급하게 해야 하는 업무가 자주 생기곤 했으니까. 더군다나 진급이 빠른 업계 특성상 내 업무만 잘한다고 일을 잘하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업무를 가르치고, 그들이 잘 적응할 수 있게 서포트하는 것도 내 일이었기 때문에 야근은 일상이 되곤 했다.
야근이 일상이라는 건 슬픈 일이지만, 내가 선택한 일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으므로 그다지 큰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것은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될 때였다. 바로 부당한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거나 당연해지는 순간, 혹은 상사 또는 임원진들과의 불화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일하는 것과 개인적인 감정은 별개라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나 역시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예민함이 폭발해 일을 함께 하는 모두에게 악영향을 주었다. 상사 또는 임원진들과의 신뢰가 두텁다면 그런 상황이 발생해도 조만간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부당한 일이나 불화가 지속되면 함께 일하는 모두가 불안과 스트레스의 무한궤도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부당한 업무량, 부당한 사칙, 부당한 관계, 부당한 사건 등등.. 이를 테면 아프거나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조차 회사에서 어떠한 배려도 해줄 수 없는 상황(조퇴 또는 반차를 쓸 수 없는 상황, 또는 그렇게 처리하고 퇴근하려고 하는데 업무 관련해서 퇴근을 막는 경우), 나와 동료들이 공들여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빼앗기는 경우, 또는 다른 팀의 (망해가는, 맡기 싫은 이유가 있는) 프로젝트를 갑자기 떠안게 되는 경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일만 더 키울 뿐 진행을 방해하는 동료 또는 상사와의 코웍,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 발령 등이 발생하게 되었을 때 상사 또는 임원진들과 충분히 상의를 거친 후에 내가 이를 납득하게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러한 일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상사 또는 임원진들과 불화가 생기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들 때 나는 회사를 떠날 결심을 했다.
내 역량이 부족한 경우나 어떠한 불만이나 스트레스가 계속되는 경우, 대부분 좋은 상사 또는 임원들이라면 이를 듣고 업무를 재분담하거나 함께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함께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들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 또한 배우는 것들이 있었고, 힘든 시기를 함께 지나오며 회사와 하는 일에 더욱 애정을 가지곤 했다. 그러나 문제는 내 탓이고 성과는 회사 덕이며, 부당한 것이 부당하지 않다고 말을 가로막는 순간 도저히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한두 번의 문제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부당한 문제라도 나를 설득하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기울이는 회사라면 납득하고 내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회사에서 어떠한 책임도 지기 싫어지는 순간이 오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고 만다.
회사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거 아닌가?
내가 너무 회사에 많은 것을 바라는 거 아닌가? 상사나 동료들, 동종 업계 선배나 주변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하곤 한다. 내가 지나치게 생각하진 않았는지, 후에라도 객관적으로 상황을 돌아보려고 노력한다, 나름대로 아주 열심히.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더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까지 야근하는 것도 일상이고, 회사 시스템은 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로 직원들을 압박하는가 하면, 합이 잘 맞았던 동료들은 전부 퇴사를 하거나 각기 다른 팀으로 발령이 났다. 처음 맡게 되는 일도 알아서 잘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이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부분),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팀의 업무가 결정되거나 프로젝트를 빼앗기는 일(이건 절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생겼다. 그로 인해 자존감은 바닥을 치게 되었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는 얼마 전 연차를 내고 지난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눈물이 났다. 그제야 많은 것들이 보였다. 내가 왜 새벽까지 일하는 것을 감수했을까. 연봉도 낮고, 거리도 멀고, 복지가 엄청나게 좋았던 것도 아닌데, 대체 왜? 건강은 건강대로 나빠졌고, 생활 역시 엉망진창이 되었다. 밤늦게 퇴근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쓰러져 자는 것이 전부였다. 주말에도 부족한 잠을 청하기 바빴고, 친구든 애인이든 누군가를 만나는 일 역시 피곤하다고 느껴졌다. 남은 건 무기력함뿐이었다.
어떻게든 바꿔야만 한다. 지금 회사를 다니며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No, 희망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이제 와서 보니 내가 왜 이러한 선택을 했는지, 왜 참고만 살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이다. 앞으로는 좀 더 나를 위해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나를 위한 시간이나 물질이 어느 타협점을 찾을 수 있도록 충족될 때, 일에도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알고 있다. 이전 직장들의 경험을 통해 나에게 잘 맞는 일이 무엇인지, 어떤 환경에서 일을 할 때 더 잘할 수 있게 되는지 알고 있다. 지금 나는 나를 위한 선택을 할 때이고, 그래서 신중하게 퇴사와 이직을 준비하고자 한다.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은 것도 사실.. 그래서 올해 안에 이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직을 준비하는 모든 직장인들, 나 포함 모두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정말 고생 많았다. 나를 먹여 살리느라, 일을 해내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마침표가 아닌 쉼표다. 그대들도 그랬으리라. 하지만 나를 포기하면서까지 참을 필요는 없다는 게 우리의 결론 아닌가? 어딘가, 우리를 잃지 않고, 우리로서 일을 하는 보람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꾸준히 응원하겠다.
+ 덧)
이런 와중에 상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타이밍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