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중반, 스리랑카인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스리랑카. 외국인 근로자였습니다. 추운 겨울이었어요.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는 전화에 냉큼 달려갔습니다. 토요일 밤에 함께 밥을 먹고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을 봤습니다. 당시 전 영어를 못해 어색하면 어쩌나 염려 했습니다. 하지만 스리랑카 친구가 한국말을 무척 잘했습니다. 집에 가보니 한국영화 DVD가 많았습니다. 지금처럼 중고물품교환 앱도 없었기에 고스란히 정가를 주고 샀다더군요. 사회학을 전공한 친구는 우리나라 영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저도 다 보지 못한 좋은 영화들을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친구는 제가 머리를 감을 수 있도록 주전자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뜨거운 물을 준비해 줬습니다. 게다가 찬물을 적당히 섞고 뿌려주기까지 해서 따뜻하게 머리를 감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방의 구조, 방의 체취, 온기가 잊히질 않네요.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스리랑카 친구에게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프레스작업을 하던 중 팔이 심하게 다쳤습니다. 소식을 듣고 찾아갔는데 한쪽 팔이 붉게 물든 붕대에 둘려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는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좋은 처우를 받지 못하면서도 꿋꿋이 버텼는데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하고 그만 떠난 것입니다. 저와 만나기 어려워 지인에게 자기 이메일을 적어줬는데 글쎄, 그분이 이메일 주소를 잃어버려 연락할 길이 없었습니다. 벌써 20년 전 일이 되었네요. 그 친구의 이름은 케니입니다.
작년에 필리핀 친구를 만났습니다. 국적에서 바로 외국인 근로자라는 사실을 느끼셨지요. 이 친구의 이름은 말론이며 두 딸의 아빠이기도 합니다. 작년 4월에 만난 이후 자주 얼굴을 봅니다. 마케팅을 전공했고 호텔과 개인 드라이버로 일하다가 작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참 착하고 맘이 좋고 스마트한 친구입니다.
음식점이나 카페에 가면 자주 자기 카드를 내밀며 계산하겠다고 말합니다. 물론 전부 제가 계산했지만 그도 어엿한 성인인데 입장을 너무 무시했나 싶어 한 차례 그의 카드로 커피를 마신 적이 있습니다. 직업병 때문인지 말끝마다 Sir, Thank you, It’s up to you를 입에 달고 삽니다. 그런 말론에게 재미있게 농담합니다. “말론, 식당에서 직원이 뭐 주문하겠냐고 물어도 It’s up to you 라고 하는거 아냐? Anything else? 라고 물어도 재차 It’s up to you하는거 아니냐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안타까워 해준 조언입니다.
최근에 말론은 향수병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타향살이를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힘을 줄까? 고민하다가 이번 설날을 맞아 제 아들과 말론과 함께 경복궁, 인사동, 익선동, 광화문 교보문고에 다녀왔습니다.
경복궁에 들어서자 그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었습니다. 구석구석 누비며 하나하나 설명해줬습니다. 다음으로 인사동에 가서는 명동칼국수에서 칼국수와 만두를 먹었습니다. 식당 밖을 나오는데 꿀타래 파는 곳이 보여 갔더니 직원분이 영어로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주셔서 말론이 좋아했습니다. 기념품도 잊지 않고 선물했습니다.
(직원분! 참 멋지고 고마웠어요~)
다음 코스로 익선동을 갔습니다. 사실 사케동을 먹고 싶었는데 호호식당 익선이 휴무여서 한옥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이고는 바로 교보문고로 향했습니다. 매장의 크기에 놀란 말론에게 “말론, 네가 필리핀에 돌아가면 반드시 두 딸을 위해 많은 책을 사줘야 해. 네가 가르치지 못하는 것을 책이 가르쳐줄 거야.”라고 부탁했습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녀 다리가 아팠지만 알찬 서울 구경을 마치고 솥뚜껑 삼겹살로 저녁을 마무리했습니다. 원래 소식하는 친구인데 치즈 볶음밥까지 맛있게 잘 먹어서 기분 좋았습니다. 동치미를 처음 먹어본 말론은 얼굴이 구겨졌지만 두 사발이나 드링킹 하는 적응속도를 보여줬습니다.
(동치미 무를 먹은 후 표정이...)
케니와 나누지 못한 시간을 말론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근무가 결코 쉽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그래서 자주 힘들어 하지만 그냥 응원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혹여나 한국생활로 주름진 마음을 빳빳하게 펴준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