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보면 이혼과 학대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내 가족의 경험과 더불어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가진다.
결혼을 할 때 부부는 우리 서로 평생동안 잘살아보자 라는 마음으로 시작을 한다. 하지만 그 다짐은 때때로 흔들리기도 하고 시련을 통해 더 강해지기도 하고 더 약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최후의 방법인 이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혼을 할 때 두 사람만 있는 경우라면 서로의 마음의 상처만 치유하면 되지만, 아이가 있는 경우는 더 복잡한 상황들을 해결해야 하게 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거치면서 부부가 최후에 선택하는 것이 이혼인데 그것을 결정하기 까지는 많은 사건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사건들 중 유력한 후보들 중 하나는 자녀의 출생이 된다. 자녀의 출생이 부부에게 좋은 일이 될 수 도 있고, 더 나쁜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바로 남편의 태도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아내의 말을 잘 들어주고 마음을 잘 알아주었던 남편이라면 아이의 출생 후에도 태도는 비슷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이 부부의 사이는 더 좋아지기 마련이다.
반면에 아내에게 말을 함부로 하고 아내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비난하고 무시하는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서도 그 습관들을 고치지 못한다. 그래서 여전히 자기 중심적인 말과 행동으로 주양육자인 아내의 마음을 불편하고 힘들게 하고 이는 아이에게 그대로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최후의 상황인 이혼이 되는 경우에는 자기 중심적인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 그대로 가게 된다. 그래서 이혼 가정의 경우 아빠가 아이를 다시 재학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학대의 시초는 부모의 원가족에게로 흘러간다.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들을 보면 자신이 어릴 때 신체적인 학대가 아니더라도 정서적인 방치나 학대, 억압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이에게로의 학대의 시초는 자신의 원가족에서의 자신의 경험이며, 그 경험으부터의 성찰이나 깨달음을 얻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혼과 학대는 대물림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대물림은 스스로가 자신의 부모로부터 심리적인 독립을 하지 못해서이다. 심리적 독립이란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 좋은 점과 나쁜 점 둘 다를 알고난 후, 좋은 점은 ‘나도 우리 부모 같은 부모가 되어야 겠다’ 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그리고 나쁜 점에 대해서는 ‘내가 우리 부모 때문에 많이 힘들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우리 부모가 그런 것은 그것 때문이었구나’ 혹은 ‘그럴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나는 저러지 말아야 되겠다’ 라고 스스로 다짐후 노력하고 행동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부모에 대한 이러한 점들을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리고 당사자인 부모에게도 말하기 힘이 든다. 그래서 그러한 기억들과 감정, 생각들을 말하고 깨달은 후 성찰을 통해 제대로 된 부모가 되기 위해 사람들은 상담실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가끔씩 나에게 묻는다. 선생님은 독립이 잘 되어 있냐고 그리고 사람들의 힘든 얘기들을 들으면 힘들지 않냐고 말이다. 그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다시 다짐하기도 하는 내 마음을 알아챈다. 그리고 때로는 표현하기도 한다.
독립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며 나 또한 독립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가 있다고..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의지하고 싶어하는 아이가 살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고... 그리고 어른이 되는 것은 바로 내가 부모로부터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는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고... 또한 결혼한 후의 부부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나의 정신건강에 좋음을 알고 있으며 현재 나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이다.
더불어 사는게 인간이고 또한 우리 모두이지만
때로는 혼자일 때가 필요한 시점이 있다.
그 때가 바로 독립의 시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타의가 아닌 자의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지금까지 익숙했던 자신을 떠나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새로운 나를 발견하여 새로이 태어나게 하는 것이 바로 독립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