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등교시키고 천장이 높은 이곳으로 왔다.
이곳에 와서 커피와 조각 케이크를 시킨 후 쟁반을 들고 자리를 잡으려 하고 있다.
자리를 잡고 앉는데 테이블이 흔들린다.
내가 먹으려던 커피잔 속의 커피가 흘러넘친다. 테이블이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정되지 못할 때 모든 것은 흔들리고 넘치게 된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리라.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진다.
그런데 화장실로 가려면 노트북과 폰, 커피가 담긴 쟁반, 가방까지 들고
화장실이 있는 2층까지 다시 갔다 다시 짐을 싸 들고 1층으로 내려와야 한다.
왜냐하면 폰과 노트북을 충전하는 콘센트가 1층에만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처음에 여기에 와서 2층까지 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2층에 갔었을 때 화장실에 다녀왔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내 모습이 꼭 인생 같다.
여러 가지의 선택을 해야 하는 우리네 인생 같다.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일상이 합쳐져 인생이 되니까 말이다.
또 오늘 아침 다른 곳이 아닌 천장이 높은 이곳을 선택하여 온 것도 나의 선택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곳도 다 만족스럽지는 않다. 빵빵하게 틀어져 있는 에어컨은 내 몸을 차갑게 하고,
사람들의 북적이는 소리는 내 집중력을 흩트린다. 그래서 이어폰을 끼고 글을 쓴다.
나를 복잡하게 하는 그것들로부터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
노력하게 되는 지점이다.
올해 나는 4학년 8반이다. 48살이라는 얘기이다.
초등학생이라면 이제 중학년, 인생이라면 예전에는 삶에 대한 정리를 하는 시기인데
평균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시점이 되고 있다.
아... 두 번째 인생... 한 번도 만만찮았던 것 같은데 다시 살아라..
곤혹스럽기도 하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다행이기도 하다...
다시 산다라....
32살에 친구의 소개로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1년 뒤 결혼을 하고 1년 뒤 아이가 태어났다.
소개해 준 친구와는 손절이 되었다. 안 맞았다 보다. 그만큼 내가 선택한 사람과도 맞지 않았으리라.
어쩌면 이미 나는 알고 있었음에도 다른 돌파구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 자신을 믿었어야 하는데 그게 잘되지 않았나 보다.
그러고는
그저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살았다.
하지만 결혼의 과정도 출산의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엄마가 있었다.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엄마가 있었다.
그래서 그거 하나 믿고 아이가 어릴 때인 내 나이 37살에 다시 대학원에 진학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학교가 쉼터였다. 공부를 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의 말로는 놀러 간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돈이 투자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숨 쉴 곳이 필요했고, 그저 나로서 지내고 싶었는데 그게 욕심이었나 보다.
대가 없이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나 보다.
학교에서 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공부로서 얻어야 할 성과는 해내지 못하였다. 성과를 해내지 못하면 돌아오는 건 타박이다.
가족이라고 봐주는 건 없었다. 상대가 현실에 더 충실한 사람일수록 봐주는 건 더 없는 법이다.
그 사람만의 생각이 굳건한 법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학교는 안전한 곳이었고 숨을 쉴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마음이 빚이 생겼다. 그래서 나중에 벌게 되는 돈으로 등록금을 잘 갚았다.
아주 잘 한일이었다.
학교를 수료한 뒤 우울증이 찾아왔다.
약을 복용하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집에서 티브이만 보았다.
몸도 마음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거기에서 나오고 싶어졌다. 교육용 비디오를 보면서 필기를 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빛이 있는 곳,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 곳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일을 통해 나아졌다.
아이가 커갔다. 어린이집,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에 갔다.
나의 교육관이, 내가 아이를 키우고 싶은 환경이 있었다.
하지만 교육관도 철학도, 환경도 이겨낸 것이 돈의 힘이었다.
돈을 누가 관리하느냐에 따라 결정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아이의 일이기에 나는 굴복하기보다는 협상을 선택했다.
내가 원하는 것의 반을 포기하고 반을 취득했다.
아이와의 일상은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일을 시작했다. 계약직 일이었다. 끝이 있는 일이었다.
그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
그래서 무리를 했다. 그러다 보니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집에서의 관계는 돈을 주면 해결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2년 계약직 퇴직 후 적금과 퇴직금을 집 대출금을 갚기 위한 돈으로 주면서 해결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소중한 인맥들이 나의 욕심으로 무너져내렸다.
아이가 초등학교 3~5학년 시기, 퇴직 후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2년 동안 관계에서의 아픔으로 힘들었다.
그 아픔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모두가 달랐다.
나는 나의 탐욕과 그늘을 인정하게 되었고, 사람들의 진심을 보게 되었다.
다행이었다. 행복했다. 극복할 수 있었다. 좋은 경험이었다. 감사하다.
하지만 나를 격려해 주는 위로해 주는 가족은 없었다. 모두 자신의 목표로 바빴다. 그들은 결과를 본다.
옆에 있는 사람을 보지 않은 채
자신의 목표만을 위해 달려가는 모습이 보이는 게 전부였다.
나는 그저 홀로 견디었다.
역시 잘했다. 행복했다. 또다시 인생의 구멍에서 나왔다. 좋은 경험이었다. 감사하다.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집 경제에 위기가 왔다. 코로나로 인한 타격이었다.
시대의 경향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돈이 전부인 내 가족은 탓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혼을 요구했다.
내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 또한 내 아픔을 몰라주는 상대를 챙기기는 않았다.
어쩌면 이혼 요구는 당연했다. 서로가 서로를 챙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책임을 둘 다에게 있었다.
역시 잘 했다. 행복했다. 또다시 구멍에서 나오는 경험을 한다. 좋은 경험이었다. 감사하다.
그런데 가슴 아픈 일이 생겼다.
그 여파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졌다.
성숙하지 못한 부모가 얼마나 아이를 힘들게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생각 이상이었고 세상에서 제일 가슴 아픈 경험이었다.
하지만 어떤 가슴 아픔도 정리는 되는 법이다. 아이를 안정시킬 수 있었고 순수한 아이는 어른보다 나았다.
이번에는 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제일 감사한 일이다.
나의 다른 가족과는 여전히 평행선이다.
원래의 나는 관계가 편하지 않으면 다른 일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집중을 해서 수행을 해내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사실은 핑계이다. 내 스스로 해내야 할 일을 상대가 해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상대에게 의존했던 것이었다.
올해로 결혼 16년 차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가족이 되고, 새로운 가족 구성원을 키워 새로운 사회를 이뤄내는 것이 가정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함께 협력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가족 즉 사람이다.
그리고 그 가족을 이루는 제도가 결혼이다.
결혼이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니더라. 그저 살아가는 모습의 한 형태일 뿐이다.
그 안에서 행복할 수도 불편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늘 행복하고만 싶었을까라고 생각해 보면 내 욕심이었던 것 같다.
또 생각해 보면 나도 그리 잘한 것 같지는 않다.
상대가 한 만큼만 했다. 더도 덜도 아니었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한 만큼은 하지 않았을까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결혼 회고록을 쓰게 될 계기가 생겼다.
돌아보니 힘든 시기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적당한 때였고 모두 잘된 일이다.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
다시 태어나서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 사람과 하고 싶으냐라고 사람들은 가끔씩 묻는다.
그 질문에 나는
이번 생에 내 그늘을, 내 죄를, 내 카르마를 청산하고 싶다고 말하련다.
한 번 더 카르마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는 편안해지고 싶다.
2022년 5월 30일 9시 46분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 나는 내 모든 과거의 상과 흔을 보내려 한다.
그동안 내 마음속에 살아주어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준 나의 상흔을 떠나보내고
이제는 진정한 나와 마주하려고 한다.
감정적이고 유치하고 자기중심적인 나 자신이라도
그런 나를 내가 이뻐하고 보다 담으며
나 자신의 길을 가련다.
오늘
결혼 회고록을 통해
내 안의 상흔을 보내며
내 안의 세계로부터 나오며
그저 나로서 모든 것을 하려 한다.
모든 것은 빛으로 시작되며
그 빛은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법이다.
나도 빛이고 우리 모두도 빛임을 기억하며 살려 한다.
다섯 연으로 된 자서전
1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곳에 빠졌다.
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2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걸 못 본 체했다.
난 다시 그곳에 빠졌다.
똑같은 장소에 또다시 빠진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데
또다시 오랜 시간이 걸렸다.
3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미리 알아차렸지만 또다시 그곳에 빠졌다.
그건 이제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난 비로소 눈을 떴다.
난 내가 어디 있는가를 알았다.
그건 내 잘못이었다.
난 얼른 그곳에서 나왔다.
4
내가 길을 걷고 있는데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 둘레로 돌아서 지나갔다.
5
난 이제 다른 길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