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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욕구의 위계

나는 어떤 욕구를 가지고 행동했을까?

by soulgarden

* 위 그림 출처: 김환기, '성북동 집'(1956)[사진=서울옥션 제공]


나의 부모님은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이혼을 하셨다.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나의 세상은 지구의 반을 돈 것처럼 180도 달라져 있었다.

다른 이의 시선이나 다른 사람들의 눈빛 때문이 아니었다.

사춘기 시절이었다면 다른 이들의 행동의 변화로도 부모님의 이혼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살 이후 부모님의 이혼은 나를 둘러싼 세상이 아닌

나 자신의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아버지는 이혼하신 지 딱 1년 후 재혼을 하셨다.

어머니는 우리 형제 모두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재혼을 하지 않겠다 하셨다.

(내 엄마는 내 남동생이 사춘기 시절 조폭이 된다고 했을 때 대한민국 제일 조폭이 되지 않으면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신 분이시다. 동생은 집을 나갔다 한 달만에 돌아왔다 ㅋㅋㅋ)


원래 집을 나가서 사셨던 아버지와 별로 소통이 없어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편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서 나와는 엄마가 다른 아이도 태어났다.

모든 것이 불편했다. 내 환경도 내 생활도 부모도 사람도 모든 것이 불편했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고 싶었다. 안락하고 포근해지고 싶었다. 안식처가 필요했다.


내가 좋다는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식처처럼 느껴졌다. 마음껏 의지했다.

상대가 힘들어할 때도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하늘도 땅도 쳐다보지 않았다.

하늘이 파란 것도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와 같이 하늘을 쳐다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모든 것이 닫혀있었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원해도 되는지에 대한 검열이 무의식 중에 생겼던 것 같다.


어쩌다 보니 결혼을 했다.

편안함이 느껴져서 선택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상대는 나에게 안락함을 주지는 못했다.

스스로를 편안하게 할 줄은 알지만, 그것을 상대와는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스스로를 관리라고 컨트롤하고, 편안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안식처가, 내가 기댈 수 없는 사람이, 편안함과 환경적인 안락함을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편안함과 안락함인 줄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늘도 푸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기 위함 힘이

어느 정도는 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경제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경제활동을 하면서 재미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사람들을 통해 인생에서 재미있는 것들, 함께 느끼고 누릴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원했던 것이 즐거움과 재미인 줄 몰랐다.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보았다.

행복은 횟수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이 있었다.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즐거움과 재미에 이어 내가 행복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욕구의 단계는

첫 번째 단계는 내 주위의 사람들에 대한 믿음과 심리적인 편안함을 간직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단계는 환경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한, 환경적인 안락함과 은신처인 나만의 공간이었다.

세 번째 단계는 나의 주체적인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즐거움과 재미-일과 취미-가 필요했다.

네 번째 단계는 나와 잘 맞는 의미 있는 대상-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한 행복감이었다.


내게 편안함과 안락함, 즐거움과 재미, 행복감이 필요함을 이제는 확실히 안다.

그렇다면 이제는 내가 요구할 때이다.

내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함께 하지 않겠냐고 요구할 때가 왔다.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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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l we liv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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