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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Be Mee Aug 16. 2022

부모의 역할은 창조하는 것이다

나와 아이를 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기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을 때가 임신의 시기였다.

그 때 나의 이모는 내 모습을 보며

 " 봄바람 같구나 "   " 봄바람 같이  살랑살랑하는구나 "

라는 말로 나를 표현하곤 했다.

나에게도 내 몸 속에 새로운 생명이 있다는 것은 신비스러운 일이였고 축복이었다.     


하지만 출산 이후는 

그만큼의 기쁨만큼 그 만큼의 수고도 맞이하게 된다.     


생후 1년

아이의 눈에 엄마의 세상이 있다. 

엄마의 희노 애락은 아이의 눈을 통해 보여지며

아이의 감정은 항상 엄마와 통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엄마와의 공존 만이 있는 자폐기라고 말한다.     


생후 2세에서 4세

아이가 뒤집고, 기어 다니고, 걸어 다니고, 뛰어다닐 수 있게 되면서

아이는 자신의 몸을 알고 느끼게 되면서, 

자신의 욕구들이 생겨나게 된다.

자신의 몸과 욕구를 느끼면서 

아이는 자신의 행동과 자율성, 의지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 자율성과 의지를 

엄마라는 공생하고 조력하는 사람이 없으면

실행하는데 어려움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이 시기를 

엄마와 함께 행동하고 공유하는 공생기라고 말한다.     


엄마와의 

생후 1년 자폐기, 생후 2~4년 공유기가 지나고 나서야

아이는 또 다른 세계인 아빠라는 대상을 만나게 된다.

이제 아이는

아빠와도 자신의 일상과 욕구를 공유하게 된다. 

아이의 인생에 4세경에 되어서야 아빠라는 존재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생후 5~7세가 되면

이 시기의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의 세계와 더불어 또 다른 세계인 또래들을 만나게 된다. 

사실 그 전에도 엄마들이 만들어준 조리원 친구들이 있지만 

이 시기 이전의 아이들은 또래들과의 상호작용보다는 혼자만의 놀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5세에는 혼자만의 놀이에 집중하지만 

또래들에게도 관심을 보이게 되면서 

혼자 놀다 같이 놀다가를 반복한다.

이를 분리 및 개별화의 단계라고 말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엄마에게도 또래들에게도 함께 또 같이의 행동을 적용하는 단계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기를 잘 넘기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의 고독과 외로움을 잘 극복하는데 있어서의 척도가 된다.  

특별히 외로움과 고독감에 취약한 경우가 있다면 

이 시이기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과거를 치유하고 애도하여,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재구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기가 시작된다.

초등학교 때는 자신에게 필요한 사회적인 행동과 습관을 배우는 시기이다. 이 때는 자신과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과 모습을 몸으로 정립해나가는 때이다. 그래서 초등때의 습관은 중요하며, 이 시기를 통해 아이들은 몸으로 익히는 시기의 마무리를 맞이한다.     


그 다음은 중학교 시기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만들어 나가는 때이다. 이 때 아이가 가지고 있는 우울과 불안, 두려움은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중학생이 되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중학교라는 체계와 조직을 통해 펼쳐지는 세상이 각각의 감정들과 행동들을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때 아이의 정신 건강의 단단함이 어느 정도인지가 보여지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중학교 시절

나는 내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때늦은 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아이가 화를 내고,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노력한다고 했던 부분이 아이와는 맞지 않는 내 방식이었음을 깨닫게 된다.또한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이 아이에게는 적절하고 적합하지 않았으며, 아이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의 불안과 우울, 두려움이 표출되기 시작하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내가 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반응하고 키워왔는지가 비로소 보여진다.       


   



이제서야 깨닫는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가는, 아이의 뒤에서 한 발짝 뒤에서 밀어주는 자리가 아닌

아이와 나의 모습을 관찰자인 삼인칭의 시점이 되어 바라보고 성찰한 후

다시 되돌아와

현실에서의 역할을 창조하는 자리라는 것을.

    

오늘도 나는 

아이와 나를 관찰하기 위해

부모의 역할로 들어선다.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가치로운 부모로서의 역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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