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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Be Mee Aug 24. 2022

하루를 향유하다

잘 살고 싶다


하루의 시작이다.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는 것 같은 반가운 비가 내린다.



아이의 학교가 집과 거리가 있는 덕분에

나는 매일 아침 아이와 함께 등교한다.

함께하는 등교와 아침 드라이브를 즐긴다.

하지만 즐긴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를 데려다주고는

오전 모임 전 나만의 시간을 보내곤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은 아이와 같이 준비하는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나에게 그런 부지런함은 오히려 행복의 향유( 누릴 향, 있을 유, 享有)이다.


행복을 위해선 의욕이 필요하다.

아무런 글도 쓰지 않고 예능 프로를 보면서 그냥 있고 싶지만

글을 쓰지 않고 난 뒤의 그 허망함과 나를 자극하는 자책감과 죄책감을 느끼는 것보다는

의욕을 가지기로

마음으로는 결심하고

행동으로는 결정하고

나는 집을 나온다.


행복을 위해선 결핍도 필요하다.

수용하고 헌신하여야만 하는 엄마와 아내의 역할에 숨이 막히고

집안 일과 집안의 에너지에만 충성해야 하는 시스템으로부터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느끼고 생각하고 정리하기 위해

나는 집을 나선다.


나 자신을 소진시키고 좌절시켰던

결핍감이 오히려

전환되고

향유되어

삶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나는 아이와의 아침 등교를 향유하고 있었다.





결핍(缺乏) 은 

이지러지다(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없어지다)라는 결, 부족하다 라는 핍이 

합쳐져 생긴 단어이다.


이지러지고 부족한 부분은 부분이 아닌 전체가 될 때 문제가 된다. 

전체가 되면 전체 자체가 결핍이 되어 결핍에만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내 눈에 보이는 부족한 부분 하나에만 집중하게 되면서 소위 결핍의 시대가 생긴다.



아이와 함께하는 등교는 처음에는 나의 결핍이었다.


아이를 보내고 학교 근처에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내 교육관을 따라주지 않는 남편,

내 경제력으로 거주지를 선택하지 못하는 불만,

내 능력에 대한 의심이

모두 이지러지고 부족했다.



거기에 책임감까지 있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늦을라 치면 아이보다는 내가 더 불안하고 화가 치밀었다.

무엇을 위한 불안이었고, 무엇을 위한 화였을까?

말도 안 되는, 시키지도 않은 책임감과 의욕은 어디서부터 생긴 것이었을까?



아이와 함께

부지런하고 싶었고, 의욕적이고 싶었고, 행복하고 싶었던 온전한 나의 욕망이었다.

다른 곳에서 느끼지 못하는 일치감과 함께함을 느끼고 싶었던 온전한 나의 욕망이었다.



순전이 내 욕망이다.


아이가 나에게

엄마는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존중하지 않아 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깨닫게 된다.






결핍은

온전히 충족되고픈 욕망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며

결핍은

향유함을 결정함으로써 치유될 수 있었다.



그 치유의 요인은

내 욕망을 들여다 보고 인정하는 것과

내가 가지고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에 대한

인정과 감사함이 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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