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서의 불안감은 내 존재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찾아왔다.
드라마에서 보면 아이가 생기는 순간 남편들의 환호성을 보며 나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기쁨과 감사함의 환호성이 없는 것에 대해
나는 묻지도
남편은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내
아이와 같은 몸이 되었다.
내 몸에 나만을 의지하는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
그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나는 모든 것을 조심하기 시작했다.
나로 인해 그 생명에게 영향 주는 모든 것들을 조심하기 시작했고,
좋은 것만을 주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좋은 것들을 통해
그 생명에게
생명의 감사함과 환희
삶의 아름다움과 희망
올바른 것을 추구하는 의지와 용기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생명에게 좋은 것들을 전달하고 전수하고 싶었다.
아이가 내 배속에서
나와 한 몸일 때의 시기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다 아이가 세상으로 나왔다.
아이의 세상 구경은 생각보다 일찍 이루어졌다.
아이의 의지였을까? 나의 의지였을까?
아이는 조산으로 8개월 3일 만에 세상으로 나왔다.
그런데 나올 때도 쉽게 나오지 못했다.
열리지 않는 자궁 문과
주말 병원의 응급실 상황
선입견에 사로잡힌 기성세대들의 판단으로
아이는 나와서도 시원하게 울지 못해
가슴 아픔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아이가 태어나고 1년 동안은
아이를 데리고 나가지 못했다.
약한 아이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불안감으로 하루하루 지냈었다.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나는 친정엄마를 매일 같이 불렀고,
소일거리들을 통해 내 불안감을 회피하며 해소하고 있었다.
그렇게 친정 엄마와 함께 10년 공동육아를 했다.
생각해보면 엄마가 남편이었고 아이의 아빠였다.
그러다 10년이 지나고 엄마의 공동육아가 중단이 되었다.
그 이후 6년 동안은 아이와의 만남은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그렇게 나도 아이도
공백을 느끼며 나아가기 시작했지만, 둘만의 세상은 충분히 행복했다.
그런데
인생이란 것은 언제나 변화하는 것임을,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새로운 시기가 찾아왔다.
아이에게는 사춘기, 나에게는 중년이라는 복병이 그것이었다.
여전히 우리 둘은 그 시기에 있으며,
좌충우돌하면서 잘 헤쳐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음으로 말이다.
생명을 가진 존재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내 존재에 대한 불안감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면서
내가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이었으며,
새 생명을 위한 공감과 헌신, 기여를 배우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의 불안감을 직면하고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하고 늘 누군가에게 의존했다.
하지만
불안에 대처하는 각자의 방식이 모두 다르듯
내 아이의 방식은 직면과 공유, 함께 나누고 신뢰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오히려 아이에게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엄마로서의 방 안에 들어와 더 많이 성찰하게 된다.
그러면서
엄마만의 방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의 아이는 나의 이 매거진을 보면서 서운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엄마가 준비되어 있지도
엄마 교육을 받지도 않은 채
그저 그렇게 엄마가 되었으므로
나는 나에게
세상의 모든 엄마에게
엄마의 방을 허용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 매거진은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위한 방이 되었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