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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K Culture

힙한 선조들의 '조선 호캉스'

알고보면 다양했던 선조들의 여가 문화

by 조인선

서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조선팰리스 호텔이 최고가 호캉스 상품을 판매해 화제가 되고 있다. 최상위 객실인 조선 그랜드 마스터스 스위트의 1박 숙박료는 1600만원이고 호텔 내 위치한 콘스탄트 뷔페의 일요일 중식 가격은 15만원이다. 국내 호텔 뷔페가 평균 12만~13만원임을 감안하면 최고가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조선팰리스 호텔은 한 그릇에 6만8000원인 제주 카라향 빙수까지 판매하고 있다.


이렇게 호텔업계가 최고가 마케팅을 내세울 수 있는 데는 소비자들의 심리가 달라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근 ‘여기어때’가 대한민국 남녀 1980명을 대상으로 ‘휴가 중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호캉스(57.4%)’가 1위에 올랐을 정도로 ‘호캉스’는 이미 트렌드를 넘어 하나의 휴식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호캉스는 호텔(Hotel)과 바캉스(Vacance)를 합성한 신조어로, 여행지가 아닌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을 일컫는다.


한국인들이 이러한 호캉스, 특히 다양하고 고급화된 호캉스를 즐기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최근에 나타난 유행이 아니다.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선조들도 호캉스를 즐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888년 세워진 국내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은 침대 객실과 다다미 객실을 갖춘 숙박시설로 일본인에 의해 인천항(옛 제물포) 인근에 세워졌다. 1883년 개항한 인천항을 통해 조선땅을 밟은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최초의 서구식 호텔이다. 특히 당시 처음으로 커피를 판매했다는 기록도 있다.

20210901511480.jpg 대불호텔.


1902년 세워진 ‘손탁호텔’은 조선이 세계 곳곳의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고 그에 따라 외교관들 및 귀빈들의 방문이 증가함에 따라 당시 황실 전례관이였던 프랑스인 손탁이 운영하던 손탁빈관을 헐고 재건축한 뒤 손탁이 직접 운영을 맡으면서 설립됐다. 손탁호텔은 내탕금(內帑金·임금의 개인적인 돈)으로 신축했기 때문에 사실상 최초의 정부 직영 ‘영빈관호텔’이다. 호텔 2층은 국빈용 객실로, 1층은 일반 외국인 객실 또는 주방, 식당, 커피숍으로 활용했다.


국내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호텔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 역시 1913년 개관 당시부터 장안의 화젯거리였다. 처음 지어졌던 호텔의 명칭은 ‘경성조센호테루’였고 사교댄스, 수직 열차(엘리베이터), 프렌치 레스토랑, 아이스크림, 서구식 결혼식 등 생소한 서양 문화를 처음으로 선보였기 때문이다.

20210901511478.jpg 손탁호텔 옛 전경


선조들은 이러한 호텔에서 다양한 문화를 즐겼다. 특히 당시 조선에 체류하던 서양인들은 손탁호텔 등을 비롯한 호텔에서 제공하는 커피숍을 자주 이용했다. 더불어 제물포, 정동구락부 같은 호텔베뉴를 활용한 사교모임을 조직했고, 호텔들은 이들에게 멤버십 바우처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오늘날 호캉스와 같은 모습도 있었다.

이렇듯 우리의 호캉스 문화는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닌, 일제강점기 차별화되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던 선조들로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는 단순히 호텔에서 잠을 자고 맛있는 것을 먹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온 호캉스 문화를 발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한류열풍과 더불어 세계적인 수준의 호텔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한국만의 호텔 문화, K호캉스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 전통예술 디렉터 조인선

한국예술종합학교 아쟁 전공. 국내 최초 전통예술플랫폼 (주)모던한(Modern 韓)을 운영하고 있다. 문체부 공식자문위원으로 예술경영지원센터 편집위원과 한국관광공사 코리아 유니크베뉴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케이콘 2016 프랑스 전시 기획, 한국-인도 수교 50주년 기념 공연 기획 등 다양한 한국 전통예술 우수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글로벌 시장에 알리고 있다. 2020년에는 전통주소믈리에 자격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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